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네타가 박탈 당할 쾌락에 대해 토론한 내용을 보면 이를 명확히 구분하고 있음. 둘은 명백히 다르니깐.
반출생주의가 지향하는 부분은 애초에 태어나지 않아 어떠한 것도 박탈되지 않는 X임. (안타깝지만 이미 존재하는 우리는 이를 추구할 수 없겠죠. 다만 태어나지 않은 아이들을 위해선 가능할 겁니다.)
'죽으면 똑같이 비존재 아니냐..'
이미 존재하고 있는 X에게 죽음은 본인이 현재 가지고 있는 것(뭐 사소하더라도..)을 박탈하는 거니 부정적 요소가 포함될 수 밖에 없음. 물론 죽음으로 인해 존재하지 않게 된 X는 이를 느낄 수 없겠지만 죽기 전 X는 이를 명백히 인지할 수 있음.
존재한 적 없는 X와 존재하다 존재하지 않게 된 X를 명확히 구분하고 있는게 반출생주의니깐.
나 역시 삶에 딱히 미련도 긍정도 없기에 죽음에 그렇게 부정적이진 않음. 특히 삶의 중단을 본인이 선택한다는 건 중요한 권리라고 생각함.
그러나 제가 하고 싶은 말은 반출생주의가 살자에 대해 다루진 않는다는겁니다. 반출생주의가 살자를 옹호하거나, 살자를 해야한다고 주장하지 않아요. '태않낫' 읽어보면 결말부에 살자에 대한 선택은 본인이 하는거라고 하지 거기에 대해 "반출생주의자들은 살자해야한다"라고 주장하지 않습니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반출생주의는 삶의 시작의 가치를 논하지 중단을 결정지어주는게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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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택을 강요하는 것과 선택하는 것의 차이겠네요. 근데 삶이 해악이기 때문에 낳으면 안 된다고 하는 사람들이 반출생의 본질을 흐리는 것 같아요. 비존재를 찬양하는 건 잘못된 듯 합니다
삶이 해악이기 때문에 낳지 말아야된다는건데요..? 그게 본질을 흐린다는게 무슨 말씀이신지 모르겠네요. 전 비존재를 바란다고 얘기 안해요 그래서. 태어나지 않았다면 더 좋았을 거라 얘기하지. 애초에 베네타는 그래서 태않낫 보면 비존재라는 단어를 쓰기 싫어해요 혼동을 준다고. 본문처럼 둘을 명백히 구분지어요. 책 제목이 비존재가 더 낫다가 아니라 태어나지 않는 것이 낫다인 이유입니다. - dc App
@Rayo 삶이 해악이라는 건 일반화오류 같네요. 삶을 강요하는 게 해악이라는 게 정확한 듯 합니다
@ㅇㅇ(210.183) 반출생주의는 삶이 고통이기에 낳으면 안된다는건데요..? 태않낫에서도 인간의 삶의 질이 좋지 않으니 태어나지 않는 것이 더 낫다고 얘기하고 있고요. 물론 210.183님 말처럼 동의하지 않은 삶을 주니 잘못된 것도 틀린 말은 아닙니다만. - dc App
@Rayo 삶이 고통이라면 죽음이 더 낫지 않을까요? 박탈이든 어떤 특수성이든 삶은 나쁘다 라는 생각은 죽음이 더 낫다는 것으로 귀결될 수밖에 없다고 느껴집니다.
@ㅇㅇ(210.183) 삶의 고통에 죽음에 대한 공포, 고통이 포함된다니깐요.. 본인이 죽음이 더 낫다고 생각한다면 그건 본인이 선택할 몫이고요. 반출생주의가 삶의 중단을 결정짓진 않는다고요. 이미 존재하고 있는 이에게 당장의 죽음을 요구하는건, 선택하는건 고통스러우니까요 - dc App
@Rayo 그러니까 죽음은 더 낫다는 거죠. 그런 고통을 끝내 주니까요. 단지 실행이 어려울 뿐이죠. 생물의 한계이고요.
