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의 유력한 윤리 이론에는 다음 세 가지가 있다.


(1) 공리주의(Utilitarianism)


(2) 의무론(Deontology)


(3) 덕 윤리학 (Virtue Ethics)


이 윤리 이론들 중에서, 인간에게 적극적 의무(positive duties)가 아예 없다고 주장하는 이론은 없다.


여기서 '적극적 의무'라는 건, 선(good)을 증진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어떤 행위를 해야 할 의무를 가리킨다.


의무론의 경우에도, 어떠한 개인의 권리도 침해하지 않으면서, 자기에게 별 부담도 없으면서,


타인에게 '큰 도움'을 줄 수 있는 상황일 때, 그 큰 도움을 주는 행위를 굳이 안 하는 걸 도덕적으로 잘못이라고 본다.


그 '큰 도움'을 주는 행위에, 순수하게 막대한 쾌락을 주는 행위도 포함될 수 있을 것이다.


가령 내 앞에 놓인 버튼을 한 차례 누르면, 


어떠한 부작용 없이, 어떠한 다른 나쁜 결과도 전혀 발생하지 않으면서,


단지 전 인류의 쾌락이 지금보다 두 배가 된다고 하면, (ex. 오르가즘을 느낄 때 그 쾌락이 지금보다 두 배 더 오래 지속) 


그 버튼을 굳이 안 누르는 건, 분명 도덕적으로 그른 행위다.


만약 그가 끝끝내 그 버튼을 안 누르면, 사람들은 그를 못된 심술쟁이로 여길 것이다.


즉, 나에게 별 부담이 없을 때, 타인에게 '큰 도움'을 줄 수 있는데, 안 도와주는 건 도덕적으로 그르다.


(여기서 <별 부담이 없을 때>라는 조건이 중요한데, 만약 그 버튼 누르는 기회가 일생에 딱 한 번이 아니라,

매우 많아서 자신의 고유한 인생 기획과 활동을 방해할 정도, 또는 너무 귀찮을 정도가 되면, 얘기가 달라질 수 있겠지만,

여기서 가정된 상황은, 그 버튼 누르기 기회가 '딱 한 번'이라는 거다) 


일반적으로 인생에 여러 '좋음들', 즉, 쾌락, 욕구충족, 소원성취, 우정, 사랑, '진리를 알게 되는 것' 등등이 


없는 것보다야 있는 게 훨씬 더 낫다.


그래서 원래는 없던 그것들을 한 인간의 인생에 채워주는 것을 '큰 도움'이라고 할 수 있다.



베너타는


타인에게 고통을 가하지 않을 '소극적 의무'는 있지만,


좋음(ex. 쾌락)을 줄 '적극적 의무'는 없기 때문에


아이를 낳아서는 안 된다고 주장한 게 아니라,


우리에게 (그 행위를 하는 데 별 부담이 없지만 타인에게 큰 도움을 줄 수 있는) 행위를 해야 할 '적극적 의무'가 있기는 하지만,


사람을 존재케 하느냐 마느냐의 문제에 있어서는


그 적극적 의무가 '예외적'으로 적용이 안 된다고 주장한 것이다.


왜냐하면, 


이미 태어나서 존재하고 있는 사람의 경우에는, 원래는 없던 수많은 좋음들이 생기게 되는 사태를 더 나은 사태라고 평가할 수 있지만,


태어나지도 않아서 아예 존재하지도 않는 사람의 경우에는, 그가 태어남으로써 여러 좋음들이 생기게 되는 사태를 더 나은 사태라고 평가할 수 없기 때문이다.


만약,  


<태어나지도 않아서 아예 존재하지도 않는 사람의 경우에도, 그가 태어남으로써 여러 좋음들이 생기게 되는 사태는 그에게 더 나은 사태다!>


를 받아들이게 되면,


그리고 우리에게 이미 존재하는,


별 부담이 없을 경우, 타인에게 큰 도움을 줄 수 있는 행위는 해야 한다는 적극적 의무를 고려하면,


미래에 별 부담 없이 인간을 존재케하는 기계가 만들어졌다고 할 때,

우리는 어떤 경우(ex. 오직 쾌락만 경험하는 인간)에는 그 인간을 존재케 할 '의무'가 있다고 결론내려야 한다.


즉, 아예 태어나지도 않아서 존재하지도 않는


영희, 영철, 민수, 민기, 민준, 서연, 지우, 하준, 수현, 예은, 지혜, 은지, 유진, 보람, 아름, 미영 등등에 대해서


그들을 위해서 그들을 존재케해야 하며,


만약 기계를 작동시키지 않아서 그들을 존재케 하지 않으면,


(아예 태어난 적도 없는) 그들에게 도덕적 잘못을 한 것이라고 여겨야 한다.


이 얼마나 미친 소리인가.


정리하면,


타인에게 '큰 도움'이 되는 행위를 하는 데 별 부담이 없을 때 그 행위를 해야 할 '적극적 의무'가 우리에게 존재하기는 하나,


A가 태어남으로써 좋음(ex. 쾌락)이 생기게 되는 사태는


애초에 존재하지도 않는 A에게 있어서, 더 나은 사태, 도움이 되는 사태가 아니기 때문에


적극적 의무의 대상이 애초에 될 수 없다는 것이다.


결국 출산을 해야 되냐 말아야 되냐의 문제에서 


우리에게 남는 것은,


타인에게 정당한 이유 없이 '큰 해악'을 끼치지 않을 소극적 의무이며,


일반적으로 인생에 존재하는 수많은 심각한 해악들 (아토피, 관절염, 치매, 요로결석, 우울증, 조울증, 당뇨병, 디스크, 암, 죽음 등등)을 고려하면,


출산을 하여서는 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