반출생주의는 본질적으로 비관주의를 포함하고 있읍니다
비관주의를 알기 위해서는 허무주의를 알아야 하는데요
허무주의라고 함은 우리의 삶이 의미가 있다는 가정 자체에 의문을 제기하는 견해입니다
비관주의와 허무주의는 우리의 삶이 무의미하다고 생각한다는 점에서는 공통점을 갖지만,
비관주의는 삶이 고통과 불행 등의 나쁨으로 가득 차 있으며 허무주의는 삶의 의미 자체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읍니다
에밀 시오랑이라는 철학자는
결론적으로 삶은 고통이며, 인간은 자신의 고통 뿐만 아니라 다른 존재의 고통도 인식해야 한다
그러므로 환경 파괴도 하지 말아야 하며 결국 최고의 선택은 자식을 낳지 않고 멸종하는 것이며,
이것이 인류와 환경에 이로울 것이라 주장한 바 있읍니다
베네타라는 분은
삶은 나쁘지만 죽음도 나쁘며 인간은 두 극단 사이에 껴있다
삶과 죽음이 모든 면에서 나쁜 것은 아니지만, 모두 결정적인 측면에서 끔찍하다.
인간의 삶의 질은 냉정하게 바라보면 실제로는 끔찍하며,
인간의 삶이 가끔은 즐겁고 기쁜 순간이 있겠지만 전체적으로 보면 좋지 않다고 한 바 있읍니다
이렇게 삶의 부정적인 부분을 솔직하게 말하는 점에서 우리는 카타르시스를 느낄 수 있을지는 모르지만
그들의 주장이 비관주의에 근거한 이상
비관주의 자체를 부정한다면 반출생의 세세한 논거들을 반박할 필요도 없이 그들의 주장을 타파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를테면
제가 다이어트를 하는데
다이어트를 하려면 먹고 싶은 것도 마음껏 못 먹고 운동도 해야 하고... 식단조절도 해야 하고...
하여튼 다이어트 자체는 고통스러운 일입니다
그러나 제가 다이어트를 해서 멋진 몸을 만들거나 아니면 건강해지는 것에 의미를 두었기 때문에
그러한 고통을 참고서 다이어트를 하는 것인데요
그렇게 다이어트를 하는 사람을 보면서
ㅄ~ 왜 사서 고생을 하는거지?? 살빼면 뭐 좋은거 하나 잇나??
그런게 다 코르셋이고 가스라이팅하는 거라는걸 모르나?
이렇게 비아냥거릴 수는 있겠습니다만
적어도 그사람에게는 다이어트가 의미가 있는 행동인 것은 확실하다고 볼 수 있겠읍니다
마찬가지로 고통밖에 없는 이 세상에 태어나서 고통 - 100, 행복 + 10을 내 인생에서 겪었다고 하더라도
그 사람이 생각하기에 삶의 가치가 +100이라면
그 사람은 남들은 어떻게 볼지 몰라도 자신은 최소한 불행하게 살다 갔다고 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이게 무슨 개소리인가 싶으시겠지만
그러니까 최소한 자신의 삶에 어떤 의미를 두어야 하는지 마는지는
자신이 세상에 태어나서 판단할 일이지
부모가 반출생주의에 심취하여 자식의 삶의 의미를 미리 판단하지는 않아야 한다는 생각입니다
자식도 일단 태어나 봐야 세상 무서운 줄 도 알고 반출생주의도 알고 그럴거 아니겠습니까?
그 다음에 모든 걸 알고 나서 살자를 하던지 반출생을 하던지 지가 알아서 판단할 일이지
아~ 내가 먼저 태어나서 세상을 경험해 봤는데 말이야~
사는게 참 고통스럽고 힘들더라고
그러니까 너는 안태어나는게 너를 위해서 좋을 거 같아
이렇게 이야기 한다면 이게 꼰대가 아니고 무엇이겠읍니까??
