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이란 정말로 위대한 감정인가?


흔히 명작이라고 평가받는 암울한 소설의 결말은 인간이 가진 고유한 가치를 조명하면서 끝을 맺는다.

이 경우 예술적인 마무리로 퉁 칠 수도 있지만, 왜 하필 인간성을 강조하는 것일까?


나는 이론가가 아니기 때문에 인간성을 이론적이거나 체계적으로 설명할 능력이 없다.

내가 삶을 살아오면서 느낀 감정과 감각을 바탕으로 설명 할 수 있어도 논증과 합리적인 추론으로 인간의 대한 설명을 하긴 무리다.


이것은 내가 논픽션을 읽지 않고 문학을 줄곧 읽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지만, 그럼에도 인간성을 내 딴에 정의해보자고 한다면

사랑이라는 위대한 감정이 인간성이라고 믿는다.


나는 오랜시간 사랑이란 인간 그 자체일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인간의 욕망 중 이성이 아님에도 아름다운 몇 안되는 욕망은 타인을 사랑하는 행위이다.

이것은 성교나 저급한 성관계 따위가 아니라 어떤 정신적 경험에서 시작되는 아름다운 사랑,

즉 이상적인 사랑을 뜻한다. 나야말로 깊은 사랑의 가치가 삶에 모든 가치를 대변한다고 믿는 사람이었다. 적어도 반출생주의를 알아차리기 전에는 사랑이란 내 마음을 항상 고동치게 했고,

마음 속 깊숙이 스며온 나 아닌 영혼의 우아한 몸짓을 보고 느꼈다. 말이 이래서 그렇지 정말 좋았다는 표현을 다소 과장하게 말한 것 뿐이다.


그만큼 나는 삶에 대한 가치가 사랑이 없으면 존재 할 수 없으며, 그 사랑이란 가치는 따뜻한 느낌을 준다고 굳게 믿어왔다. 아무도 없는 고요한 곳에서도 사랑을 생각하면 얼어붙어있던

손과 발에 굳은 피들이 천천히 이완이 되고, 얼마 안가 기분이 좋아지는 것을 느낀다!


이 쾌락이란 정신에 한 측면을 담당해서 나의 모든 감각기관을 환성으로 시작해서 축제로 만들어버린다. 반면에 세상 모든 것이 아름다워 곳곳에 숨어있는 부조리들의 날카로운 시선을

발견하지 못하게 되는 단점도 지니고 있다. 사랑은 희생적이고 타자의 대한 생각을 끊임없이 하게 만든다. 나 아닌 존재를 생각하는 것, 이기심에서 벗어나는 첫 단계는 사랑에서 부터 시작한다고 믿었다.



그러나 죽음 앞에서는 이 사랑이 무슨 의미인가, 하는 생각도 많이 들었다. 아무리 백세 시대라도 내가 모르던 사이 걸린 병으로 50세에 죽을 수도 있는 것이고, 내 사랑이 사고사로 죽을 수도 있는 것이다.

그리하여, 생은 너무나도 냉혹하다. 제멋대로 움직이고 제어가 되지 않는다. 사랑의 가치를 한순간에 무너뜨릴 수 있는 변덕스러운 현실에서 깊은 사랑의 가치가 인간성을 대변 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운명에 놓인 인간들의 삶을 완벽하게 대변하진 못한다는 불완전함.


그렇기에 반출생주의에 대한 내 관심은 더 깊어져 갔다.


내 자식이 사랑의 가치를 너무나도 잘 알아버리게 된다면 한계 또한 명확히 알게 될 것이고,

그 사실이 분명해지면 숨어있던 우수적 기질이 그를 괴롭힐 것이며,

결국 그 조차도 병이던 사고사던

자연사던 어떤 죽음으로 인해

삶을 원망하며 쓸쓸하게 죽어버릴 것이다.


평생 사랑했던 대상의 안위를 걱정하고, 사랑이 죽어버린다면 절망 할 것이다.

따라서 나는 절망을 느끼게 해주고 싶지 않다.


아무리 사랑이 최고의 인간성이라고 해도,

우리는 결국에는 벼랑에 놓여지게 되는 법이고,

그곳에서 죽음을 받아들여야 한다.


나는 절망과 죽음을 자식에게 대몰림 해주고 싶지 않은 마음에

출산을 반대한다.


그러나 나는 아직까지도 이 사랑이라는 감정에 미련을 가지고 있다.

이 힘은 너무나도 강력하다. 인간에게 삶에 대한 에너지를 과분하게 주기 때문이다.


벗어나고 싶지만 이마저도 없다면 삶을 버틸 수 없을것만 같다.

애인을 사귀지 않아도 좋으니 사랑이라는 감정,

타자를 보고 느끼는 이 사랑이라는 감정이

죽을때까지 멈추지 않고,


끊임없이 내 마음에서 고동치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