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수아비 공격의 오류(상대방의 입장을 대체하여 환상을 만들어내고, 그 환상을 반박하는 것)
성급한 일반화의 오류(몇가지의 부족한 경험만을 가지고 그 전체의 속성을 섣부르게 판단)
익명(203.228)2023-02-19 01:24:00
싸우는 것(논쟁) 자체가 비도덕적임
도덕을 배제하고 논리로만 논증을 세운다면, 친죽음주의(왜냐하면 비존재가 더 낫다는 사상이기 때문)로 유도되기 쉽기 때문에 논쟁의 소지가 있지
하지만 전제부터가 잘못되었음. 비존재는 허상임. 본인이 태어나지 않는 것이 불가능하다면 타인도 마찬가지로 태어나지 않는 것이 불가능하지
죽음은 객체로서의 인식된 분별일뿐
익명(203.228)2023-02-18 18:59:00
답글
계약주의 하에서, 논쟁 자체는 가능하다. 그렇지 않다면 가해 가능성 때문에 대화 자체가 불가능할 것이다. 심지어 침묵하는 것조차 가해 가능성이 제기될 수 있다.
Gnostic(gnostic)2023-02-20 12:25:00
답글
반출생주의가 그럴 듯한 이유 중 하나는, 태어나지 않아서 아무런 항변권이 없는 미래 세대를 계약 대상으로 삼아, 가해 가능성을 정당화하려는 것은 지극히 일방적인 부정 계약으로 볼 수 있다는 것이다.
Gnostic(gnostic)2023-02-20 12:29:00
답글
비존재, 잠재적 존재, 가능적 존재를 상정하는 것은 문제가 없다. 그렇지 않다면, 우리는 가능세계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할 수 없게 된다. 너는 선택에 따른 예측을 하지 않고 살아가는가?
Gnostic(gnostic)2023-02-20 12:33:00
답글
가치를 배제한다면, 고통과 쾌락도 무의미하며, 친죽음주의로 유도되든 소극적 공리주의로 유도되든 하등 상관이 없을 것이다. 가치 논쟁에서 가치를 배제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그래야만 할 '가치'가 있는가?
Gnostic(gnostic)2023-02-20 12:40:00
답글
이미 태어난 본인이 태어나지 않는 것이 불가능한 것과, 본인이 태어나지 않은 가능세계를 생각할 수 있다는 것은 상충되지 않는다. 시공 개념을 생각했을 때, 우리가 있으니 반드시 외계인도 있다는 식의 귀납법만도 못한 구멍투성이 논증으로 보인다.
Gnostic(gnostic)2023-02-20 12:47:00
답글
가해 가능성을 정당화하려는 출생주의(존재가 낫다. 즉, 유애)를 '옹호' 하는 게 아니라 반출생주의(비존재가 더 낫다. 즉, 무유애) 비판하는 것임/
굳이 여기서 출생주의까지 이중으로 비판할 필요는 없지. 흑백논리를 위시한 유무 양극단적 견해를 여의기 위한 비판일 뿐.
그리고 너랑은 논쟁 안 해.
익명(203.228)2023-02-20 12:50:00
답글
화법을 그대로 따른다면, 이런 식으로 가능세계를 부정하는 것이 더 논쟁의 소지가 크다. 일반적으로 우리의 선택에 영향을 받는 것으로 간주되는 미래 세대의 문제는 곧 세대 간 정의 문제로 직결되기 때문이다. 우리의 선택이 어떤 미래 세대의 탄생에 있어서 아무런 효과를 갖지 않는다면, 미래 세대 앞으로 어떤 재앙이 예견되더라도 다 허상이며, 모든 자원을 소모하고 어떤 폭탄을 떠넘겨도 상관 없다는 세대 이기주의로 유도되기 쉽다.