그럼 무한 고통의 연속인데? ㅋㅋㅋ
반출생주의에 대해 더 공부하셔야할듯, 반출생주의는 태어날 아이가 전반적으로 불행할것이다 하여 낳지 않는게 아닙니다. 존재하지 않음의 상태가 존재함의 상태보다 논리상 낫다는것에서 시작합니다. 님의 지론대로면 인간은 낳지 않는것이 비윤리적인게 됩니다, 임신 가능한 모든순간 모든 생명의 가능성을 이루지 않으면 님이 말하는 행복할지 뭔지 개인이 판단할 기회를
박탈하고 있는 꼴이니까요, 그렇다고 출산주의자들이 그 매순간 낳지 못한 수없이 많은 가능성들에 대해 피눈물 흘리며 애도라도 한단말입니까? 그냥 남들 하니까, 적당히 내가 원할때에 한두명 낳겠다는것을 해괴한 이유들로 포장하고 있는것에 불과하지 않았습니까?
낳지 않는 것이 비윤리적이라고 말한 적 없고 그럴 수도 없읍니다 기회를 박탈하는 것은 동의 문제에 말한 것처럼 기회가 이미 주어졌을 때 박탈 할 수 있는 것이지 주어지지도 않는 기회를 어떻게 박탈할 수 있겠읍니까??
태어나지 않은 무존재는 태어나길 바리지 않음 그럴수도 없고 그런걸 재단하는건 태어나서 뇌달고 감각기관달고 판단하는 생명체들 뿐임
삶은 고통인데 자식을 낳음으로써 고통을 더하는 멍청한 행위를 도대체 왜 해야하는지? 그리고 스스로 정신승리를 잘하는 능력은 부럽기도 할 정도로 인정하는 능력임. 근데 그것 조차도 그런 능력이 주어진 사람이나 가능한거. 100만큼에 고통을 느꼈으면서 고작 10정도 행복으로 정신승리하는 능력이 일단 나한테는 없음. 모두가 공평하고 평등하기 위해선 반출생주의를 통해 점진적으로 멸종하는게 모두에게 이로움.
그리고 그 전에 애초에 태어나지 않은 존재는 삶을 바라지를 않음. 그렇기에 속단한다는 말 자체가 성립이 안됨.
태어나지 않은 존재는 삶을 바랄수도 없고 바라지 않을 수도 없읍니다
정확히는 그 말이 맞음. 자아가 없고, 생각조차 못하는 일개 세포일 뿐이니. 어찌됐든 속단한다는 말 자체가 성립이 안된다는건 아직도 유효함.
아니 나는 아직 결정하지도 않았는데 미리 상대방이 내 생각이 이러할 것이다라고 정하는 것이 속단하는게 아니면 머죠??
그니까 태어나기전에는 결정을 한다라는 복잡한 생각 자체를 안한다는 소리임. 본능대로 움직이는 세포한테 속단한다는 말이 성립이 됨? 돌멩이를 발로차버리고 난 후 돌멩이의 생각을 내 경험과 논리를 통하여 이러이러할것이다 라고 유추하는 걸 속단한다라고 말함?
돌멩이는 생각 자체를 할 수 없는데 돌멩이에게 생각이 있다면~ 하고 가정하고 생각하는 것부터가 조금 문제가 있는거 같네요
그니까 님이 지금 그런 소리를 하고 있는거에요.
님이 지금 정자세포, 난자세포가 생각할 수 있다고 가정하고 말하고 계시잖아요
전혀 그렇지 않은데요...;; 어떤 부분에서 그렇게 느끼셨는지 모르겠네요
넵
정말 너 병신이야?
