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나'라는 건 특별한 의미가 있지 않은 허상이라고 생각함
살아있을 때는 나와 타인은 분명 구분되는 거지만 이게 죽어서도 연장된다고 보지 않음
결국 죽으면 '나'나 타인이나 다를 바 없음
비존재가 되는 것 즉 존재가 아닌 것이 되는 건 내가 아닌 것이고 내가 아닌 것에 대한 축복은 '내' 알빠 아님
그러니 살아있으므로 생겨버린 '나'라는 허상이 존재들 속에서 무엇을 남길 수 있나고민하는 것만이 이 허상이 가진 의미라고 생각함
난 '나'라는 건 특별한 의미가 있지 않은 허상이라고 생각함
살아있을 때는 나와 타인은 분명 구분되는 거지만 이게 죽어서도 연장된다고 보지 않음
결국 죽으면 '나'나 타인이나 다를 바 없음
비존재가 되는 것 즉 존재가 아닌 것이 되는 건 내가 아닌 것이고 내가 아닌 것에 대한 축복은 '내' 알빠 아님
그러니 살아있으므로 생겨버린 '나'라는 허상이 존재들 속에서 무엇을 남길 수 있나고민하는 것만이 이 허상이 가진 의미라고 생각함
그러므로 출생이 비존재의 안식을 깨우고 고통의 굴레로 빠뜨렸다고 생각하지않음
https://89q.sk/d638f39v
생전이나 사후의 존재여부는 몰라도 낳음당하게 하는 자들로 인해서 강제로 존재당하는 것이 물리적 팩트긴하지
반출생하는 건 이해하는데 비존재에 감정이입해서 원망하는 건 안 했으면 좋겠다.
뭐 원망 하고말고는 개인의 자유긴한데 "낳아준 것에 감사해라" 라는 소리 떠드는 부류들은 욕먹어도 싸다고 생각되는듯
ㄴ 그건 인정
없음. 남기길 뭘남겨. 그냥 죽지못해 사는거 뿐. 편안한 죽음만을 바람 - dc App
편안한 죽음 쉽지 않지 편안한 죽음이라는 바람 이루어지길 바란다.
태어나기 전의 상태가 비존재의 고요나 축복 이런 말을 나는 비유적으로 받아들임. 그 실체가 있어서 실제로 어떤 무언가가 혜택을 받고 있다고 보는게 아니라. 태어나기 전, 어떠한 욕망도 고통을 받을 수 있는 가능성도 없었던 때와 현재를 비교할 때 현재의 상태로의 전환에 대해 반대하는 것임
이게맞지
왜 그 가능성을 부정적으로만 바라보는 거야?
생로병사 당하기 싫으니까지
너의 주장은 반출생주의와 어느정도 맞닿아 있긴 한데, 결정적인 부분에서 모순이 있음. 비존재는 내 알 바가 아니라는 것부터가 틀렸음. 존재하는 동안은 존재를 경험해야 하므로, 존재 그 자체가 문제임. 비존재는 경험할 수 없는 것이지만, 비존재라면 경험할 '필요'조차 없었다는 것이 핵심. 즉, 비존재가 내 알바 아니라는 말은, 오히려 비존재가 훨씬 나은 상태라는 것을 강화하는 논리임. '나'라는 허상이 의미를 고민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도 말이 안 됨. 고민할 필요 없이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는 것이 훨씬 나음. 고민은 불필요한 고통을 발생시키는데, 그럼 의미를 고민하지 않아도 되는 상태가 더 나은 상태임. 그리고 '나'라는 것이 허상이라는 것도 '나'라는 개념이 있는 한 그것은 실제로 고통을 경험할 수 있음.
허상이라도 고민하고, 고통받고 있다면 그 허상을 유지해야 할 이유가 하등 없음. 죽으면 사라지는건 맞지만, 문제는 죽기 전까지 고통을 겪으며 존재해야 한다는 것.
난 그걸 가치있다고 생각하는데 모든 걸 전지적 객관적으로 바라보지 않으면 죽는 병이라도 걸린 거야?
잠깐만, 오해하지 마셈. 너의 생각은 존중함. 하지만 정말 모든 가식과 사회의 기만을 벗겨내고 바라봤을 때 결론이 그렇다는 거임. 만약 너가 세상에 남길 무언가를 고민하면서 살고 싶다고 하면, 난 그걸 100% 존중함.
