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여움의 기준이란게,

우리가 귀여움을 느끼는건 진화적인 본성으로 아기의 외형이 기준이거든 그렇게 느껴야만 아이를 보호할테니까,

즉 사실 아기가 우리가 지금 불쾌하게 생각하는 어떤 형상이었으면 우리는 그걸 귀엽다는 정의로, 기준으로 잡았을거야.


우리가 원하는 걸 택할 자유는 있어도, 무엇을 원할지 결정할 자유는 없다는 거지

자유의지는 없고 삶은 무의미하고, 목적도 이유도 없는 확률론적 집합의 세상에서 고통받는거지.


인간이 삶을 살아있고 살아가기 위해서는 항상 뭔가에 의존해야하는데 그래서

신도 만들고 애도 만드는거지.  


쾌락이란것도 그래 우리는 진화적 본성은 우리로 하여금 쾌락에 무뎌지게 쾌락의 역치를, 한계효용을, 권태를 만들어 뒀어. 아니면 생존에 불리하니까 


부모가 성교를 할 때 고작 허리 흔드는 속도가 조금만 달랐어도 

내가 아닌 무언가가 태어나 내 이름을 가지고 살았을거야.

그들이 원한 건, 사랑한 건 내가 아니라 그저 자신들의 욕망을 투영할 무언가이자 도구 수단이지. 아니면 그것이 아닌 타산적인 이유거나 아무런 생각조차 없었거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