이새끼도 병신이네
비관주의보다는 비동일성 문제랑 동의를 구하지 못하는 부분이 문제
반출생주의 이해 못하는 건 역시 지능 문제네ㅋㅋㅋㅋ
꼼꼼하게 다 읽어 보진 않았지만읽고 생각해 본 걸 적어봅니다자신의 가치는 스스로 정한다그런 생각은 좋다고 생각합니다(타인의 가치를 무시하고 주제넘게 끼어들어 무례하게 판단하고 말하는 사람들이 한국에는 정말 많은 거 같습니다)그런데 그 부분을 읽으면서 바로 모순이라는 생각이 들더군요왜냐하면 아이 역시 내가 아니고아이가 어떻게 느낄지 알 수
없기 때문입니다 스스로 결정할 문제라며 넘기는 태도는 책임회피나 합리화에 가깝게 느껴져요 이런 생각을 해볼 수 있을 거 같습니다 아이가 태어나서 고통받을 가능성이 있는데도 아이를 낳는다면 그건 누구를 위한 일일까? 아이가 존재하지 않아 행복을 느끼는 사람이 없는 데는 아무런 문제가 없지만 혹여라도 태어난 사람이 불행을 느끼고 삶을 부정적으로 인식하거나
고통 받는다면 그 때는 누가 무엇으로 보상해 줄 수 있을까? 문제의 원인이 무언인가? 이런 생각은 직관적으로 할 수 있습니다 결국 출산은 낳는 이를 위한 행동?(사실은 유전자와 물리법칙 같은 것들이 지배하고 있다고 하는 게 더 사실에 가까울 거 같지만)이라고 할 수 있을 거 같습니다 존재하지 않는 존재를 만들어서 세상을 경험시켜야 할 이유가 있을까요?
출산 역시 이기적인 행동이고 도박에 가까운 행동이라 생각됩니다 사랑한다면서 하는 행동이라기엔 너무 이상하고 앞뒤가 안 맞죠 낳는 건 자유고 누가 말릴 수도 없고 인권을 생각해 존중하지만 결국 아직 존재하지 않는 아이가 태어난 이후 어떻게 생각할 지는 아무도 확실히 알 수 없겠죠 오랜 전 예상했던 것처럼 생산의 완전 자동화가 이루어지고 있는데 그건 인간들
을 더 어려운 상황으로 몰아갈 가능성이 아주 높을 거 같습니다 본질적으로 이 곳의 정체는 일종의 목장에 가까운 거 같고 목장주는 자신의 가축들이 자신의 뜻과 무관하게 자신에 이익이 되지 않는 일을 하고 싶은대로 하게 내버려두지 않겠죠 목장주가 부모와 겹쳐 보이고 결국 모두 자신의 이익을 위해 누군가를 희생시키며 존재할 수밖에 없는 게 이 곳의 규칙?인 거
같다는 생각이 드네요
네 1님의 생각 충분히 존중합니다 님이 출산을 결정할지 말지는 오로지 님 자유입니다
첫번째 글밑에 추가할 내용이 있었는데 정리해 쓰기 귀찮고 굳이 필요할까?생각했지만 그냥 적는 게 낳았을 거 같다는 생각이 드네요
자기의 가치는 자신이 결정하지만 출산엔 타인이 관계되고낳는 순간타인의 가치를 내가 결~저~엉하게 됩니다동의를 구하지 못한 일방적인 행위니까요그래서둘은 같지 않습니다예를 들어 사냥을 위해 덫을 놓았는데누군가 지나가다 밟아 부상당하는 경우를 생각할 수 있고이 경우사냥꾼-부모 덫-출살 부상자-어떤식으로든삶에고통을느끼는사람에 대입해 볼 수
있습니다 지금 여기에 다칠 사람이 없으니까 덫을 놓는 덴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주장이 있다면 거기엔 아무런 문제도 없는 걸까요? 지나가다 밟는 사람이 운이 없거나 조심성이 없던 거니 그 사람 잘못이라고 편하게 생각하면 되는 걸까요? 정도의 차이일 뿐 뒷사람은 생각지 않으면서 담배피며 걸어가는 흡연자나 음주운전자 강간범의 모습과 다를 게 없다고 생각됩니다