필요조차 없는 상태가 왜 개이득인 것처럼 설명하는지 이해가 안 됨 고민하지 않아도 되는 상태가 더 나은 상태라고 왜 가치판단을 들이밀어? 난 고통을 느낀다고 달팽이가 소금에 닿으면 몸을 베베 꼬는 것처럼 고통에 몸부리치지는 않음
ㅇㅋ...
솔직히 여기서 마무리하는 게 좋긴 한데, 그래도 끝까지 답변은 해야 할 것 같아서 마저 대답함. 여기서 중요한 건 필요조차 없는 상태가 왜 이득인가? 라는 질문이 존재의 시점에서만 나올 수 있는 반응이라는 거임. 비존재는 필요, 그러니까 '결핍을 해소하기 위해 필요한 무언가'조차 없음. 예를 들면, 노동을 해야 하는 현실과, 노동의 '필요가 없는' 상태가 있다면 당연히 논리적으로 후자가 더 나은 상태라고 판단할 수 있음. 그리고 삶에 불가피하게 고통이 존재한다면, 고통을 해소할 '필요'가 없는 비존재가 더 나은 상태라는 건 가치판단이 아니라 논리적인 귀결임. 가치판단이란 말도 사실상 자기 모순에 빠짐. '난 고민하는 삶이 더 낫다고 생각한다. 비존재가 이득이 아니다'라고 생각하는 것 자체가 가치판단임
ㄴ너무 이분법적으로 접근하는 거 같음 그런 식으로 딱딱 나누는 것보다는 스스로를 다시 한번 되돌어보는 게 어떨까 싶다. 아, 이건 좀 결례였다 미안. 아무튼 잘 살아보자.
그리고 고통이 없으면 더 나은 상태라는 건 너무 자명하므로, 오히려 삶이 낫다고 보는 쪽이 가치판단을 한다고 할 수 있음. 여기서 삶의 행복이나 의미는 아무런 의미도 없음, 왜냐하면 일말의 고통이라도 동의하지 않고 강제로 부여된 이상, 삶은 나쁜것이기 때문임. 달팽이 비유는 고통의 민감도에 대한 주장인데, 이건 좀 잘못됨. 덜 뜨거운 지옥에 있다고 해서 지옥이 나아지는 것이 아님. 고통이 아주 미세해도 그것이 없다면 더 나은 상태인 것은 당연함. 그리고 누구나 (현재는 괴롭지 않더라도) 노화와 질병, 가족의 사망 등의 고통을 필연적으로 겪음. 이는 노력과 댓가가 필요하고 주관적인 행복과는 완전히 다른 성격을 가짐. 객관적이고 장기적이며 불가피함.
ㅇㅇ 나 역시 사람마다 생각이 다른건 당연하다고 생각해. 주말 잘보내셈
ㄴ댓글 더 꼼꼼히 읽어보니 오해하는 거 같아서 마지막으로 남기는데 고민하는 삶이 더 낫다. 난 내 생각이 더 낫다고 한 적 없음 살아있으므로 생겨버린 이 허상이 무엇을 남길 수 있나 고민하는 것만이 이 허상이 가진 의미라고 생각함이라고 했다. 글 잘 읽어보셈
너는 '고민하지 않아도 되는 상태가 더 나은 상태라고 왜 가치판단을 들이밀어?' 라고 댓글을 달았어. 이건 사실상 '비존재가 고민하는 삶보다 낫다.'라는 말에 동의하지 않는다는 의미로 보여서, 난 네가 비존재를 고민하는 삶보다 좋다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생각했지. 솔직히 저 문장을 빼도 '비존재가 이득이란 주장에 동의 안한다' 부터가 가치판단이니까, 내 논점이 크게 바뀌진 않을거임 (시비거는 건 아니고, 내가 일부러 너의 말을 비약한게 아니라 내가 오해할 여지가 있었다고 설명을 하는거야)
ㄴ나도 그 부분에서 오해했을 거라고 생각했어
다 없어진다생각. 육신은 세균, 벌레들이 다 분해하고 무덤도 그냥 언덕일 뿐... 오래오래 기억받고싶으면 아이작뉴턴 링컨 아인슈타인 베토벤처럼 업적을 남기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