냉소주의는 위험하다.


회의주의와 다르게 합리적인 이유로 믿지 않는

것이 아니라 그냥 믿지 않기 때문이다.


사회는 이들을 원하지 않는다.


이유 없는 불신은 그 어떤 생산적인

결과를 내놓을 수 없기 때문이다.


반출생주의를 외치면서

이 문제를 극복하지 않으면

어떤 조직이든 겉돌다가

쫓겨나거나 제 발로 나오게 된다.



우리는 감정을 언어 뿐만 아니라

표정과 행동으로 읽는다.


그런데 함께 일상을 보내는 동료가

자신의 존재 이유조차 흔드는 생각과 행동으로

자신을 대한다면 누가 그 사람과 있고 싶을까?




좁은 방에서,


광신도 부부가 낳은 아들은

게으른 완벽주의인 아버지와

감정이 불안형인 어머니 사이에서

눈치 100단으로 자라났다.


아들이 가진 생존 시스템은

더 복잡하고 체계적인 사회에

걸맞지 않았고

신념 체계를 바꾸기엔

그조차 게으르고 능지 문제가 있었다.


아들이 선택한 새로운 생존 시스템은

세상을 뿌리부터 믿지 않는 것이었다.


인간을.

이 이기적 유전자를.

세포 단위부터 의심하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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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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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 자신을 믿지 못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