@ㅇㅇ(210.183) 그러니깐 죽음이 더 낫다는건 어디까지 님 기준이고요.. 반출생주의 사상이 말하고자 하는 바는 삶의 시작의 가치 유무이지 중단에 대한 기준을 얘기하지 않는다고요. 죽음이 더 낫다, 아니다는 개인이 선택할 몫이에요. - dc App
@Rayo 삶이 고통이면 죽음이 더 낫다는 건 고통이 나쁘다는 것만큼 당연하고 자명한 조건문인데 이건 저만의 기준으로 두기엔 너무 옳은 말 같네요
@Rayo 삶은 고통이 아닐 수도 있긴 하죠. 늙는 걸 좋아하는 특이취향이 있을 수도 있고요. 죽음을 좋아하는 취향도 있을 수 있고요. 취향은 반출생주의자가 판단할 게 아니잖아요? 다만 삶의 강요만이 악하다. 라고 제한을 두면 죽음은 개인의 선택일 뿐이고, 출산은 악한 것이죠.
@ㅇㅇ(210.183) 똑같은 말을 몇번을 해야하죠..? 삶이 고통인 이유엔 생로병'사' '사'의 고통도 포함되는데요.. 어떻게 죽음이 더 낫다고 단정하죠? 어떤 사람은 죽기 싫을 수 있습니다.. 그 죽는 것의 두려움 때문에 애초에 존재하고 싶지 않을 수 있고요 - dc App
@Rayo 그래서 처음에 일반화오류라고 말씀드렸는데...+ '어떤' 사람은 죽기 싫을 수 있다는 말을 하시면서 왜 삶이 고통이라는 거엔 '어떤' 삶이 고통이라고 안하시죠?
@ㅇㅇ(210.183) 정확히 해야겠네요. 삶의 최종적인 판단이 고통이고 해악이라는게 아니라 삶에 고통과 해악이 존재하니 출산이 잘못되었다고요. 제가 그 부분에 대해선 혼동을 드렸네요. - dc App
@ㅇㅇ(210.183) 님 말대로 삶의 최종적 판단을 행복이고 긍정할 순 있겠으나 그렇다고 삶의 고통과 해악이 존재하지 않진 않을겁니다. 그렇기에 출산이 잘못된거고요 - dc App
@ㅇㅇ(210.183) 일단 태않낫에서 베네타는 인간의 모든 삶의 질이 좋지 않다고 냉정하게 주장하고 있습니다. 삶의 질을 판단하는거랑 개인 스스로가 행복한가는 다른 얘기죠 - dc App
@Rayo 네 일반화오류가 사라지면 저와 같은 생각이시네요.
@ㅇㅇ(210.183) 저는 "모든 인간의 삶의 질이 나쁘다"는 베네타의 말에 동의하고 있기에 삶이 해악이라고 얘기했던건데 정확히 얘기하면 모든 인간의 삶의 질은 나쁘지만 개인 스스로는 행복감을 느낄 순 있겠죠 - dc App
@ㅇㅇ(210.183) 근데 곰곰히 생각해보고 태않낫도 찾아보니 모든 삶에 고통이 있는걸 토대로 삶이 해악이라고 주장하는거라. 애초에 반출생주의에선 삶이 해악이니 고통을 주면 안되기에 출산하지 말자는 건데 이걸 일반화시킨다고 하면 일반화 시키는거네요. 명백히 모든 인간의 삶의 질이 나쁘고 고통이 존재하니까요. - dc App
@ㅇㅇ(210.183) 사실 일반화라기도 뭐한게 '모든' 인간의 삶엔 명백히 고통이 존재하잖아요. - dc App
@Rayo 그 고통을 나쁘게 여기는지는 사람마다 다르긴 하죠. 고통이 존재한다는 것만으로는 아무 의미도 없고 나쁘다는 특성을 부여해야만 비로소 논증에 사용 가능하니까요.
@ㅇㅇ(210.183) 인간의 삶의 질은 명백히 나쁘고 그래서 존재하게 되는 것은 항상 해악이라고 주장하는게 반출생주의거든요. 고통이라는건 애초에 나쁘다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고요. 어떤 행위를 좋게 생각하면 그건 고통이 아니라 쾌락이죠. 제가 말하고 싶은건 반출생주의에서는 삶의 질이 항상 나쁘고, 존재하게 되는 것은 해악이기에 출산을 하지 말아야 한다고 주장을 하고 있어요. 삶이 일방적으로 강요 당하기에 잘못되었다는 것도 출산을 하지 말자는 근거가 될 순 있겠지만 결정적으로 출산을 하면 안되는 이유는 삶이 해악이기 때문이라는거거든요. 행복하다는 개인의 감정은 삶의 질이 나쁜지 객관적으로 판단할 수 없으니까요. - dc App
@Rayo 음.... 본인이 좋게 생각한다는데 베너타가 뭔데 그렇게 규정하는지 의문이 드네요. 가치판단은 개인이 하는 거지 3자가 하는 게 아니에요. 편향 또한 그 사람의 일부이고요. 애초에 편향을 다른 본능과 달리 취급할 필요가 없죠.
