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진화를 나는 자연스럽고 아름다운 시선을 통해 바라볼 수 없다. 너무나도 끔찍하다. 진화라는 것을 통해 발전을 했음에도 우리는 아직도 무언가 부족하다. 팬데믹이 등장하여 우리 세계를 혼란에 빠뜨릴 수 있고, 급작스러운 자연재해, 인간과 인간 사이에 발생하는 갈등으로 전쟁이 발발하고, 잔혹하게 인간을 살해하는 범죄자들, 마약, 필연적인 고통, 언젠가는 죽는 인간의 유한성, 그리고 자살을 방조하지 않고 "도덕" 이라는 명목으로 자살자의 선택을 억압하는 대중들, 이 모든 것이 가증스럽다. 끔찍하기 까지 하고 전혀 이해할 수 없다. 내 존재가 부모의 DNA를 이어 받았고, 그들의 정자와 난자가 만나서 희박한 확률로 나 자신이 태어났다고 해서 그것이 기뻐할 일인가? 전혀 그렇지 않다. 나는 내가 태어남으로써 얻게 되는 모든 고통들을 사랑하기 위해 무려 40년의 인생을 고통받아야 했다. 이러한 무겁고 긴 시간을 내 자식에게 물려주고, 가령 그 자식이 장애를 가지고 태어난다면 안락사라는 길도 아직은 없다.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복수이자 반항, 즉 나는 다시 무로 돌아가자는 존재론적 반동주의자가 되어 “출산” 이라는 가증스러운 행위를 하지 않는 일이 최대 선이라고 주장할 테다. 최소한의 인간 윤리, 선이 신의 개념으로 정립되었다고 하더라도 나는 신에게 도무지 이 세상에서 아이를 낳을 용기가 없었다고, 차라리 나는 징벌을 받겠다고, 따라서 나는 교리를 따를 수 없다고 말 할 자신을 가져야 할 것이다. 죽음같이 끔찍하고, 죽음같이 평온하고, 죽음같이 고요하다. 그것이 삶이라는 일이라면 더더욱이 끔찍하고 아름답다. 이러한 이중성 사이에서 우리의 기분에 따라 시선이 달라지는 변동성을 누구보다 긍정하는 모순적인 인간들에게서 나는 태어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