사람들의 도덕성은 각양각색이고 사람이 언제나 도덕적으로 살 수는 없겠지만 적어도 본인 행동의 의미가 뭔지 이해할 수 있고 양심이 있다면 합리화하면서 억지부리진 못할 거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차라리 이기적인 거 맞지만 그래도 난 낳고 싶다는 생각이 훨씬 인간적이고 일관적인 거 같습니다 그 경우 이해 못할 건 없겠죠 누구도 완벽하긴 어렵고 어떤 사람들은
욕망이 강해 낳지 못할 때 느끼는 고통이 내가 상상하는 것 이상일 수도 있는 거니까 본질적으로 출산은 당사자들의 문제기도 하고 그리고 대체로 타인의 출산은 이미 존재하는 내게는 이로울 가능성이 높겠죠
하지만 출산옹호는 본질적으로 노예제옹호나 폰지사기와 비슷한 거 같습니다 굳이 합리화하려 노력하는데는 본인들도 찔리는 게 있기 때문일 거고 어느 정도 양심이 작동해 느끼는 죄책감을 덜기 위해서겠죠
결론적으로 출산은 개인의 문제고 알아서 할 일이지만 그것이 존재하지 않는 아이를 위한 일은 아닌 거 같고 자신의 욕심을 채우기 위한 행위에 더 가까운 거 같습니다 (내 생각에 이 곳은 결정론적인 세상이고 그냥 일어날 일이 일어날 뿐인 거 같지만, 수많은 나들은 모두 꼭두각시 인형)
문제를 느낄 때 아무도 책임져 줄 수 없는 것도 사실이고 보상도 불가능 미성숙한 부모라면 아이를 탓하거나 버리는 경우마저 있고... 낳는다면 좋은 양육이 어떤 것인가? 고민하는 일은 필수라 생각하지만 어디까지나 차선책이고 미련한 사람들이 많아 그리고 사람들의 타고난 본성은 크게 변하기 어려워 의미 있는 일인지 모르겠습니다 (인간의 다양한 특성은 정규분포를
따르는 경우가 많고)
원래도 탄생을 긍정적으로 바라보지 않았고 계속 의문을 느끼고 있었지만 아이 낳지 않기 때문에 이기적이라는 엄앵란같은 사람의 발언은 매우 단순하고 잘못되었다는 생각이 들었고 타인을 도구 취급하면서도 거기에 대한 인식이 없다는 사실 역시 이상하게 느껴졌습니다 저 사람은 저것조차 생각 못하는 건가? 어린 시절부터 늘 그렇게 느꼈지만 내게 수많은 사람들은 이디오크
라시의 등장인물과 별 다를 게 없게 느껴지더군요 사실을 말한다고 박해하고 아무 생각 없이 거기에 동조해 비난하고 갈릴레오 코페르니쿠스의 예처럼. 전쟁은 일상이고 바보같은 사람들은 제대로 아는 것도 없으면서 아무렇게나 떠들어 대고 이상한데 화내고 본인이 사는 곳에 독을 푸는 멍청한 짓을 하며 허영심 가득하고 눈치보고 간단한 것조차 제대로 몰라서 이상한 소리하
고 솔직하지 않고 자존심만 앞세우고 하여튼 정말 끔찍하게 이상한 곳이라는 생각이 드는데 마치 깨어나지 않는 악몽같이 느껴집니다 이 끔찍한 세계의 온갖 것들이. 이 세계 자체의 한계 인간이란 한계 그로 인한 한계 다른 누군가를 해칠 수밖에 없는 사이코패스적인 잔혹한 설계와 그에서 벗어날 수 없음도
결국 낭떠러지로 떨어져 죽을 게 뻔한데 마치 자신에겐 일어나지 않을 일처럼 기어이 누군가를 끌고와 사랑한다면서 함께 사이좋게 급류 아래로 추락하는 이런 걸 뭐라 표현하면 좋을까요? 블랙코미디 ㅎㅎ 인간 역시 가축일 뿐인데 전혀 통찰 못하고 이상한 생각을 하며 허상을 쫓는... 것도 우스운 일이죠 그 역시 일어날 일이 일어날 뿐일까요?