@ㅇㅇ(210.183) 아니요 주관적 감정 상태를 얘기하는게 아니에요. 주관적 감정 상태는 개인이 행복할 수 있겠죠. 베네타가 말하는건 삶의 질 그 자체를 얘기하는거에요. 낙관 편향이라는 감정적 상태는 그 삶의 질이 나빠도 좋다고 왜곡하니 잘못되었다는거고요. 암에 걸린 환자가 스스로 행복하다고 할지언정 삶의 질이 좋다고 할 순 없잖아요. - dc App
@Rayo *본인이 좋게 생각한다면
@Rayo Quality 라는 걸 다룰 땐 상대성을 간과해선 안 되겠죠. 스펙트럼의 개념인데 이원론적으로 좋다, 나쁘다 라고 규정하는 건 쉽게 가고 싶어서 오류를 저지르는 듯 합니다.
@ㅇㅇ(210.183) 삶을 평가하는 세 견해 모두에서 베네타는 인간의 삶의 질이 개인이 '생각'하는 것보다 나쁘다는 걸 보여줍니다. 우리가 사소하게 간과하는 삶의 불편함도 객관적으로 나쁨이죠. 베네타는 고통과 쾌락을 양의 측면에서 접근하면 안되는 것 역시 보여줍니다. 고통이 일정 부분 이상이면 아무리 쾌락이 높아도 긍정적일 수 없으니까요 - dc App
@Rayo 나쁨과 좋음을 판단하는 건 제 3자가 아니라는 걸 이해하시나요?
@ㅇㅇ(210.183) 수정할게요. 제 3자가 아니라 타인이라고 하는 게 정확하네요.
@ㅇㅇ(210.183) 어떤 나쁨과 좋음이냐에 따라 다르죠.. 삶의 질을 객관적으로 판단하려면 본인의 감정 상태가 들어가면 안된다는거에요. 앞서 말했듯이 암 환자가 스스로 행복하다고 '생각'한다고 그의 삶의 질이 좋다고 판단할 수 없죠 - dc App
@ㅇㅇ(210.183) 그래서 모든 인간의 삶의 질이 좋냐 나쁘냐에 대한 반출생주의의 답변은 나쁘다입니다. 본인이 행복하다고 생각할지언정 그의 삶의 질은 나쁘다는겁니다. - dc App
@Rayo 삶의 질을 이원론적으로 규정하는 건 틀렸다고 상기했어요.. 남은 건 개인의 판단이죠
@ㅇㅇ(210.183) 베네타가 삶의 좋은 부분을 모두 무시하고 결론을 삶의 질이 나쁘다고 주장한게 아닙니다. 좋은 부분을 포함시켜도 삶의 질을 평가하면 나쁘다는거에요. 개인의 주관적 감정 상태로 삶의 질을 평가한다면.. 앞서 말했다시피 본인이 행복하다면 암과 같은 불치병에 걸려도 삶의 질이 좋다는 오류를 범하게 될텐데요? 우리가 암환자를 보고 삶의 질이 좋다고 얘기하지 않죠. 개인의 판단, 감정 상태가 삶의 질 자체를 결정지을 수 없습니다. 삶의 질은 그 자체로 분리되어 있으니까요 - dc App
@Rayo 상기한 quality의 특성을 읽으시죠 일단..
@ㅇㅇ(210.183) 그러니깐 님은 계속 삶의 질은 주관적으로 평가해야한다는건가요..? - dc App
@ㅇㅇ(210.183) 스펙트럼의 개념에서 결국 결론이 삶의 질이 나쁘다라는게 베네타의 주장입니다.. 삶의 긍정적 요소를 아예 배제하고 삶의 질이 나쁘다라고 얘기한 게 아니라고요.. - dc App
@Rayo 1. 이원론을 폐기하던가 2. 좋다와 나쁘다는 가치판단이라 애초에 객관적인 타인의 시선은 의미가 없다는 거죠..
