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쾌락>고통인데 출산이 왜 나쁘냐?'

*'출산은 개인에게는 고통이더라도 종의 번영에는 이득이지 않은가?'

*'동물도 반출생하는 것이 옳은가 ?'


라는 질문을 가진 분이 가끔 보이던시던데

잠도 안 오고 해서 적어보는 설명글입니다. 참고 부탁드립니다.


ㅡ 출처 ; 반출생주의 나무위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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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산은 개인에게는 고통이더라도 종의 번영에는 이득이지 않은가?'


그러나 반출생주의는 인간에 대한 선발육종(選拔育種)을 추구하는 사상이 아니며, 공리주의적 희생 강요를 정당화하지도 않는다.


 단지 미래 세대의 희생 가능성을 담보로 하는 번식과 이를 당연시하는 행태에 대해, 연속적인 세대 이기주의(집단 이기주의)에 기반한 악습이라고 비판할 뿐이다.[74]


설령 악습의 수혜자가 악습의 단절로 인해 손해를 보게 된다 하더라도, 

그것을 영원히 악습을 이어나갈 핑계로 삼을 수는 없으며,

 그것 역시 악습의 폐해일 뿐 악습을 끊어낸 사람의 책임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또한 멸종 직전 세대가 곤경에 처한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비출산자의 책임이라고 볼 수는 없으며, 

오히려 그들의 생물학적 부모와 조상에게 책임이 있다고 볼 수 있다.


반출생주의에 대해 일고의 가치조차 없는 것으로 치부하는 경우가 있다.[75] 

그러나 설령 반출생주의에 동의하지 않더라도, 

하나 이상의 인격체를 창조하기 전에 태어날 인격체가 처할 상황에 대해 장시간·다방면으로 심사숙고해 보는 일 자체를 거부하는 태도는 책임감 있는 지성인이 취할 태도로 보기 어렵다. 


반출생주의의 의의는 개인·사회 편의에 의해 윤리적 사각지대에 방치된 출산의 당위성에 대해 재고하도록 유도하고, 

출산에 대한 사려 깊은 윤리적 검토를 요구한다는 것에 있다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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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서식지 파괴 등 각종 환경 파괴와 그에 따른 기후변화로 인해 무수한 종의 생명체가 고통받고 죽어가고 있다.


연구에 따르면 미국에서 아이를 한 명 덜 낳는 것은 환경을 고려하는 다른 활동보다 20배 가량의 온실가스 감축 효과가 있다.


(출산 = 환경오염 = 인류에게도 손해라는것.입니다.)



■'동물도 반출생하는 것이 옳은가 ? '


반출생주의자들은 동물 또한 원칙적으로는 태어나지 않는 것이 낫다고 본다.


 다만, 수술 전후의 고통이 없는 중성화수술[62]이 

아직까지는 불가능하므로, 일단은 동물 복지를 추구하는 선에서

 인간에게 의존하는 가축·반려동물 등의 번식을 최대한 억제하는 것이 좋다고 본다.[63]


 같은 맥락에서 반출생주의자들은 유기동물을 입양하되 일부러 번식시키지는 않는다.



■'쾌락>고통인데 출산이 왜 나쁘냐?'


베나타는 이 저서에서 고통과 쾌락의 비대칭성(asymmetry between pain and pleasure)과 삶의 질(quality of life) 논변을 반출생주의의 핵심 논거로 제시한다.#


베나타는 다음과 같은 전제를 제시한다.

고통은 나쁘다.

쾌락은 좋다.

고통의 부재는 좋다.

 설사 그 좋음이 어느 누구에 의해서도 향유(享有)되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쾌락의 부재는 나쁘지 않다.

 그 부재가 박탈(deprivation)이 되는 누군가가 존재하지 않는다면.


 ①고통이 존재하는 상황보다

 ③고통이 부재하는 상황은 명백하게 좋다. 

반면 ②쾌락이 존재하는 상황보다

 ④쾌락이 부재하는 상황은 쾌락이 박탈될 누군가가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나쁘지 않다. 

④쾌락을 누릴 존재가 없어서 쾌락이 부재하는 상황보다

 ②쾌락을 누릴 존재가 있어서 쾌락이 존재하는 상황이 우위에 있지 않다는 것이다.


 따라서 X가 존재하는 경우보다 존재한 적이 없는 경우가 언제나 더 낫다는 결론이 도출된다.


고통과 쾌락의 비대칭성은 대다수가 수용하는 아래의 비대칭성 사례들로 뒷받침된다.[4]


*재생산 의무의 비대칭성: 

우리는 불행한 사람들을 만들지 않을 도덕적 의무가 있다.[5] 

반면 행복한 사람들을 만들 도덕적 의무는 없다.


*전망적 이익의 비대칭성: 

우리가 아이를 만드는 근거로 태어날 아이의 이익을 언급하는 것은 이상하다.

