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이 가지는 나쁨이 너무나 적다면 그의 철학적 견해가 무시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우리는 친구와 장난을 치면서 장난스럽게 때리거나 고통을 줄 수 있다. 그렇다고 해서 그걸 진지하게 도덕적으로 검토해보는 사람들이 얼마나 되는가?
그렇다면 장난으로라도 때리지 않는 것이 더 나았는가? 당연히 그렇다고 우린 대답할 수 있다.
때리지 않는 것이 더 나았지만 그 때림으로 인해 가하는 고통이 극도로 적고 상대방의 묵시적 동의가 있었다고 생각할 여지가 있기 때문에 진지하게 생각하지 않는 것뿐이다.

태어나지 않는 것이 낫다. 그것은 삶이 단 한 점의 나쁨만을 가지더라도 타당하다
하지만 그 나쁨이 극도로 적다면 진지하게 그것을 고려하고 실천적으로 행할 필요성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의 삶은 그렇지 않기 때문에 베너타는 삶의 질 논변을 꺼내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