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 태어난 강아지 한마리를 키우려해도 끝까지 책임지지 않을거면
데려오지 말라고 한다.
우리는 태어나지 않았던 자식을 끝까지 책임질수있는가?
부모가 먼저 죽었다. 그럼 자식을 끝까지 책임졌다고
할수있는가?
자식이 먼저 죽었다. 그럼 자식을 끝까지 책임졌다고 할수있는가?
우리는 언젠가 찾아올 자식의 죽음과 그에 대한 공포, 고통을
끝까지 책임질수있는가?
데려오지 말라고 한다.
우리는 태어나지 않았던 자식을 끝까지 책임질수있는가?
부모가 먼저 죽었다. 그럼 자식을 끝까지 책임졌다고
할수있는가?
자식이 먼저 죽었다. 그럼 자식을 끝까지 책임졌다고 할수있는가?
우리는 언젠가 찾아올 자식의 죽음과 그에 대한 공포, 고통을
끝까지 책임질수있는가?
인간은 자유의지를 가졌는데 어째서 부모된 자가 부모라는 이유만으로 그들을 끝까지 책임져야하는가에 관해선 어떻게 생각하는가? 욕구는 너무나도 강렬한데 비해 책임이 너무 가혹하다는 비판도 가해질 수 있지 않겠는가? 반출생주의자들이 흔히 요구하는 동의문제도 그렇다. 만족될 수 없는 도덕적 요구들을 출산자에게 과하게 부과한다고는 생각지 않는가?
부모들이 동의없이 자식을 이세상에 던져놓았으니까. 부모가 만들지 않었으면 모든게 시작도 안됐으니까. 자유의지? 자식은 자유의지로 태어나지 않았다. 부모에 의해 세상에 던져진 것 뿐.
고통받는 사람들이, 근본 원인을 부모에 돌리는게 전혀 이상하지 않다. 부모가 낳지 않았다면 ,지금 느끼는 고통은 없다.
단순히 부모라는 이유로 책임 운운하는게 아니다. 부모는 출산을 하는 순간 --- -- 단지 슈퍼에서 음료를 고르거나 , 구매할 차종을 고르는것이 아니다.----- 100년을 생로병사를 겪으며 살아갈 생명을 탄생시킨 것이다. 그렇게 크고 엄청난 일을 한게 출산이랑 행위이다. 출산은 인간이 할 수있는 일반적인 행위랑은 성질 자체가 180도 다른 성질의 것이다
자유의지는 없다.
메타적으로 접근하면, 자유의지 여부는 실질적 의미를 잃게 된다. 자유의지가 있고 그것이 유의미하게 작동한다면, 번식도 번식 비난도 자유의지에 의한 행동일 것이다. 자유의지가 없거나 실질적으로 없는 것과 미찬가지라면, 번식도 번식 비난도 결정된 행동일 것이다.
어쩌면 누군가에게는 번식하지 못하는 것이 너무나 가혹하게 느껴질 수 있다. 또 누군가에게는 단 1초, 1원의 자녀 양육 비용조차 가혹하게 느껴질 수 있다. 범죄자를 가두는 문제에 있어서도 가혹하다고 할 여지가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사회 계약을 통해 제재 범위와 강도를 정하고, 사회적으로 일반화하며 정당화한다. 문제는, 미래 세대와는 공정한 계약을 맺을 수 없고, 철저히 기존 세대의 일방적인 결정을 강요하게 된다는 것이다. 권리가 충돌할 때, 적극적으로 타인을 중대한 위험에 노출시키고 강요하는 자의 권리를, 그럴 능력조차 없는 절대적 약자의 권리보다 우선하는 것이 옳을까?
이 세상은 그저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것을 말하는 것만으로도, 그것을 듣고 보는 누군가에게는 너무나 가혹한 일로 느껴질 수 있다. 그러나 그러한 비난이나 논쟁 자체는 계약주의(묵시적 동의)적으로 정당화되기에, 우리가 말을 꺼낼 수 있고 글을 쓸 수 있는 것이다. 따라서 폭력을 통해 비출산을 강요한다거나 하는 것이 아니라면, 단순 비난이 출산보다 가혹한 행동이라고 보기는 어려워 보인다. 우리의 댓글이 용인되는 것처럼 말이다.
https://m.dcinside.com/board/nobirth/29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