Gnostic(gnostic)2023-02-20 12:55:00
답글
또 존재를 아예 시작하지 않은 것과, 존재하게 된 후 소멸하는 것은 의미가 완전히 동일하다고 말할 수 없다. 조악한 예시로, 어떤 사람에게 극한의 고통을 가하더라도, 그 사람이 죽게 유도만 하면, 그 사람이 태어나지 않은 것과 같다는 것은 용납될 수 없다.
Gnostic(gnostic)2023-02-20 12:58:00
답글
계속하든가 말든가, 니 선택이지. 니 논리에 니가 먹힐 뿐
익명(203.228)2023-02-20 13:00:00
답글
나는 메타윤리 자체를 부정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너는 너의 이해할 수 없는 집착을 위해 메타윤리를 오용하고 있다는 것이 문제다. 너는 사변과 실천의 영역을 넘나들면서 지적 허영심을 채우기 위해 체리피킹하고 있다는 것이다.
Gnostic(gnostic)2023-02-20 13:01:00
답글
또 자기소개?
익명(203.228)2023-02-20 13:06:00
답글
너는 제대로 된 논박을 한 번도 행한 적이 없다. 그저 자기도취적인 선언적 주장을 반복하고 만족할 뿐이다. 그러면서도 공격을 멈추지는 않는데, 하나 하나 명제를 놓고 따지는 것이 두렵기 때문일 것이다. 나도 이제는 너와 대화하고 싶진 않다. 단지 다른 자를 위해 네 궤변이 궤변임을 알릴 뿐이다.
Gnostic(gnostic)2023-02-20 13:06:00
답글
호옹이 Gnostic의 자기소개
익명(203.228)2023-02-20 13:07:00
답글
네가 관두지 않고 궤변을 늘어놓는 한, 또 기회가 되는 한 나는 계속 지적하고 명시할 것이다. 네가 유치한 반사를 하든 말든 이미 널 먼저 위하던 단계는 지났다.
Gnostic(gnostic)2023-02-20 13:10:00
답글
자기객관화를 생활화합시다
익명(203.228)2023-02-20 13:14:00
답글
본인이 그렇게 도덕의 메타 영역에 집착하면서도, 왜 스스로에 대한 메타 인지는 거부하는 것인가. 자신이 오류라고 지적질하는 것처럼, 본인이 수용할 수는 없는 것인가. 어쩌면 이러한 모순도 이 자의 허영의, 삿된 저의의 증거이리라. 고작 그 허영 때문에 굳이 답이 있을 수 없는 길만을 고집하고 있으니 어쩌겠는가.
Gnostic(gnostic)2023-02-20 13:28:00
답글
또 Gnostic의 자기소개? 나는 어떠한 사상에 대한 집착이 없다. 사상과 신념에 대한 집착은 '너' 아니냐? '나' 대신 '너'라고 주어를 자꾸 로꾸꺼로 붙이면 혼란이 가중되지
심리 투사 (자기의 측면을 타인에게 전가하는 것을 말한다. 방어 기제의 일종으로, 자신의 무의식적 충동이나 특성 (긍정적인 것과 부정적인 것 모두)을 타인에게 전가함으로써 자신에게 그런 충동이나 특성이 있다는 사실을 부정한다.)
