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출생주의는 그냥 내가 태어나서 사는 과정 중 이 세상의 불공정과 불평등을 경험하고 부조리와 비합리를 겪고 내 자식에게 만큼 이 세상의 좆 같음을 물려주지 말자라는 사상을
계속 너는 왜 안죽냐?
계속 니가 도태되서 못출생이라서 지지하는 것 아니냐?
반출생주의를 이해하지 못하고 남을 깎아내리는 방식으로 이 철학을 운운하는 것이 과연 의미가 있냐?
반출생주의는 그냥 내가 태어나서 사는 과정 중 이 세상의 불공정과 불평등을 경험하고 부조리와 비합리를 겪고 내 자식에게 만큼 이 세상의 좆 같음을 물려주지 말자라는 사상을
계속 너는 왜 안죽냐?
계속 니가 도태되서 못출생이라서 지지하는 것 아니냐?
반출생주의를 이해하지 못하고 남을 깎아내리는 방식으로 이 철학을 운운하는 것이 과연 의미가 있냐?
의미를 떠나 타당성이 없습니다. 반출생주의는 "인생은 고통의 장소이다. 인간의 삶은 고통이 존재한다. 따라서 고통을 겪게 할 존재를 생산하는 행위는 윤리적 정당성을 가질 수 없다." 라는 전제와 결론을 가지고 있습니다. 반론자들이 주장하는 "경험을 통해 알 수 있기 때문에, 인간의 가치판단으로 비존재의 고통과 행복의 비대칭을 정의할 수 없다." 라는 논의는 논리적 타당성이 없습니다. 동의를 할 수 없으니, 중립의 상태로 존재합니다. 그러나 중립의 상태에서 보편적인 고통을 굳이 물려줄 이유가 없기 때문에, 반출생주의는 타당성을 가집니다. 우리 인간 사회는 고통을 원동력 삼아 발전했으나 그건 긍정보단 수긍이나 체념에 가깝습니다.
따라서 반출생주의자는 고통의 부재를 주장했을때 명확한 타당성을 가지게 되지만, 이를 반론하는 "고통의 좋은 가치" 를 언급하며 출산행위를 옹호한다면 보편적인 인간의 고통을 미화하는 것에 가깝지 그 사상을 반론하는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인간 사회는 경쟁, 빈곤, 질투, 열등감, 후회, 미련, 물리적 고통으로 가득 차 있고, 행복은 추상적으로 존재할 뿐 구체적인 실체가 몇 없습니다. 물론 우리의 뇌에서 행복을 느낄때 분비되는 성질들을 부정하는건 아닙니다. 희소성에 따른 차이라고 할까요, 행복은 잘 찾기 어렵습니다. 우리는 처음부터 현자가 되지 않습니다. 내 인생이 극심한 고통속에서도 사소한 행복을 찾았다고 하더라도, 자신의 인생을 돌아키본다면 절대로 평온하고 안정적인 삶이 아니였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그럼, 이런 고진감래를 굳이 자식에게 물려줄 이유가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