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인이 없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서 각 개인보고 살인하지 말라고 말하는게 뭐가 문제지요? 어차피 말해도 누군가는 살인을 할텐데요?
멸종은 수행의 결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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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당 댓글은 삭제되었습니다.2026-06-27 02:31:38.520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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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이게 포인트구나 ㅋ
딱 이 지점에서 늘상 비틀어재끼는거지.
늘 비슷하구만.
익명(211.173)2023-07-30 16:25:00
답글
멸종이 목표맞음. 그 목표를 위해 출산의 부도덕함을 보인거고.
살인이나 자살도 충분한 사회적 동의가 있다면 옹호하지 말아야할 이유는 없음.
친사망주의를 “아직” 함축하지 않는거지.
반출생주의가 순수한 의무론이라는건 솔직히 나도 동의안함
익명(223.33)2023-07-30 16:48:00
답글
고통받는 존재가 더 이상 없는게 중요하니깐.
그리고 그것을 위해 현세대가 멸종을 위해 희생하도록 요구하니깐.
출산파트만 보면 의무론적일지 모르나 논증 전체를 보면 소극적 공리주의에 가까움.
익명(223.33)2023-07-30 16:5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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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차피 멸종이야 하겠지만 언제 할줄 알고?
이른 멸종이 목표지.
익명(223.33)2023-07-30 16:5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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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지고 보면 "순수한" 의무주의는 생각하기 어려울 것이다. 그러나 그렇게 순수하지 않은 의무주의가 곧 현대 의무주의다. 의무주의는 결과가 전부는 아니라는 의미이지, 결과를 완전히 배제한다는 것이 아니다.
Gnostic(gnostic)2023-07-30 17:36:00
주딱아 그렇다면 대칭적으로 “순수한” 공리주의 또한 생각하기 어려운 것 아니냐? 공리주의자라고 해서 꼬옥 결과만을 중시하는 것은 아닐 것이고. 옛날에 고전공리주의가 막나갈때나 그랬지.
결과를 이루는 과정에서의 효용까지도 고려한다면 사실 의무론이냐 공리주의냐같은 딱딱한 이분법적 분류는 지금와선 실익이 없어보이는데.
익명(223.33)2023-07-30 17:43:00
답글
베너타도 그렇고 왜그렇게 공리주의와 선을 그으려는지 모르겠는지 사실 난 잘 모르겠다.
반출생주의의 접근성 때문에 대중의 오해를 살까봐 그러는건가.
익명(223.33)2023-07-30 17:46:00
답글
공리주의는 기본적으로 타 윤리관을 효용 수단으로 취급한다. 예컨대 공리주의자 피터 싱어는 반출생주의에 의문을 가지면서도 (기후 재앙 회피를 위한)인구 억제 수단으로 삼을 수는 있다고 한다. 공리주의적 관점에서 반출생주의를 수단 삼다가도, 그 효용이 다하면 반출생주의는 바로 폐기될 것이다.
Gnostic(gnostic)2023-07-30 17:57:00
답글
공리주의는 결국 효용주의다. 공리주의가 효용을 추구하지 않고 끝까지 의무주의적 원칙을 준수한다는 것은 이상한 일일 것이다. 물론 공리주의의 수정된 판본들이 있지만, 그것 역시 결국은 효용을 위함이고, 그렇지 않다면 굳이 의무주의 대신 그러한 수정된 판본을 지지할 이유는 없을 것이다.
Gnostic(gnostic)2023-07-30 18:0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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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출생주의를 공리주의 산하로 취급하는 것은 결국 반출생주의를 수단 삼는 것이며, 이윽고 더 이상 반출생주의라고 말하기 어려운 선택이 요구되는 순간이 올 것이다.
Gnostic(gnostic)2023-07-30 18:03:00
답글
굳이 딱딱한 이분법적 분류가 필요하냐고 한다면, 사실 나도 그렇지는 않다고 생각한다. 문제는 반출생주의=소극적 공리주의로 취급하는 자들이 있다는 것이고, 소극적 공리주의의 수행 모순이 깔끔하게 해결되지 않는 이상, 공리주의로 취급되는 것을 거부할 만한 이유가 생긴다는 것이다. (역설적으로 말해서, 반출생주의는 의무주의라고 주장하는 게 효용일 수도 있다.)