1.136/ 그 논리적 오류들은 언어유희의 오류(언어나 문자의 소재로 유희하는 오류)라고 함
순환논리(윤회)의 오류는 언제까지 반복되는가? 허구적인 관념을 실재하는 대상으로 간주하여 부질없이 희롱하여 아무런 이로움이 없는 주장인 것을 알아차리고 희론의 적멸이 될 때까지 반복
익명(203.228)2023-02-20 14:14:00
답글
내가 유동 글에서 찾은 것만 일단 이 정도고, 내가 가짓수로 이걸 넘긴 좀 힘들 듯? 오류를 피하려면 교수고 뭐고 간에 아예 일상 언어를 안 내뱉는 게 최선이거든. 언어 논리도 반출생? ㅋ
익명(1.136)2023-02-20 14:15:00
답글
정작 불교는 저렇게 등신같이 자존심에 집착하지 말라고 무아를 말하는데 자아만 비대한 사이비 새끼가 달관한 척만 오짐 ㅋㅋ 근데 또 불교가 말하는 자기수양보단 남 지적질만 하고다니는 찌질함은 못 숨김 ㅋㅋ 이런거 보면 왕따에는 이유가 있다니깐 겉과속이 다른 음흉한새끼가 뭔 비 맞은 땡중 새끼마냥 혼자 중얼중얼
익명(103.251)2023-02-21 06:53:00
답글
위의 발언은 다른 사람들을 비하하거나 모욕하는 언어로 표현되어 있어 적절하지 않습니다. 모든 사람들은 서로 다른 견해와 문화, 종교를 가지고 있을 수 있으며, 이를 존중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불교는 자아에 집착하는 것이 인간의 고통의 원인이라고 말하며, 자아를 떨쳐내고 모든 존재와 연결된 세상을 이해하려는 학문적인 종교입니다. 그러나, 불교를 실천하는 사람들 중에도 모든 사람들이 그 가르침을 완벽하게 따르지는 않을 수 있습니다. 이것은 어떤 종교나 사상에도 해당될 수 있는 일입니다.
익명(203.228)2023-02-21 08:13:00
답글
따라서, 우리는 서로 다른 견해를 존중하고 서로에 대한 존중과 배려를 가지며, 서로의 차이점을 인정하는 문화를 만들어 나가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를 통해 서로 다른 종교나 문화를 가진 사람들끼리도 서로를 이해하고, 함께 살아가는 것이 가능할 것입니다.
익명(203.228)2023-02-21 08:13:00
답글
103.251/ 103.251의 자기소개? 자기객관화를 생활화합시다.
익명(203.228)2023-02-21 08:16:00
답글
103.251/ 저는 여친이 있습니다. 그러한 발언은 님에겐 사실일지 몰라도 저에겐 사실이 아닙니다.
익명(203.228)2023-02-21 08:45:00
ㄹㅇㅋㅋ
익명(175.120)2023-02-18 19:24:00
극공감
Spinnstdu(211.58)2023-02-19 01:08:00
답글
동정에 호소하기 오류(심정적인 공감대를 형성하는 데에는 도움이 될 수 있지만, 동정심 자체가 결론의 옳고 그름을 판정할 수 있는 기준이 되는 것은 아님)
익명(203.228)2023-02-19 01:37:00
사람에 호소하는 오류(반박뿐 아니라 '옹호' 목적까지 포함한 것)
거짓 원인의 오류 (오비이락의 오류, 예: 인신공격을 하니 합리적이고 완벽한 이론이다)
자연주의 오류 + 인신공격의 오류 + 전통성에 호소하는 오류 + 정자 생명체설 - dc App
허수아비 공격의 오류(상대방의 입장을 대체하여 환상을 만들어내고, 그 환상을 반박하는 것) 성급한 일반화의 오류(몇가지의 부족한 경험만을 가지고 그 전체의 속성을 섣부르게 판단)
싸우는 것(논쟁) 자체가 비도덕적임 도덕을 배제하고 논리로만 논증을 세운다면, 친죽음주의(왜냐하면 비존재가 더 낫다는 사상이기 때문)로 유도되기 쉽기 때문에 논쟁의 소지가 있지 하지만 전제부터가 잘못되었음. 비존재는 허상임. 본인이 태어나지 않는 것이 불가능하다면 타인도 마찬가지로 태어나지 않는 것이 불가능하지 죽음은 객체로서의 인식된 분별일뿐
계약주의 하에서, 논쟁 자체는 가능하다. 그렇지 않다면 가해 가능성 때문에 대화 자체가 불가능할 것이다. 심지어 침묵하는 것조차 가해 가능성이 제기될 수 있다.
반출생주의가 그럴 듯한 이유 중 하나는, 태어나지 않아서 아무런 항변권이 없는 미래 세대를 계약 대상으로 삼아, 가해 가능성을 정당화하려는 것은 지극히 일방적인 부정 계약으로 볼 수 있다는 것이다.
