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명 고통에도 행복을 위한 도구적 의미가 있을 수 있다.
시련이 있기에 해방감도 있고, 비 온 뒤에 땅이 굳는 것 아니겠는가?
그러나 이것이 곧장 고통이 나쁘다는 것을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이는 '살인은 나쁘다'와도 어느 정도 통하는 구석이 있다.
직업군인은 적나라하게 말하면 유사시 살인가능자 아닌가?
테러범을 현장에서 사살하는 문제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것 역시 곧장 살인이 나쁘다는 것을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되도록, 우리는 고통을 원치 않고, 죽음을 원치 않는다.
따라서 되도록, 괴롭혀서는 안 되고, 죽여서는 안 된다.
그럼에도 그것을 필요로 할 때는, 그것보다 더한 고통을 겪거나 그것이 예상되는 경우뿐이다.
분명 이미 태어난 우리에게 적당한 고통은 필요하다.
그러나 그것은 태어나지 않았다면 불필요했을 삶의 부조리한 구조일 뿐이다.
또 각 개인이 갖는 한계를 넘는 고통이 발생할 때, 개인의 정신은 회복 불능으로 무너지고 만다.
이러한 고통과 그 위험은 결코 사소하지 않으며, 심각하게 다루어야 할 문제다.
그러므로 되도록, 그러한 고통 위험을 타자에게 강제해서는 안 된다.
마찬가지로 회복 불능 그 자체인 죽음과 그 위험은 사소하지 않고, 심각하게 다루어야 할 문제다.
그러므로 되도록, 그러한 죽음 위험을 타자에게 강제해서는 안 된다.
그리고 애초에 태어나지 않으면, 회복할 필요도 없고, 회복 불능이 될 위험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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