@ㅇㅇ(210.183) 1. 이원론적으로 접근해 삶이 나쁨만 있다고 주장한 게 아니다. 베네타는 스펙트럼의 개념에서 보아도 명백히 삶은 나쁨에 치우처져 있다고 주장했다. 2. 어떤 행위에 대해 좋다, 나쁘다가 개인의 가치 판단일 수도 있으나 사회적으로 대부분의 인간이 명백히 좋고 나쁨을 결정해 놓은 경우도 있다. ex) 병에 걸리는걸 좋다고 얘기할 사람은 없다, 범죄를 좋다고 얘기할 사회는 없다. 따라서 인간의 삶의 질을 논할 때 암에 걸린 환자의 삶의 질이 좋다고 얘기하면 수긍할 사람은 없다. 객관적으로 충분히 인간이라는 종의 삶의 질을 평가할 수 있다. - dc App
@Rayo 1. '나쁘다' 란 단어가 이원론인데요.. 2. 사회적으로 좋다 나쁘다를 정할 거면 출산은 사회적으로 좋다고 여겨지는데요..
@ㅇㅇ(210.183) 1. 0이 아니라 -면 음수인거죠..? 님이 스펙트럼 개념에서 봐야된다고 했으니 스펙트럼 개념으로 보아도 삶의 질은 음수 즉 마이너스라 나쁘다고 한거고요. 2. 삶의 질에 대한 평가를 얘기하는거니 범죄 얘기는 잘못되었네요. 그건 도덕적 판단인거고요. 이건 제 실수네요. 병에 걸린 상태에 대해 좋다, 나쁘다 명백히 나쁘다고 얘기할 수 있죠. - dc App
@Rayo 1. 상대성이란 단어는 안보셨는지.. 2. 병에 걸리는 걸 좋아하는 사람이 없는지 어떻게 아시는지.. 지금 일반화에 대한 얘기를 하고 있습니다.
@ㅇㅇ(210.183) 1. 상대성이라는게 뭘 말하는거죠? 어떻게 해야 상대성인거죠? 예시를 들어주세요 무슨 답변을 원하는지 모르겠네요. 2. 병에 걸린걸 좋아하는 사람이 있다고 우긴다면 ㅋㅋㅋㅋ 할말이 없네요. "까마귀는 항상 까맣다"에 흰색 까마귀가 있다고 우기는 꼴이잖아요? 그리고 병에 걸리는 걸 좋아한다랑, 병에 걸린 상태가 좋은 상태다랑 명백히 차이가 있을텐데요? - dc App
@Rayo 1. 아파트에 사는 인간이 야생의 곤충보다 더 안전한 환경에서 산다는 건 질에 대한 상대적인 개념이죠. 이것 또한 일반화를 못하는건 매한가지죠. 좋다, 나쁘다는 여기에 포함되지 않았어요. 그저 안전하다 라는 특성(quality)을 비교하는 거죠. 모험가들은 일부러 절벽에서 캠핑하는 등 안전하지 않은 상황을 추구하기도 하죠. 이게 개인에 의한 가치판단이구요.
@ㅇㅇ(210.183) 맞아요 그럼 더 명확해지네요. 그 질에 대한 상대적 개념 때문에 베네타는 인간의 삶이 보통 사람들 생각처럼 좋지 않다고 한겁니다. 수명은 약 100년으로 짧고, 골디락스 온도를 유지할 수 없으며, 배고픔은 항상 밥을 먹기 전까지 참아야하고 등등 인간의 삶의 질은 나쁘다는겁니다. - dc App
@Rayo 2. 취향에 대한 일반화는 음.... 취향존중이란 걸 모르시는 것 같네요.. 세상의 80억이 넘는 인구의 사람들이 어떤 취향이 있는지 모두 아시는지, 미래에도 똑같은 취향일지 아시는 거면 이건 인간이 아닌 거겠죠?
@ㅇㅇ(210.183) 병에 걸리는게 나쁘다라는게 취향이라고 생각하세요 정말? - dc App
@Rayo 정확히는 모르니까 일반화는 위험하다는 거죠. 삶은 해악이라고 하면 하나의 반례만 있어도 틀린 게 되잖아요. 어떤 삶은 해악이 아닐 수도 있다. 가 정확한 표현이겠죠?
@Rayo 모험가의 예시도 들었는데 또 '나쁘다' 라는 이원론적 가치판단을..