Gnostic(gnostic)2023-07-30 18:10:00
답글
난 반출생주의자들이 충분한 동의가 있다고 생각되면 고통없는 죽임을 거부할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았어.
친사망주의를 거부하려고 하는건 “아직” 동의가 있다고 어렵기 때문에. 출산이 묵시적동의가 없다는걸 무기로 가지려면 마땅히 죽음에 관해서도 그렇겠지.
출산을 안했더니 멸종이 되네? 라고 주장하는 것보다 멸종이 낫기 때문에 출산의 악함을 보였다고 생각했어
익명(223.33)2023-07-30 18: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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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삶의 질에 대해 우리가 진화적 산물에 의해 부당한 그림을 그리고 있다고 한다면 죽음에 대한 우리의 생각 또한 그럴 수 있지 않을까? 그리고 죽지 않고 삶을 지속함으로서 겪고 또 야기할 그 어마어마한 고통을 고려한다면 훨씬 그럴법하게 말할 수 있지 않아?
익명(223.33)2023-07-30 18:14:00
답글
댓글을 봤을 때 너는 소극적 공리주의를 지지하는 것으로 보인다. 행복 최대화, 고통 최소화만을 행동 원리로 취급하고 그외 정언적 의무를 부정하는(효용으로는 다루겠지만) 공리주의자는 반출생주의를 공리주의에 편입시키려고 노력할 만한 동인이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약하게라도 소극적 공리주의를 한 번 수용하기 시작하면, 결국 고통 최소화를 위한 과정상의 희생(작은 고통)을 정당화하게 될 것이다.
Gnostic(gnostic)2023-07-30 18: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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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의를 구해야 하는 이유를 공리주의적으로'만' 설정한다면, 그것은 언제든 상황에 따라 무효가 될 수 있다.
Gnostic(gnostic)2023-07-30 18:2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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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딱 말 들으니 대충 알겠다. 공리주의적으로 받아들이기 시작하면 자신의 일상적 행위에 모순이 생기는구만.
무신론에 결정론적 사고관을 가졌기 때문에 공리주의에 끌리는 것 같다.
적어도 일관된 사람으로 보이려면 의무론으로 이해해야겠구만.
익명(223.33)2023-07-30 18:37:00
답글
공리주의는 그 지지자를 가혹하게 몰아붙인다. 공리주의자는 가능한 한 항상, 끝없이 실시간으로 미래 결과를 머리 터지게 계산해야 한다. 그러나 인간은 불완전하여, 그러고도 결과가 좋지 않을 수 있고, 그 경우 공리주의적으로 악이 된다. 지옥으로 가는 길은 선의로 포장되어 있다. 우리는 그저 당장 눈 앞에 주어진 의무만 수행하기도 바쁘다는 것이다.
나도 무신론자고, 강한 결정론(양립불가론)이 귀납적으로는 끌린다. 그런데 만사가 결정됐든 아니든 실질적으로 달라질 게 있을까?
Gnostic(gnostic)2023-07-30 18:52:00
답글
나는 더 이상 우리 갤러리에서 비통함을 겪고 싶지 않다. 그것이 내가 부매니저 위임을 수락했던 이유다. 부디 스스로를 너무 몰아붙이지 말길, 그저 주어진 의무만 적당히 수행하고 말길 바란다.
출산의 해악만을 보이는 것이 더 안전하다는 것에 동의되네.
출산과 죽음은 비대칭적이다. 죽음은 죽기 전에 권리의 보유자가 있기 때문에 쾌고만이 유일한 가치라고 인정하지 않는 사람들에겐 상대적으로 많은 해명이 요구될 것 같다.
