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단 시대착오적인 정황성을 뒤로하고도
죽음은 의식 활동이 정지되는것을 말하는데
사후세계가 있다고 믿지 않는 한 어떻게 후회가 존재하고
그것이 설득이 된다는 말인가?
잘 죽기 위해 출산이란 것을 하는 기조라면
결코 흐름에 따르는 의연한 자세라는 그들 본인과 충돌하고
사회는 여태까지 사라진 것의 대체로 순환되어 왔는데
묫자리를 그렇게 오래전부터 경쟁하고 준비해서
자신의 삶을 고이고이 기려주는것이라면
수많은 연명치료 논쟁과 예송논쟁이라 일컫을 만한 수많은 현실과 당위 사이의 앙금을 생성하여
공백의 전환, 세상의 순환을 윤활하지 못하게 한다는 것일텐데
말년에 대서양을 맨몸으로 횡단하고 히말라야 정상에서 거짓말처럼 숨을 거뒀다는 노인의 직전의 직전처럼 영원히 살아있는것이
그들의 노인이 된 시열대 안에서는 짤막한 경제활동에 대한
20년 30년의 레파토리와 남아있는 비굣거리를 정산하기 위해
자식에게 가스라이팅을 가하고 있는 어느 죽기 좋은날 아닐까 싶다.
사건의 지평선 너머로 압축되고 일축되고
저편에서 새로운 사건들 열겠다는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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