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성적으로 또는 교리적으로 출산을 권한다는 자들조차도, 막상 그들이 상상할 수 있는 최악의 인간상을 가진 자가 아이를 낳아도 되냐고 물으면, 선뜻 단호하게 그렇다고 말하지는 못한다. 이것은 보편교회의 사제조차도 예외가 아니다.

애초에 반드시 낳아야 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충분한 악조건을 달면 그래도 낳는 게 낫다고 감히 말하지 못하는 것이다.

이렇듯 모든 사람이 부모가 돼도 좋다고 진심으로 생각하는 사람은 찾기 힘들다. 다들 나름대로 막연한 부모 자격 평가 기준이 있다는 것이다.

그것은 결국 조건이 나쁜 부모에게서 태어났을 때 겪을 수 있는 심각한 고통 위험, 그러할 확률을 생각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다면 그 확률이 몇 % 이하여야 부모의 자격이 있을까? 한 49%이면 괜찮은 것일까?

결국 '왠지 나 정도까지는 괜찮지만 나보다 많이 아래인 사람은 안 낳는 게 나을 것 같다' 수준의 얕디 얕은 생각으로, 혹은 그런 일말의 생각조차 없이 아이를 낳고 마는 것이다.

우생학이 틀리는 이유도 위처럼 선별 기준이 막연하고 지극히 독선적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러한 합당한 선별 기준의 부재는 결코 누구나 부모가 돼도 된다는 의미를 함축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 반대로, 최소한 어떤 이는 부모가 되지 않는 것이 낫다는 직관이 있다면, 모든 이가 부모가 되지 않는 것이 가장 안전한 선택이라는 것을 함의한다는 것이다.

그 누구도 자신으로 인해 태어날 자에게 심각한 고통 위험과 죽음을 강요할 수 있는 자격 면허 따위는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