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둘을 구분 짓지 못하고 하나로 퉁쳐서 생각하니

"반출생주의자는 삶이 해악이라면서 왜 안 죽고 지속함? 모순적이네?" 같은 망언을 하는거임.



반출갤 들어오려다 탈반갤 들어가게 돼서 탈반갤 주딱이라는 사람이 반출생주의와 베네타의 주장을 멋대로 해석하려는 글을 써놨길래 적어봄.

왜 탈반갤에 안적느냐?

굳이 사상, 생각이 다른 갤에 들어가서 상.철이나 대올이처럼 분탕 짓 하기 싫고 혹시 혹할 반출갤러들한테 반출생주의를 멋대로 해석한(잘못 이해하고 있는) 논리라는걸 알리기 위한 목적도 가지고 쓰려고 함.



저 망언은 사실 베네타가 이미 반박을 해뒀어 책에.. 그러니 명색이 탈반갤 주딱이라는 사람이 반출생주의에 대해 전혀 이해하지도, 찾아보지도 않고 본인 생각만 적어둔 거라는거지.. 적어도 반출생주의를 '논리적'으로 반박하려면 반출생주의를 제대로 이해는 하고 있어야지.. 아무튼.


제목에도 적어 놓았듯이 시작할 가치가 있는 삶과 지속할 가치가 있는 삶은 베네타의 '태어나지 않는 것이 낫다'에서도 명확히 구분해서 얘기하고 있는 내용임.

내가 지어낸 말이 아니라 베네타가 직접 언급한 내용이라는 거임.

먼저 책(48p)에서도 '삶을 지속할 가치가 있다고 해서 그것이 시작할 가치가 있다거나, 만일 삶을 시작할 가치가 없다면 지속할 가치가 없는 것이라는 추론이 성립하지는 않는다' 

딱 저 탈반갤 주딱이 멋대로 해석한 논리 그대로 반박해둠. 그 예를 베네타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팔다리가 없는 삶을 사는 것이 그 삶을 너무나 나쁘게 만들어서 인생을 끝내는 게 좋겠다고 생각하지 않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또한 팔다리가 없는 누군가를 존재하게 하지 않는 것이 낫다고 생각한다고 말하고 있음. 

즉, 삶을 시작하지 않는 결정보다 삶을 끝내는 결정은 더 강력한 정당화를 필요로 한다는거지. 예를 들어 영화관에서 영화를 볼 때 그 영화가 너무 나빠서 그걸 애초에 보러 가지 않았던 것이 나았을 것이면서도 영화가 끝나기 전에 자리를 뜨는 사람이 많진 않잖아.

'삶이 해악이라면서 왜 안죽음?' 이라는건 반출생주의를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는거임.



여기에 이어서 이런 말도 하더라..?

"반출생주의자는 앞으로 태어날 이의 고통을 예방하자는 윤리라고 반론하지만, 그 반론 역시 모순적임. 왜냐. 삶의 지속을 중단하는 것 역시 앞으로의 삶의 고통을 예방하는 차원이라고 재반론할 수 있음."

역시 저 둘을 구분 짓지 못하고 자기중심적인 생각만 하니 그런 결론에 다다른거임..


앞으로 태어날 이의 고통이란 말 그대로 존재하고 있는 사람의 고통이 아니라 아직 존재하지 않는 고통임. 아직 태어나지 않은 존재에게 우리의 이기심과 만족감으로 태어나게 하지 말자는 즉, 우리 멋대로 타인의 고통을 시작하게 하지 말자는거고.(인간에겐 타인에게 고통을 주지 않아야할 의무가 있으니.)

삶의 지속을 중단하는 것은 존재하고 있는 우리가 자유롭게 선택하면 될 문제임. 삶의 지속 여부를 결정하는 건 안타깝지만 이미 태어나 버린 우리의 선택이잖아.


타인에게 멋대로 고통을 주는 것을 예방하자는 것과 이미 태어나 버린 내가 내 삶의 고통을 겪는 건 다른 차원의 문제라고.



그리고 "왜 안죽고 꾸역꾸역 살고 있냐"는 질문은 참 볼때마다 웃기다? 반출생주의자가 단순히 앞뒤 다 짜르고 그냥 죽자!!!!!!!!!!! 이러는 게 아닌데..?

삶이 고통이고 그 삶의 고통엔 죽음의 고통도 포함되어 있는데 왜 죽음의 고통 역시 싫다는 사람들 보고 죽음의 고통을 당장 느껴서 죽지 않는다고 뭐라 하는건지 참.. 매번 드는 생각인데 최소한 안락사라는 죽음의 물리적 고통을 없앨 수 있는 방법을 막진 말고 얘기해야 하는 거 아닌가? 안락하게 죽을 방법이란 방법은 다 막아 놓고 "왜 반출생주의자는 안 죽음?" 이라고 따지면 어이가 없긴 해 ㅋㅋ..


글이 길었는데 읽어주신 분들 감사하고 저런 말 같지도 않은 말장난에 놀아나지 맙시다. 이왕 태어난 거 반출생주의자로써 다른 존재에게 고통을 주지 않으면서 항상 행복했음 좋겠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