@ㅇㅇ(210.183) 아니죠. 인간의 삶의 질을 평가하니 인간 기준에서 더 안전한게 좋다고 평가할 수 있는겁니다. 우리는 인간이고 인간 기준에서 평가하니깐요. 곤충과 인간을 비교하는게 아니라 인간의 삶의 질만을 평가하는거니 상대성이 존재하더라도 어디까지나 인간 기준인거고요. 모험가 예시 드셨는데 일단 그게 인간의 삶의 질과 무슨 상관이죠? 모험가는 단지 본인의 쾌락을 위해 공포감과 두려움을 극대화 시킨거에요. 그럼에도 불과하고 안전하면서 쾌락을 느낄 수 있다면 더 좋겠죠..? 안전하지 않은 상황을 추구했다 이전에 쾌락을 추구한거죠. - dc App
@ㅇㅇ(210.183) 님 말대로라면 병에 걸린 사람의 삶의 질이 나쁘다는 말이 주관적이라는건데.. 누가 그렇게 생각하죠? - dc App
@Rayo 개인이 판단기준인데 왜 인간 기준이라고 계속 일반화를 하시는지.. 그리고 불안전상황 이전이 아니라 후의 쾌락인데.. 음.... 일단 같은 단어의 사용의미가 다르고, 은근슬쩍 왜곡하는 부분을 고쳐도 계속 왜곡을 하시니 고치는 게 끝이 없네요.. 수고하세요..
@Rayo 누가 그렇게 생각하는지 님이 모르니까 일반화를 하면 안된다는 건데.. 이것도 왜곡, 저것도 왜곡.. 수고하세요..
@ㅇㅇ(210.183) 아니 ㅋㅋ 어이가 없네요.. 인간의 삶의 질을 판단하는데 개인의 주관적 감정 상태가 섞이면 안된다고 계속 말하고 있는데요..? 본인이 행복하다고 생각하더라도 삶의 질은 객관적으로 나쁠 수 있습니다.. 암에 걸린 환자는 본인이 행복하다할지언정 삶의 질은 나빠요.. 누가 이걸 부정할 수 있습니까.. 저는 처음부터 끝까지 베네타의 '태않낫'에 나와있는 내용을 토대로 주장했을 뿐입니다. 제 글 솜씨가 이에 못미칠지언정 적어도 내용을 왜곡하거나 베네타가 주장한 내용이 아닌 제 사견을 덧붙힌 적 없습니다. - dc App
@Rayo 태않낫에 옳은 내용만 있진않아요.. 비판적 독서가 안되시는 분이었네요..
@ㅇㅇ(210.183) 적어도 님이 하시는 '반출=자살 긍정' 이런 말보다야 설득력 있어보이는데요..? - dc App
@ㅇㅇ(210.183) 모든 가능성을 열어두면 끝도 없습니다. 당신은 이상한 궤변론자에 불과합니다. 반사적으로, 진화론적인 매커니즘에 어긋나는 주장에 대한 본능적인 반응을 합리적인 논리라고 궤변을 늘어놓고 계십니다. 일반화 라는 것은 이론의 필연적인 부분입니다. 태어날 아이에게 삶을 전해줄 권리는 "죽음" 이라는 보편적인 필연성이 강제된 현실 세계에서 명백히 윤리적 원칙에 위반됩니다. 그리고 죽음과 비존재 사이에서 어떤 차이가 있느냐면, 죽음이라는 것은 살아있는 존재가 - 비존재로 향하는 길 입니다. 너무나도 당연한 소리라 설명을 할 이유도 없습니다. 그러나 이 차이는 세상에 아예 태어나지 않는 것과 살아있는 존재가 죽음을 맞이하는 것에서 차이가 생깁니다. 즉, 삶이라는 것은 고통뿐이다! 이런 외침이 아니라 고통이 더 크다는
@ㅇㅇ(210.183) 뭐야 이놈은 ㅋㅋㅋㅋ
210.183님. 결혼을 안하는 거랑, 결혼했다 이혼하는 거랑 같은 상태라고 주장하시는 거네요. 님 논리 1도 안맞아요.
비존재가 그렇게 좋으면 살자하라는 사람들이 이해를 잘못하는 부분이지. 태어나는 순간 이미 해악은 가해졌고 애초 태어나지 않은 비존재 상태로 돌아갈 방법은 없음. 그건 오로지 비출산으로만 달성 가능하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