좀 더 정확하게 쓰자면 태어나는 게 나을 거라는 판단으로 (독단에가까운, 이기심, 확률 도박, 무책임) 결국 죽음으로 끝날 삶을 강제하는 거니까요 분명히 능동적인? 행위고 중립적인 일이 아님 내가 아닌 타인이 나의 행위로 인해 고통받을 가능성이 있다는 점은 애써 무시하고 이기심을 충족시키는 선택을 할 수도 있겠죠 운이 좋아 도박에 성공한다면 나는 이익을
볼 수도 있겠지만 그게 과연 뜻대로만 되는 일일까요? 만약 실패할 때는 어떻게 하죠? 나만 손해보는 게 아닌데
자기 자식의 삶의 의미를 내가 판단을 하는게 아니라, 확실한 고통이 있는 세상에 내던지는 행위에 대한 윤리적 정당성을 얘기하는거임. 출산에 대한 사회적 제재가 없다고 해도 윤리적인 정당성은 있을까 과연.. 자연의섭리에 윤리적 잣대를 댈 수 없다고한다면 행위가 어디까지 정당화될수있을까.. 애초에 선과악은 인간이 만들어낸 개념일뿐인데 사회적 효용만 생각한다면.
뭐든 정당화되지 않을까 사회적 효용성이 없더라도 의무론적 관점으로는 인간이던 어떤 생명이던 내가 고통을 준다는게 윤리적으로 옳은일일까. 적어도 출산이라는 자연섭리에 따른 번식행위가 절대 도덕적으로 고귀한것이 아님은 확실하다. 그럼 출산은 윤리적으로 부도덕한것인가?
오직 행위자의 이기적인 목적으로만 행해진 출산이라면 이는 윤리적 정당성을 획득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렇다면 행위자의 선한 의도의 출산이라면 윤리적 정당성을 획득할 수 있는가? 한 개체가 다른 개체에게 고통과 쾌락의 가능성을 주는 행위가 윤리적으로 정당화될 수 있는가? 새 삶을 부여하는것과 죽음을 부여하는 것의 본질적인 차이가 있는가? 자유의지,의사와는
상관이 없다. 태어나기 전에 자유의지나 의사는 묻는것이 불가능하니 의미가 없다. 자유의지라는 개념이 들어간다면 결국 태어난 것을 탓하고싶으면 비출산을 옹호할것이고 태어난것이 감사하다면 출산을 옹호할것이다. 개인의 취사 선택의 문제일 뿐이다. 여기서 출산의 부도덕함과 비출생의 우월성을 강조하려면 결국 고통과 쾌락의 비대칭성을 끌고 올 수밖에없다.
고통을 주지 않을 윤리적 당위성은 있지만 쾌락을 줄 당위성은 없다. 고통과 쾌락의 질과 크기를 비교할 것이 아니라 결국 윤리적 당위성을 가지느냐 마느냐로 생각해봐야한다. 고통을 준다 > 부당한것 고통을 주지 않는다 > 윤리적 당위성을 가진다 쾌락을 준다 > 부당진 않지만 반드시 그렇게 해야할 윤리적 당위성은 없다 쾌락을 주지 않는다 > 부당하지 않은것
이 고와 쾌의 비대칭성을 전제로 하면 비출생이 출생보다 윤리적으로 우월하다는걸 주장할 수 있다. 왜냐하면 고통을 주지 않는 비출생이 윤리적 당위성을 충족하기 때문.. 출산을 옹호하는 입장이라면 고와 쾌의 비대칭성을 부정하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