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제로 인간은


고통을 겪는 사람이 있으면 거기에 공감하는 능력이 있음.


이건 교육으로 배우는 게 아니라 인간의 뇌가 그렇게 되어 있음.


그게 없는 게 싸이코패스인 거고.


그렇게 서로 고통을 공감하고, 서로 도우면서 고통을 극복하고 번식해서 여기까지 왔음.


예를 들면 고대 인류의 유골 중에 부러진 뼈가 회복된 흔적이 보이는 경우가 남아 있었는데


이건 그들이 다친 자의 고통에 공감하고 보호하고 돌보아서 회복할 수 있었기 때문임.


그게 아니면 그 고대 인간은 그냥 들판에서 맹수에게 사냥당해 죽음을 맞았겠지.




우리가 이제 와서 고통이 좋냐 나쁘냐 할 게 아니라, 인간이라는 동물이 고통을 피하고 싶어함.


자신들이 피해야 하고 극복해야 할 것이라고 뇌 속에 프로그래밍을 해 둔 거임.


그걸 베네타는 '고통은 나쁘다' 라고 표현한 거겠지.


그리고 난 그게 틀렸다고 생각하지 않음.




그래서 더더욱 내 아이가 이 세상에 없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 거임.


태어나지도 않은 생명이 아직 겪지도 않은 고통에 어떻게 공감하냐고?


일어나지도 않은 고통을 왜 걱정하냐고?



모두가 고통스러워 하는 모습이 매일 내 눈에 보이니까.


억지로 버텨가면서, 죽지 못해 사는 모습이 매일 내 눈에 보이니까. 내 귀에 들리니까.


아까 얘기한 고대 인간의 환경이 어땠는지 모르지만, 우리는 우리의 고통을 숨기고 가면을 써야 하는 시대에 살고 있으니까.


그리고 그 외로운, 어쩌면 그 고대 인간이 살았을 세상보다 더 외로운 세상이 현재, 그리고 미래에도 계속될 테니까.



그러니 나는 이 모든 걸 내 대에서 끊고 싶은 거임.



낳고 싶으면 낳아.


난 반출생주의 남한테 강요 안 해.


하지만 난 안 낳을 거야.


나한테 보이는 이 고통의 굴레는 내 아이한테도 보일 게 뻔하니까


그리고 걔도 이 굴레 속에서 죽지 못해 살테니까


난 안 낳을 거야.


그걸로 끝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