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의 시체 비유에 대해 시체는 뭐 인격이 잔재한다느니 이러면서 궤변이라고 하는데..
솔직히 피곤해서 더 얘기하기 싫었지만 대답 안해주면 뭐 대답 '못'한다며 본인들 마음대로 생각하니깐 반박 해보겠습니다.
1. 출산이 일반적인 동의 상황과 결이 다르다는 건 누가봐도 명백한 펙트다.
일반적인 도덕적 지위가 이미 갖춰진 상황과, 출산으로 인해 즉, 도덕적 지위가 탄생 이후 발생하는 것의 차이는 엄연히 다름을 알 수 있습니다.
이를 동일한 취급하니 문제가 생기는거라 베네타 역시 지적하고 있습니다.
태어난다는 건 일반적 동의 상황과 동일하게 적용할 수 없는 특수한 상황입니다.
본인 말대로 출산이란 존재하지 않다가 존재하게 되는 유일한 경우인데 이를 기타 존재하는 상황에서의 동의 상황과 다르지 않다며 동일한 잣대로 판단하는거야말로 오히려 끼워맞추기에 불과합니다.
2. 시신 훼손 문제를 궤변 취급하는건 애초의 논점에서 벗어났기 때문이다.
먼저 전 존재한 적 없는 X(태어난 적 없는 X)와 존재했으나 죽은 X를 동일하게 보고 있지 않습니다.
전 글에서도, 이 글에서도 논하고 있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 이가 동의를 할 수 없는 상태여도 이후 고통이나 해악이 있으면 잘못된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는 것 입니다.
해당 논점에서 벗어나서, 해당 논점에 대한 유비논증을 단순히 같은 것이 아니라는 점을 근거로 유비논증 자체를 부정하신다면 이 세상 모든 유비 논증과 예시는 부합할 수 없을 겁니다.
그리고 시신 훼손이 불법인 이유가 '이미 존재했던 사람의 과거 인격'을 존중하기 때문이라면 그 존중하는 이유는 곧 현재 의식이 없는 존재(고인)에게 해악이 갈 상황을(이를 테면 명성) 제거하기 위함일 것입니다.
존재한 적 없는 사람을 위하기에 반출생주의가 틀렸다고 주장하는 건 반출생주의에 대한 접근을 잘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반출생주의는 출산으로 인해 태어날 존재들의 고통을 위한 예방책입니다. 물론 그 존재가 특정이 되어있지 않습니다. 그러나 반출생주의가 아니더라도 특정되지 않은 앞으로 태어날 이들을 위해 걱정하거나 그 고통을 줄이기 위해 행하는 행위들은 이미 여러가지가 존재합니다.
출산장려책, 이를테면 '태어난 아이에게 예방주사를 맞춰주겠다'라고 발표한다면 이는 아직 태어나지 않은 대상에 대해 논하는 것입니다. 누군지도 특정할 수 없고요. 누군지도, 태어나지도 않은 대상에게 미리 일종의 권리를 부여한 셈입니다.
유전병이 있는 부모가 아이가 겪을 유전병 때문에 낳지 않겠다고 결심하는 것은 아이가 이미 존재하고 있어서가 아니라 태어나게 된다면, 태어나게 된 이후를 고려하고 있기 때문일 겁니다.
반출생주의 역시 동일합니다.
태어남으로 인해 겪을 고통을 본인이 선택할 수 없이 태어나게 된다는 사실은 태어난 이후의 주체에게 이미 그 자체로 불합리한 것일 수 있습니다.
3. 순환논법은 말장난이다. 반출생주의는 고통을 예방한다는 측면에서 의의를 가진다.
태어나게 되면 고통을 받는데 그 고통을 받으려면 태어나야하니 출산에 대해 미리 금한다는게 자가당착이다?
태어난다면 고통을 받습니다.
그 고통을 예방하자는 주장을 단순히 순환논법 취급하면 안되는 것입니다.
"지옥 같은 섬에 데려가서 고문하면 나쁜 짓이지?"
-> 상대방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해도 그 행위가 나쁜 짓이라는 사실은 변하지 않습니다.
X라는 태어나지 않은 사람을 태어난다면 총으로 쏘겠다는 말은 틀림없이 잘못된 행동입니다. 우리는 출산, 즉 태어난 이후에 대해 말하고 있고 그 태어남으로 인한 결과에 대해 말하고 있습니다. 태어난 이후 벌어질 해악을 예방하는건 순환 논법이 아닙니다.
4. 똑같은 이유, 똑같은 말
(1) 피해 최소화: 명백한 해악은 피해야 한다.
-> 순환 논법 취급하면 안된다. 출산으로 인해 태어난 이후 받을 고통을 예방하는걸 단순히 순환 논법 취급한다면 건물을 짓기 전에 지반이 약하니 건물이 무너질 가능성이 있어서 건물을 짓기를 포기하는 행위, 즉 미리 피해를 예방하는걸 가치 없다고 여겨야 할 것이다.
(2) 이익/가치 가능성: 잠재적인 이익/긍정적 가치의 가능성을 고려한다.
->실제로 개인마다 어떤 행위에 대해 느끼는 감정은 다르다. 이를 고려하자는건 전혀 잘못된 말이 아니다. 오히려 이를 무시하고 내가 행복할 조건이 아이에게도 똑같을거라 착각하고 애를 낳는건 폭력적이다. 본인이 행복하다면 어디까지나 본인 선에서 좋은거지 그게 다른 존재도 행복할거라며 존재시킬 이유가 되지는 않는다.
(3) 존재 이전 무차별성: 존재하지 않는 상태에는 해악/이익 개념이 성립하지 않는다는 존재론적 전제.
-> 똑같은 이유.. 똑같은 말.
<결론>
궤변 취급한다고 "태어나면 고통 받으니 이를 예방하자"는 반출생주의의 의의가 사라지지 않습니다.
반출생주의는 단순히 존재하지 않는 자에게 피해가 간다고 주장하는 것이 아닙니다.
태어남 이후 존재하게 되는 상태에서 받는 고통에 대해 예방하자고 주장하고 있고 이는 명백히 존재하는 고통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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