비존재, 잠재적 존재, 가능적 존재를 상정하는 것은 문제가 없다. 그렇지 않다면, 우리는 가능세계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할 수 없게 된다. 너는 선택에 따른 예측을 하지 않고 살아가는가?
가치를 배제한다면, 고통과 쾌락도 무의미하며, 친죽음주의로 유도되든 소극적 공리주의로 유도되든 하등 상관이 없을 것이다. 가치 논쟁에서 가치를 배제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그래야만 할 '가치'가 있는가?
이미 태어난 본인이 태어나지 않는 것이 불가능한 것과, 본인이 태어나지 않은 가능세계를 생각할 수 있다는 것은 상충되지 않는다. 시공 개념을 생각했을 때, 우리가 있으니 반드시 외계인도 있다는 식의 귀납법만도 못한 구멍투성이 논증으로 보인다.
가해 가능성을 정당화하려는 출생주의(존재가 낫다. 즉, 유애)를 '옹호' 하는 게 아니라 반출생주의(비존재가 더 낫다. 즉, 무유애) 비판하는 것임/ 굳이 여기서 출생주의까지 이중으로 비판할 필요는 없지. 흑백논리를 위시한 유무 양극단적 견해를 여의기 위한 비판일 뿐. 그리고 너랑은 논쟁 안 해.
화법을 그대로 따른다면, 이런 식으로 가능세계를 부정하는 것이 더 논쟁의 소지가 크다. 일반적으로 우리의 선택에 영향을 받는 것으로 간주되는 미래 세대의 문제는 곧 세대 간 정의 문제로 직결되기 때문이다. 우리의 선택이 어떤 미래 세대의 탄생에 있어서 아무런 효과를 갖지 않는다면, 미래 세대 앞으로 어떤 재앙이 예견되더라도 다 허상이며, 모든 자원을 소모하고 어떤 폭탄을 떠넘겨도 상관 없다는 세대 이기주의로 유도되기 쉽다.
또 존재를 아예 시작하지 않은 것과, 존재하게 된 후 소멸하는 것은 의미가 완전히 동일하다고 말할 수 없다. 조악한 예시로, 어떤 사람에게 극한의 고통을 가하더라도, 그 사람이 죽게 유도만 하면, 그 사람이 태어나지 않은 것과 같다는 것은 용납될 수 없다.
계속하든가 말든가, 니 선택이지. 니 논리에 니가 먹힐 뿐
나는 메타윤리 자체를 부정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너는 너의 이해할 수 없는 집착을 위해 메타윤리를 오용하고 있다는 것이 문제다. 너는 사변과 실천의 영역을 넘나들면서 지적 허영심을 채우기 위해 체리피킹하고 있다는 것이다.
또 자기소개?
너는 제대로 된 논박을 한 번도 행한 적이 없다. 그저 자기도취적인 선언적 주장을 반복하고 만족할 뿐이다. 그러면서도 공격을 멈추지는 않는데, 하나 하나 명제를 놓고 따지는 것이 두렵기 때문일 것이다. 나도 이제는 너와 대화하고 싶진 않다. 단지 다른 자를 위해 네 궤변이 궤변임을 알릴 뿐이다.
호옹이 Gnostic의 자기소개
네가 관두지 않고 궤변을 늘어놓는 한, 또 기회가 되는 한 나는 계속 지적하고 명시할 것이다. 네가 유치한 반사를 하든 말든 이미 널 먼저 위하던 단계는 지났다.
자기객관화를 생활화합시다
본인이 그렇게 도덕의 메타 영역에 집착하면서도, 왜 스스로에 대한 메타 인지는 거부하는 것인가. 자신이 오류라고 지적질하는 것처럼, 본인이 수용할 수는 없는 것인가. 어쩌면 이러한 모순도 이 자의 허영의, 삿된 저의의 증거이리라. 고작 그 허영 때문에 굳이 답이 있을 수 없는 길만을 고집하고 있으니 어쩌겠는가.
