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부분 쾌락과 고통을 비대칭적으로 인식하게 하는 우리의 직관을 지적하는게 상당히 많았다
태어나서 비참한 삶을 사는 아이를 보며 슬퍼하는 보편정서를 통해 이끌어낼 수 있는 고통스러운 삶을 살 아이를 낳지 않아야 할 의무는
우리의 진화적산물일 뿐이며 신뢰할만한 직관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고 말한다.
그렇기 때문에 베너타가 자신의 비대칭성이 가장 잘 설명한다고 말한 출산의 4가지 비대칭성들도 애초에 왜 설명해야하냐고 의문을 제기한다.
이쪽을 지적하는 애들은 공리주의자들이 많았다.
동의문제의 경우, 동의를 구하는게 애초에 불가능하므로 도덕적 고려 대상이 아니라고 한다. 그 점에 관해서 그냥 생각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우리는 실제세계에서 지켜질 수 있는 도덕적 기준만을 생각해야한다고 말한다.
동의문제는 적어도 출산사안에선 그 누구도 지킬 수 없는데 대체 왜 그런 도덕적 개념을 제시하냐는 것이다.
베너타가 동의 문제에 관해서 그 자신이 개인적으로 어떻게 생각했는지모르겠다. 그의 저작에선 그저 양립불가능하지 않다고만 말했다.
애초에 태어나는게 순손해만 낳는다는 것을 보이는 것에 가장 큰 노력을 기한 것 같다.
그게 가장 치명적일테니깐.
태어나서 비참한 삶을 사는 아이를 보며 슬퍼하는 보편정서를 통해 이끌어낼 수 있는 고통스러운 삶을 살 아이를 낳지 않아야 할 의무는
우리의 진화적산물일 뿐이며 신뢰할만한 직관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고 말한다.
그렇기 때문에 베너타가 자신의 비대칭성이 가장 잘 설명한다고 말한 출산의 4가지 비대칭성들도 애초에 왜 설명해야하냐고 의문을 제기한다.
이쪽을 지적하는 애들은 공리주의자들이 많았다.
동의문제의 경우, 동의를 구하는게 애초에 불가능하므로 도덕적 고려 대상이 아니라고 한다. 그 점에 관해서 그냥 생각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우리는 실제세계에서 지켜질 수 있는 도덕적 기준만을 생각해야한다고 말한다.
동의문제는 적어도 출산사안에선 그 누구도 지킬 수 없는데 대체 왜 그런 도덕적 개념을 제시하냐는 것이다.
베너타가 동의 문제에 관해서 그 자신이 개인적으로 어떻게 생각했는지모르겠다. 그의 저작에선 그저 양립불가능하지 않다고만 말했다.
애초에 태어나는게 순손해만 낳는다는 것을 보이는 것에 가장 큰 노력을 기한 것 같다.
그게 가장 치명적일테니깐.
정작 자연주의 오류 개념을 부정하는 자나 공리주의자도 생각의 근거가 직관뿐인 건 마찬가지. 동의 문제는 핵심 논증에 비하면 부차적인 문제라고 할 수는 있다. 동의 없이 긴급하게 구조하거나 제한능력자의 권리를 대행하는 등의 사레가 있기 때문이다. 단, 이러한 경우는 더 큰 고통 위험을 막기 위해 위험을 감수하는 것이라는 명분이 있는 반면, 출산은 그렇지 않기 때문에 도덕적으로 위험한 행동이며, 공리주의가 아니라면 정당화가 어렵다. 그리고 공리주의는 강도 높게 비판받는다.
애초에 출산이 순손해만 낳는다는게 논증되면 사실 동의문제로부턴 비교적 자유로워 지지 않나 하는 생각도 드네. 내 생각에 순손해만 주는 행위에 동의문제가 구렁이 담넘어가듯 해결된다 하더라도 그다지 호소력은 없을 것 같다. 요새는 동의가 아니라 거부의 의사로 따지는 경우도 많긴 하던데 내 생각에도 메인문제는 아닌 듯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