 반면 우리가 아이를 만들지 않는 이유로 태어날 아이의 이익을 언급하는 것은 이상하지 않다. 

아이가 행복해질 수 있다는 것은 아이를 만드는 중요한 도덕적 이유가 되지 않는다. 

반면 아이가 불행해질 수 있다는 것은 아이를 만들지 않는 중요한 도덕적 이유가 된다. 


*회고적 이익의 비대칭성: 

우리는 우리의 결정으로 사람을 존재시킬 경우 그 사람이 처할 상황 때문에 결정을 후회할 수 있다.

 우리가 창조한 사람은 불행해질 수 있고, 고통의 존재는 나쁠 것이다.

 반면 우리는 우리의 결정으로 사람을 존재시키지 않을 경우 그 사람이 처할 상황 때문에 후회하는 일은 절대로 없다. 

그 사람은 전혀 존재한 적도 존재할 일도 없기 때문에 행복과 쾌락이 박탈될 일이 없고, 쾌락의 부재는 나쁘지 않을 것이다.


쾌락주의 이론에 따르면, 

개인의 삶의 질은 개인의 쾌락과 고통 체험 정도에 의해 결정된다. 


그런데 인간은 앞서 언급한 심리적 이유(낙관주의 편향, 적응, 비교) 때문에

 자신의 삶이 얼마나 많은 불쾌함이 있는지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다. 

인간은 반복적으로 먹고 마심으로써 인생 내내 거의 항상 존재하는 허기와 갈증을 잠깐씩만 해소하며, 

딱 기분 좋은 온도라고 느끼는 시간에 비해 훨씬 많은 나머지 시간에는 너무 덥거나 너무 춥다고 느낀다.


베나타는 다음과 같이 결론 내린다. 

사람은 존재하게 됨으로써 존재하지 않았다면 입지 않았을 다대한 해를 입는다. 

아예 존재하지 않았다면 좋음이 박탈될 수 없다. 

심지어 일말의 좋음조차도 궁극적으로는 죽음으로 인해 박탈될 수밖에 없다.[9]

 존재하게 되는 것은 순이익 대신 순손해를 낳는다.

 따라서 존재하게 되는 것은 항상 심각한 해악이며,

 출산은 항상 잘못이다.


물론 낙천주의자들은 삶에서 좋음과 나쁨의 비중을 비교해 좋음이 나쁨을 능가하는 한 존재시킬 가치가 있다고 주장할 수도 있다.

 이런 반론에 대해 베나타는 삶에서 좋음과 나쁨은 순서, 강도, 길이에 따라 다르기에 저런 식의 단순 계산은 어렵다고 지적한다.


또한 삶에서 나쁨이 어떤 임계점을 넘어서게 되면 

좋음의 양이 얼마가 되든 나쁨을 능가할 수 없으며,

 가령 아무리 많은 돈과 명예를 가졌더라도

 그것이 말기 암이나 고도 전신 화상 같은 것으로 인한 고통을 상쇄할 수는 없다고 말한다.[11]


현재도 지구 각지에는 각종 재난과 기근 등으로 고통받고 죽어가는 많은 사람들이 있다.

일부 실시간 통계 이 세상은 최고 특권층 부모가 낳은 아이들조차도 각종 치명적인 범죄, 질병, 재난의 피해자가 될 수 있다. 

설령 치명적인 사고를 모두 피하더라도 결국은 늙고 죽는다.



베나타는 출산에 대해 미래의 자손을 겨냥하는,

 총알이 가득 찬 총으로 행하는 러시안 룰렛에 빗댄다. 

이 때 총알이 일부만 차 있다고 가정하더라도,


 즉 고통의 도구적 가치[12]나 삶의 의미[13] 따위에 호소하더라도, 출산이 자녀로 하여금 위험을 감수하게 하는 부모의 일방적 결정이라는 것은 변함이 없으며 여전히 도덕적으로 문제가 된다.


선한 사람들은 자신의 아이들을 고통에서 벗어나게 하려고 그렇게나 노력하면서, 

아이들의 모든 고통을 예방하는 확실하면서도 유일한 방법이, 

그 아이들을 애초에 태어나지 않게끔 하는 것이란 사실까지는 대부분 깨닫지 못한다. 

그런 이들이 그토록 적다는 점은 매우 유별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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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에 첨부된 스샷의 작성자분들과 같은 질문을

가진 사람들이 요즘 자주 보이시길래 설명 드려보았습니다..

복사해온 내용이 참고가 되었길 바랍니다.


반출생주의 나무위키 출처도 댓글에 달아두겠습니다.

이 곳에서 거론되는 논쟁이나 궁금한 것의 대부분은 

그 글들에 이미 다 설명이 되어있는 부분들이니

참고하시면 이해에 도움이 될 것이리라 생각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