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네타는 쾌고의 비대칭성을 통해 존재하는 것이 존재하지 않는 것에 우위점을 가질 수 없다고 주장했습니다.


1. 어떤 사람들은 이를 받아들이지 못하며 (4) 쾌락의 부재는 '나쁘지 않음'이 아니라 '나쁨'이다라고 주장합니다.


여기서 그런 주장을 하는 대부분이 간과하는 사실은 쾌락의 부재 대상이 존재한 적 없다는 것입니다.
존재하는 X에 한해선 쾌락의 부재가 나쁨이겠지요.

만약 우리가 존재한 적 없는 X의 쾌락이 부재한다는 이유로 나쁨이라 취급한다면 우리는 존재한 적 없는 X를 위해 쉴새 없이 유감스러워하고 후회해야합니다. 하지만 우린 그러지 않습니다.. 그 대상이 누군지도 모르는데 우리가 어떻게 그를 위해 유감스러워하고 후회합니까..

물론 아이를 갖지 않은 부부가 '아이를 가졌어야 했는데'하고 후회할 순 있습니다. 하지만 이는 부부의 행위에 대한 후회이지 어떤 특정한 대상에 대한 후회는 아닙니다.






2. 그렇다면 어떤 이들은 대칭성을 위해 (3) 고통의 부재는 '좋음'이 아니라 '좋지도 나쁘지도 않음'이다라고 주장할겁니다.

존재한 적 없는 X가 어떻게 고통의 부재를 좋다고 느끼냐존재한 적 없는 X는 그저 비존재에 불과하다면서요.


이는 고통의 부재가 좋음인 이유에 대해 잘못 접근하는겁니다.

베네타의 쾌고 비대칭성에서 고통의 부재가 좋음인 이 이렇습니다

만약 어떤 X가 존재함으로 인해 필연적으로 느낄 고통을 존재하지 않음으로써 느끼지 않는 것과 비교해보면 좋음입니다.
즉, 고통을 피하는 것은 명백히 '나쁘지 않음'이 아니라 '좋음'입니다.



그럼 또 이렇게 반박하겠죠? 존재함으로 인해 얻을 수 있는 쾌락과 존재하지 않음으로써 느끼지 못하는 쾌락으로 비교해보면 나쁨이다.

이러면 다시 1번으로 돌아가는겁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어떻게서든 쾌고 비대칭성을 무너뜨리고 싶은 이들 입장에서요 ㅋㅋ)
쾌락은 존재하지 않는 대상을 상대로 우위를 얻을 수 없습니다.

어떤 X가 존재함으로 인해 고통을 느낀다면 존재하지 않음으로써 고통을 회피할 수 있습니다. 존재하는 X는 존재하지 않는 것이 더 낫다며 후회할 수 있으니 애초에 존재하지 않으면 더 좋다는 겁니다.

그러나 쾌락의 측면에선 존재하지 않는 X가 쾌락을 얻지 못해 유감스러워하며 쾌락을 좇기 위해 존재하길 원할 순 없습니다. 존재하지 않는 X는 어떠한 감정도 욕구도 느낄 수 없으니까요.
즉, 존재하는 이의 쾌락은 존재하지 않는 X보다 우위에 있다고 볼 수 없다는 것이죠.

이러한 비대칭성의 이유는 고통은 회피해야할 요소고 쾌락은 좇아야할 요소이기 때문입니다. 고통은 존재하지 않음으로써 회피 가능하지만 쾌락은 존재해야만 좇을 수 있기 때문이죠.


<결론>
쾌고의 비대칭성은 어찌보면 당연한 이야기입니다. 우리가 비존재를 부러워할 수 있으나 비존재가 우릴 부러워할 순 없습니다. 태어나지 않았다고 속상해할 순 없지만 태어났음에 슬퍼할 순 있습니다.('태어났음의 불편함')

아기는 태어나고 싶다고 한 적 없습니다. 출산은 어디까지나 부모의 만족감을 위한 행위였을 뿐입니다. 이를 신의 축복이라며, 태어난 것에 감사하라며 가스라이팅 하지 맙시다. 이미 반출생주의를 접하기 전 출산한 사람들은 최대한 아이들을 위해 잘해주세요. 확실히 우리는 고통 받을 확률이 있는 다른 존재를 태어나게 해선 안됩니다!

분탕 제외 다른 분들 질문이나 반박은 언제나 환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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