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고 보니 글이 꽤 길어졌네요.. 최대한 간단하게 적고 싶었는데.. 이해를 돕기 위해 꼭 들어가야하는 내용들이 많아서.. 긴 글 읽어주심 정말 감사하겠습니다!



며칠 전에 삶의 질 평가에 개인의 감정이 포함되면 안된다고 했었는데


이 글에선 베네타는 왜 인간의 삶의 질이 항상 나쁜 것이라 주장한건지 그 이유를 써보겠습니다.

들어가기 앞서 탈반갤에서 태않낫의 내용이 조잡하다느니, 너무 쉽다느니 하던데 책 서문에 이런 말이 있습니다.

'이 책의 많은 부분은 철학에 아무런 배경 지식을 가지고 있지 않은 지성적인 독자들이 쉽게 읽을 수 있게 되어 있다.'

책을 접할 사람들에게 복잡한 기호와 철학적 논제를 던져가며 가독성을 떨어뜨리지 않고 최대한 접근성을 높인 책이라고 생각됩니다.

저 역시 이 생각에 깊이 공감하고 있기에 태않낫을 전부 읽기 힘들거나 귀찮은 사람들에게 최대한 이해가 갈 수 있도록 쉽게 글을 쓰고 싶습니다. 물론 전 어디까지나 책 내용을 제가 이해한 선에서 요약해서 전달하는거니 더 자세히 알고 싶은 분은 책 사서 읽어보는 걸 추천해드려요. 그리고 제가 잘못 이해한 부분이 있을 수 있으니 댓글로 알려주세요! 제가 글을 쓰는 목적은 반출생 전파와 토론 목적 다 가지고 있으니깐요.





먼저 삶의 질에 관한 이론으로 책에선 저명한 세 견해를 소개합니다.(베네타가 분류한건 아니고 데릭 파핏이라는 철학자가 쓴 '이성과 인간'이라는 책에서 분류했다고 각주에 달려있습니다.)
이 글에선 쾌락주의 이론, 욕구 충족 이론, 객관적 목록 이론 중 쾌락주의 이론 관점에서 살펴보겠습니다.

쾌락주의 이론에 따르면 삶이 긍정적인 정신 상태(쾌락)나 부정적인 정신 상태(고통)로 특정지어지는 정도에 따라 삶의 질이 좋거나 나쁘다고 평가합니다.

그렇다면 그 정신상태를 세 가지로 구분할 수 있습니다. 부정적인 상태(고통), 긍정적인 상태(쾌락), 중립적인 상태.

여기서 또 긍정적 상태는 두 종류가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1. 부정적 정신 상태에서의 구제, 2. 내재적 긍정 상태
물론 구분 했지만 베네타는 쾌락이 이 두 종류를 모두 갖고 있을 수 있다고 했습니다. 예를 들어 맛있는 음식을 먹는 것은 배고픔에서 구제해 주면서도 맛이 훌륭한 내재적 쾌락을 주니까요. 반대로 맛없는 음식은 배고픔 구제는 되지만 내재적 쾌락은 줄 수 없을겁니다.

앞선 글에서 언급했듯이 개인이 스스로 삶의 질을 평가하면서 낙관편향, 적응, 비교 등에 휩쓸려 삶을 평가하면 우리 삶이 부정적인 정신 상태로 얼마나 많이 특징지어지는지 무시하게 됩니다. 설사 그것이 흔히 무시되는 약간의 부정적 상태일지라도요. 예를 들어 배고픔, 목마름, 대소변 마려움, 피곤함, 스트레스, 체온 불편감, 가려움 등은 수십억명의 사람들이 매일 이런 종류의 부정적 상태로 특징지어집니다.
배고픔과 갈증이 해결되기까지(배가 고프자마자 먹는 게 아닌 이상) 배고프거나 갈증이 있는 상태로 있게되고요.

낙천편향 때문에 우리는 상대적으로 약한 나쁨을 간과합니다.