이런 비대칭성이 아쉽게 느껴지는건 어쩔 수 없는 것인가
익명(223.33)2023-07-30 19:3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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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순히 자신이 ~주의자라고 선언하는 것을 벗어나 저런 비존재 버튼같이 고통없는 죽음을 위해 실천적으로 노력해야만 의미가 있다는 말이구만. 그걸 경계하는거고.
진지하게 소극공리주의자라고 주장하는 철학자들도 친사망주의는 버리는 이유가 다 있었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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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이게 포인트구나 ㅋ 딱 이 지점에서 늘상 비틀어재끼는거지. 늘 비슷하구만.
멸종이 목표맞음. 그 목표를 위해 출산의 부도덕함을 보인거고. 살인이나 자살도 충분한 사회적 동의가 있다면 옹호하지 말아야할 이유는 없음. 친사망주의를 “아직” 함축하지 않는거지. 반출생주의가 순수한 의무론이라는건 솔직히 나도 동의안함
고통받는 존재가 더 이상 없는게 중요하니깐. 그리고 그것을 위해 현세대가 멸종을 위해 희생하도록 요구하니깐. 출산파트만 보면 의무론적일지 모르나 논증 전체를 보면 소극적 공리주의에 가까움.
어차피 멸종이야 하겠지만 언제 할줄 알고? 이른 멸종이 목표지.
따지고 보면 "순수한" 의무주의는 생각하기 어려울 것이다. 그러나 그렇게 순수하지 않은 의무주의가 곧 현대 의무주의다. 의무주의는 결과가 전부는 아니라는 의미이지, 결과를 완전히 배제한다는 것이 아니다.
주딱아 그렇다면 대칭적으로 “순수한” 공리주의 또한 생각하기 어려운 것 아니냐? 공리주의자라고 해서 꼬옥 결과만을 중시하는 것은 아닐 것이고. 옛날에 고전공리주의가 막나갈때나 그랬지. 결과를 이루는 과정에서의 효용까지도 고려한다면 사실 의무론이냐 공리주의냐같은 딱딱한 이분법적 분류는 지금와선 실익이 없어보이는데.
베너타도 그렇고 왜그렇게 공리주의와 선을 그으려는지 모르겠는지 사실 난 잘 모르겠다. 반출생주의의 접근성 때문에 대중의 오해를 살까봐 그러는건가.
공리주의는 기본적으로 타 윤리관을 효용 수단으로 취급한다. 예컨대 공리주의자 피터 싱어는 반출생주의에 의문을 가지면서도 (기후 재앙 회피를 위한)인구 억제 수단으로 삼을 수는 있다고 한다. 공리주의적 관점에서 반출생주의를 수단 삼다가도, 그 효용이 다하면 반출생주의는 바로 폐기될 것이다.
공리주의는 결국 효용주의다. 공리주의가 효용을 추구하지 않고 끝까지 의무주의적 원칙을 준수한다는 것은 이상한 일일 것이다. 물론 공리주의의 수정된 판본들이 있지만, 그것 역시 결국은 효용을 위함이고, 그렇지 않다면 굳이 의무주의 대신 그러한 수정된 판본을 지지할 이유는 없을 것이다.
반출생주의를 공리주의 산하로 취급하는 것은 결국 반출생주의를 수단 삼는 것이며, 이윽고 더 이상 반출생주의라고 말하기 어려운 선택이 요구되는 순간이 올 것이다.
굳이 딱딱한 이분법적 분류가 필요하냐고 한다면, 사실 나도 그렇지는 않다고 생각한다. 문제는 반출생주의=소극적 공리주의로 취급하는 자들이 있다는 것이고, 소극적 공리주의의 수행 모순이 깔끔하게 해결되지 않는 이상, 공리주의로 취급되는 것을 거부할 만한 이유가 생긴다는 것이다. (역설적으로 말해서, 반출생주의는 의무주의라고 주장하는 게 효용일 수도 있다.)