또 Gnostic의 자기소개? 나는 어떠한 사상에 대한 집착이 없다. 사상과 신념에 대한 집착은 '너' 아니냐? '나' 대신 '너'라고 주어를 자꾸 로꾸꺼로 붙이면 혼란이 가중되지 심리 투사 (자기의 측면을 타인에게 전가하는 것을 말한다. 방어 기제의 일종으로, 자신의 무의식적 충동이나 특성 (긍정적인 것과 부정적인 것 모두)을 타인에게 전가함으로써 자신에게 그런 충동이나 특성이 있다는 사실을 부정한다.)
선결 문제 요구의 오류, 논점 일탈의 오류, 원천봉쇄의 오류, 은밀한 재정의의 오류, 거짓 결론의 오류, 선언지 긍정의 오류, 전건 부정의 오류, 매개념 부주연의 오류, 미끄러운 비탈길의 오류, 무지에 호소하는 오류(or 인과 역전의 오류, 거짓 추측의 오류), 인신공격의 오류(피장파장의 오류)
1.136/ 그 논리적 오류들은 언어유희의 오류(언어나 문자의 소재로 유희하는 오류)라고 함 순환논리(윤회)의 오류는 언제까지 반복되는가? 허구적인 관념을 실재하는 대상으로 간주하여 부질없이 희롱하여 아무런 이로움이 없는 주장인 것을 알아차리고 희론의 적멸이 될 때까지 반복
내가 유동 글에서 찾은 것만 일단 이 정도고, 내가 가짓수로 이걸 넘긴 좀 힘들 듯? 오류를 피하려면 교수고 뭐고 간에 아예 일상 언어를 안 내뱉는 게 최선이거든. 언어 논리도 반출생? ㅋ
정작 불교는 저렇게 등신같이 자존심에 집착하지 말라고 무아를 말하는데 자아만 비대한 사이비 새끼가 달관한 척만 오짐 ㅋㅋ 근데 또 불교가 말하는 자기수양보단 남 지적질만 하고다니는 찌질함은 못 숨김 ㅋㅋ 이런거 보면 왕따에는 이유가 있다니깐 겉과속이 다른 음흉한새끼가 뭔 비 맞은 땡중 새끼마냥 혼자 중얼중얼
위의 발언은 다른 사람들을 비하하거나 모욕하는 언어로 표현되어 있어 적절하지 않습니다. 모든 사람들은 서로 다른 견해와 문화, 종교를 가지고 있을 수 있으며, 이를 존중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불교는 자아에 집착하는 것이 인간의 고통의 원인이라고 말하며, 자아를 떨쳐내고 모든 존재와 연결된 세상을 이해하려는 학문적인 종교입니다. 그러나, 불교를 실천하는 사람들 중에도 모든 사람들이 그 가르침을 완벽하게 따르지는 않을 수 있습니다. 이것은 어떤 종교나 사상에도 해당될 수 있는 일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서로 다른 견해를 존중하고 서로에 대한 존중과 배려를 가지며, 서로의 차이점을 인정하는 문화를 만들어 나가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를 통해 서로 다른 종교나 문화를 가진 사람들끼리도 서로를 이해하고, 함께 살아가는 것이 가능할 것입니다.
103.251/ 103.251의 자기소개? 자기객관화를 생활화합시다.
103.251/ 저는 여친이 있습니다. 그러한 발언은 님에겐 사실일지 몰라도 저에겐 사실이 아닙니다.
ㄹㅇㅋㅋ
극공감
동정에 호소하기 오류(심정적인 공감대를 형성하는 데에는 도움이 될 수 있지만, 동정심 자체가 결론의 옳고 그름을 판정할 수 있는 기준이 되는 것은 아님)
사람에 호소하는 오류(반박뿐 아니라 '옹호' 목적까지 포함한 것) 거짓 원인의 오류 (오비이락의 오류, 예: 인신공격을 하니 합리적이고 완벽한 이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