사람들은 매일의 불편에 익숙해져 적응되어 있기에 나쁨을 간과합니다.

마지막으로, 이 나쁨들은 다른 사람들도 모두 경험하는거라며 비교해보고 나쁨을 간과합니다.

삶의 질의 주관적 평가는 통상적인 불편을 너무 쉽게 간과합니다.

하지만 확실한 점은 언급된 불편들을 생각하지 않는다는 사실이 그 불편들이 일상 속에 팽배해 있지 않다는 걸 의미하진 않는다는 겁니다.

여기에 만성적인 질병과 나이를 먹어감에 따라 발생하는 고통, 일부 사람들이 겪는 알레르기, 두통, 생리통, 지루함, 우울, 암과 같은 생명을 위협하는 질병까지 포함된다면.. 일상의 삶 속 부정적 정신 상태가 미치는 범위는 아주 넓습니다.

물론 베네타도 삶에 내재적 즐거움(쾌락)이 있다는 사실을 부정하진 않습니다. 부정적 상태보단 중립적 상태가 더 낫고 부정적 상태에 있다면 구제되는 것이 구제되지 않는 것보단 낫겠죠.

그러나.. 구제되기 위해 산다는 것은 터무니 없는 말입니다. 구제되는 것과 중립적 상태는 어디까지나 부정적 상태에서 벗어나는 것 한에서만 의미있는 것이지 그것이 존재한 적 없는 이의 삶을 시작하게할 이유 않습니다.

내재적 쾌락을 위해 삶을 시작하는 것 역시 터무니 없는 말입니다. 그것이 터무니 없는 이유는 내재적 쾌락조차도 존재한 적 없기와 비교한다면 순이득이 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일단 살게되었다면 당연히 내재적 쾌락을 갖는 것은 좋은 것이겠죠. 러나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그 내재적 쾌락은 다대한 삶의 불운을 대가로 치루고 얻어진 것이라는 것을..




<결론 및 요약>
삶의 질에 관한 세 견해 중 쾌락주의 견해로 삶의 질을 평가했을 때 우리들의 삶에는 사소하면서도 큰, 다대한 해악들이 항상 존재합니다. 대부분이 사소한 불편들을 신경 쓰지 않는다고 할지라도 그 불편은 확실히 나쁩니다. 본인이 그 불편이 사소하다고 할지라도 남은 그렇게 생각 안할 수 있기에 그 고통을 강요할 수 없습니다. 따라서 출산함으로써 아이들에게 이러한 고통을 강제하면 안됩니다. 제가 쾌락주의 견해에 대한 글을 쓰면서 예시로 든 고통은 인간의 삶의 고통 중 극히 일부입니다..(가장 좋은 삶조차 나쁘다는 걸 설명하기 위해서였죠)
이 외에도 전쟁, 자연재해 등등 인간은 살아가면서 더 많은 고통, 더 많은 스트레스를 겪습니다. 이 고통을 과연 대물림하는게 맞을까요..?


다음 글은 욕구충족 견해로 보았을 때 인간의 삶의 질이 나쁜 이유에 대해 써보도록 하겠습니다. 긴 글 읽어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이 이후는 반론에 대한 답변입니다.

몇몇 사람들은 쾌락주의 견해는 주관적 심리 상태에 관한 것이기 때문에, 개인 삶의 질에 관한 그 사람의 주관적 평가는 신뢰할만 한 것이 틀림없다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쾌락주의 견해는 실제로 이를 명확히 구분합니다.
1. 개인의 삶이 실제로 얼마나 좋은가
2. 개인의 삶이 얼마나 좋다고 생각되는가.

물론 1과2가 서로 영향을 미치겠지요. 삶이 매우 나쁜데도 실제로 그 사람이 그렇게 나쁘지 않다고 생각한다면, 그 사람이 삶이 나쁘다는걸 알았을 때보단 더 나을 순 있으니까요. 그러나 실제론 자신이 생각하는 만큼 나아진 건 없습니다. 즉 삶의 질 그 자체는 그대로인 것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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