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이비드 베너타의 저서 《태어나지 않는 것이 낫다》
마지막 장에 자살에 관한 내용이 나옵니다
그 부분만 제가 요약을 해드리자면.. 대충 이래요
자신이 자살을 함으로써 주변 사람들이 받을 고통 즉,
당신의 가족, 지인, 같은 소속의 사람들이 당신이 자살을
했다는 사실 때문에 느낄 고통의 총량을 고려했을 때
익명(211.117)2023-07-05 18:00
답글
'자신이 지금 삶을 마감함으로써 피할 수 있는
고통의 양'이 그것보다 크다면 자살이 정당화될 수
있다고요
하지만 그는 '당신의 부모가 당신의 죽음에 대해
평생 느낄 죄책감' 등이 더 큰 경우가 많기 때문에
자살이 항상 옳지는 않다는 스탠스를 취하고 있습니다
익명(211.117)2023-07-05 18:04
답글
극단적인 예시를 하나 듭시다
'나는 자연인이다' 급의 인간관계가 1도 없는, 숲에 사는
사람이 어느 날 나무에 목을 맸어요!
근데 이에 대해 고통을 느낄 사람이 1도 없네?
그러면 이 사람의 자살은 정당화될 수 있는 겁니다
익명(211.117)2023-07-05 18:08
답글
하지만 현실은 복잡하죠
친척, 형제자매 관계 그리고 동료들 등등.. 심지어는
시체를 목격한 이름모를 제3자들까지!
자신의 죽음 때문에 그 사람들이 느낄 고통의 총량을
계산하기란 쉽지 않습니다, 너무 복잡하죠
익명(211.117)2023-07-05 18:16
답글
'나는 나의 죽음 이후를 가정하지 않는다' 또는
'이것은 나를 존재시킨 내 부모에 대한 복수다!' 따위의
생각을
베너타는 옳지 않다고 봅니다
익명(211.117)2023-07-05 18:27
답글
고통의 양을 추정할 방법이 있습니까?
전 한부모가정에서 나고 자랐습니다. 친척과는 연을 끊은지 오래입니다. 몸이 불편해 그나마 하던 일용직마저도 힘들어서 지금은 실업급여로 버티고 있습니다.
선천적인 질병을 많이 앓고 있습니다. 온몸이 상처투성이입니다.
생긴 것도 몹시 못생겼습니다
나는 삶을 계속 살아갈 이유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익명(223.62)2023-07-05 19:01
우리가 사회에 속해 살아가는 한 자살은 어떤 도덕적 의무를 회피하는 수단이 되기 쉽다. 따라서 자살을 권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러나 따지고 보면 사람들이 도덕적 의무를 충실히 수행하지 않아서 자살 희망자가 발생하는 것이기에, 그에 대해 유독 가혹하게 비난하기도 어려울 것이다.
Gnostic(gnostic)2023-07-05 19:03
답글
또 죽으면 그만이라는 생각은, 죽게 만들면 그만이라는 생각으로 이어지기 쉽기 때문에, 심히 경계할 필요성이 있을 것이다. 다만 이미 삶이 버거운 자에게 이런 문제까지 이성적으로 고려하라고 말하는 것은 너무 무신경하고 가혹하게 느껴질 수도 있겠지.
결론적으로, 그리고 원칙적으로는 모두에게 자살보다는 지금 할 수 있는 선행을 권하지만, 그대가 삶이 너무나 고단하여 뇌가 열심히 자아내는 죽음의 공포를 가뿐히 이겨낼 정도라면, 적어도 나는 그대를 비난하지는 않을 것이다.
데이비드 베너타의 저서 《태어나지 않는 것이 낫다》 마지막 장에 자살에 관한 내용이 나옵니다 그 부분만 제가 요약을 해드리자면.. 대충 이래요 자신이 자살을 함으로써 주변 사람들이 받을 고통 즉, 당신의 가족, 지인, 같은 소속의 사람들이 당신이 자살을 했다는 사실 때문에 느낄 고통의 총량을 고려했을 때
'자신이 지금 삶을 마감함으로써 피할 수 있는 고통의 양'이 그것보다 크다면 자살이 정당화될 수 있다고요 하지만 그는 '당신의 부모가 당신의 죽음에 대해 평생 느낄 죄책감' 등이 더 큰 경우가 많기 때문에 자살이 항상 옳지는 않다는 스탠스를 취하고 있습니다
극단적인 예시를 하나 듭시다 '나는 자연인이다' 급의 인간관계가 1도 없는, 숲에 사는 사람이 어느 날 나무에 목을 맸어요! 근데 이에 대해 고통을 느낄 사람이 1도 없네? 그러면 이 사람의 자살은 정당화될 수 있는 겁니다
하지만 현실은 복잡하죠 친척, 형제자매 관계 그리고 동료들 등등.. 심지어는 시체를 목격한 이름모를 제3자들까지! 자신의 죽음 때문에 그 사람들이 느낄 고통의 총량을 계산하기란 쉽지 않습니다, 너무 복잡하죠
'나는 나의 죽음 이후를 가정하지 않는다' 또는 '이것은 나를 존재시킨 내 부모에 대한 복수다!' 따위의 생각을 베너타는 옳지 않다고 봅니다
고통의 양을 추정할 방법이 있습니까? 전 한부모가정에서 나고 자랐습니다. 친척과는 연을 끊은지 오래입니다. 몸이 불편해 그나마 하던 일용직마저도 힘들어서 지금은 실업급여로 버티고 있습니다. 선천적인 질병을 많이 앓고 있습니다. 온몸이 상처투성이입니다. 생긴 것도 몹시 못생겼습니다 나는 삶을 계속 살아갈 이유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사회에 속해 살아가는 한 자살은 어떤 도덕적 의무를 회피하는 수단이 되기 쉽다. 따라서 자살을 권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러나 따지고 보면 사람들이 도덕적 의무를 충실히 수행하지 않아서 자살 희망자가 발생하는 것이기에, 그에 대해 유독 가혹하게 비난하기도 어려울 것이다.
또 죽으면 그만이라는 생각은, 죽게 만들면 그만이라는 생각으로 이어지기 쉽기 때문에, 심히 경계할 필요성이 있을 것이다. 다만 이미 삶이 버거운 자에게 이런 문제까지 이성적으로 고려하라고 말하는 것은 너무 무신경하고 가혹하게 느껴질 수도 있겠지. 결론적으로, 그리고 원칙적으로는 모두에게 자살보다는 지금 할 수 있는 선행을 권하지만, 그대가 삶이 너무나 고단하여 뇌가 열심히 자아내는 죽음의 공포를 가뿐히 이겨낼 정도라면, 적어도 나는 그대를 비난하지는 않을 것이다.
좋은 답변 감사합니다.
옹호합니다. 삶의 선텍권은 온전히 자신에게 있다고 생각합니다. 생사도 마찬가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