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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지금 당장 살자해서


비존재가 되지 않느냐는 물음에 대하여


일반적으로 인터넷 '반출생주의자'는 다음의 네 가지 대응을 한다.




(1) 반출생주의는 원천적으로 생로병사의 고통을 차단하자는 것이지, 살자하자는 게 아니다!



이러한 대응은 상대방의 논점을 전혀 파악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상대방은


반출생주의자가 살자를 주장하고 있다고 하는 게 아니라,


반출생주의의 전제들을 받아들이면,


그 논리적 귀결이 살자가 된다는 점을 지적하고 있는 것이다.


다시 말해,


(1) 쾌락도 고통도 없는 비존재가 바람직하므로 안 태어나는 게 좋다.


(2) 살자를 하면 쾌락도 고통도 없는 비존재가 된다.


(3) 따라서 살자가 바람직하다.


이 논리적 귀결이 왜 일어나지 않는지 해명을 해야 된다는 거다.


반출생주의는 살자 하자는 게 아니다!만 앵무새처럼 반복하는 것은 전혀 그 해명이 되지 못한다.


 




(2) 납치 비유



살자가 


납치를 당해서 강제로 차에 태워진 사람이


고속도로를 달리고 있는 차에서 뛰어내리는 것과 같다는 비유는,


<납치를 당해서 속박 당하는 일은 매우 나쁜 일이긴 하지만 차에서 뛰어내려서 죽는 건 그보다 더 나쁜 일이다!>


이걸 이미 전제하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힘이 있다.


즉, 이미 죽음이 나쁘다는 점을 전제하고 있는 사람들한테는 효과가 있는 비유이지만,


지금처럼 그 전제, 죽음이 대체 왜 나쁜 것인지부터 따지고 있는 상황에서는 전혀 효력이 없는 비유다. 







(3) 살자를 하면 주변 사람들이 고통을 받는다.



이러한 대응이 간과하는 것은, 어쨌든 인간은


병에 걸리든 사고를 당하든 죽는다는 점이다.


살자로 죽었을 때 주변 사람들의 고통이


자연사나 사고사 했을 때의 주변 사람들의 고통보다 적은 게 확실한가?


말기암에 걸려 고통에 울부짖는 걸 지척에서 지켜보는,


또 병원비와 간병 때문에 엄청난 부담을 지는 주변 사람들의 고통이 과연 더 적을까?


게다가 


일찌감치 살자하는 경우보다 오래 오래 살다가 자연사하는 경우에는 


인간관계가 더 많아지고 더 깊어지기 마련인데 이 경우 주변 사람들의 고통의 총합이 더 커질 수도 있지 않은가?


그리고


죽어도 슬퍼할 주변 사람들이 별로 없는 경우에 대해서는 뭐라고 할 것인가?


결국 이것도 효과적인 대응이 아닌 것이다.






(4) 살자에 따르는 두려움과 고통

 


최신 장비를 이용한 안락사가 아닌


그냥 일반적인 방법을 통한 살자도


말기암이나 교통사고로 짜부되어서 죽는 것보다는 덜 고통스러울 것이다.


그리고


당사자가 직접 때를 정한 살자 과정의 두려움이


예기치 않게 죽음이 닥쳐오는 걸 속수무책으로 지켜보면서 느끼는 자연사나 사고사의 두려움보다


꼭 더 크다고 볼 이유는 뭔가?


물론


이가 썩어가는데도 무서워서 치과를 가지 못하는 사람의 심정이 십분 이해가 가는 것처럼,


주저하는 것을 이해할 수는 있겠지만,


살자가 합리적이라는 주장 자체를


두려움으로 반박할 수는 없는 것이다.






그렇다면 반출생주의자는 왜 살자하지 않아야 하는가?


다음 두 글을 참고하라.


https://gall.dcinside.com/mgallery/board/view?id=nobirth&no=12906


https://gall.dcinside.com/mgallery/board/view?id=nobirth&no=1304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