난 반출생주의자들이 충분한 동의가 있다고 생각되면 고통없는 죽임을 거부할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았어. 친사망주의를 거부하려고 하는건 “아직” 동의가 있다고 어렵기 때문에. 출산이 묵시적동의가 없다는걸 무기로 가지려면 마땅히 죽음에 관해서도 그렇겠지. 출산을 안했더니 멸종이 되네? 라고 주장하는 것보다 멸종이 낫기 때문에 출산의 악함을 보였다고 생각했어
그리고 삶의 질에 대해 우리가 진화적 산물에 의해 부당한 그림을 그리고 있다고 한다면 죽음에 대한 우리의 생각 또한 그럴 수 있지 않을까? 그리고 죽지 않고 삶을 지속함으로서 겪고 또 야기할 그 어마어마한 고통을 고려한다면 훨씬 그럴법하게 말할 수 있지 않아?
댓글을 봤을 때 너는 소극적 공리주의를 지지하는 것으로 보인다. 행복 최대화, 고통 최소화만을 행동 원리로 취급하고 그외 정언적 의무를 부정하는(효용으로는 다루겠지만) 공리주의자는 반출생주의를 공리주의에 편입시키려고 노력할 만한 동인이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약하게라도 소극적 공리주의를 한 번 수용하기 시작하면, 결국 고통 최소화를 위한 과정상의 희생(작은 고통)을 정당화하게 될 것이다.
동의를 구해야 하는 이유를 공리주의적으로'만' 설정한다면, 그것은 언제든 상황에 따라 무효가 될 수 있다.
주딱 말 들으니 대충 알겠다. 공리주의적으로 받아들이기 시작하면 자신의 일상적 행위에 모순이 생기는구만. 무신론에 결정론적 사고관을 가졌기 때문에 공리주의에 끌리는 것 같다. 적어도 일관된 사람으로 보이려면 의무론으로 이해해야겠구만.
공리주의는 그 지지자를 가혹하게 몰아붙인다. 공리주의자는 가능한 한 항상, 끝없이 실시간으로 미래 결과를 머리 터지게 계산해야 한다. 그러나 인간은 불완전하여, 그러고도 결과가 좋지 않을 수 있고, 그 경우 공리주의적으로 악이 된다. 지옥으로 가는 길은 선의로 포장되어 있다. 우리는 그저 당장 눈 앞에 주어진 의무만 수행하기도 바쁘다는 것이다. 나도 무신론자고, 강한 결정론(양립불가론)이 귀납적으로는 끌린다. 그런데 만사가 결정됐든 아니든 실질적으로 달라질 게 있을까?
나는 더 이상 우리 갤러리에서 비통함을 겪고 싶지 않다. 그것이 내가 부매니저 위임을 수락했던 이유다. 부디 스스로를 너무 몰아붙이지 말길, 그저 주어진 의무만 적당히 수행하고 말길 바란다.
알겠다. 무슨 뜻인지 이해했어. 이미 분탕때매 기빨렸을텐데 미안하고 고맙다
https://m.dcinside.com/board/nobirth/462
출산의 해악만을 보이는 것이 더 안전하다는 것에 동의되네. 출산과 죽음은 비대칭적이다. 죽음은 죽기 전에 권리의 보유자가 있기 때문에 쾌고만이 유일한 가치라고 인정하지 않는 사람들에겐 상대적으로 많은 해명이 요구될 것 같다. 이런 비대칭성이 아쉽게 느껴지는건 어쩔 수 없는 것인가
단순히 자신이 ~주의자라고 선언하는 것을 벗어나 저런 비존재 버튼같이 고통없는 죽음을 위해 실천적으로 노력해야만 의미가 있다는 말이구만. 그걸 경계하는거고. 진지하게 소극공리주의자라고 주장하는 철학자들도 친사망주의는 버리는 이유가 다 있었군
접점이 있는 것 같긴 한데, 막상 달고 보니 애매해서 금새 원론적인 링크로 갈았었는데, 그새 다 진지하게 읽고 왔구나. 별개로 하나만 더 덧붙이며 그대가 조금이라도 더 스스로에게 관대해질 수 있기를 기원하겠다.
https://m.dcinside.com/board/nobirth/54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