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존재하는 삶의 쾌고를 논하는게 아니라, 누군가를 낳기 전의 태어나기 전과 존재하게 된 후, 그리고 쾌락과 고통의 비대칭성에 초점이 맞춰진거라고. 쾌락이 고통보다 더 많다, 고통이 쾌락보다 더 많다를 논하는게 아니라고.(애초에 이건 오히려 총량공리주의 혹은 소극공리주의적인 논의지) 왜 계속 자살 논의를 여기로 가져오는지 모르겠네. 이건 별개의 논의고 베너타도 계속 반출생주의랑 자살 혹은 친죽음주의랑은 별개임을 그리고 반출생주의를 따른다해도 그것이 함의되거나 도출되지 않음을 책에서 상당부분 할애해서 설명도 함.(애초에 이 부분을 반출생주의가 설명해야하는 게 웃길노릇이지.)  반출생주의자가 자살을 하든 안하든 자살을 옹호하든 안하든 별개라고. 만약 삶의 질 논증을 자살논의를 가져오는 이유로 든다 해도 (그것이 여전히 반출생주의를 이것과 연관하는 걸로는 관계없지만), 여기서도 고통만 논하는게 아니라 쾌락의 박탈같은 것도 이유로 들고 있음. 오히려 이 부분은 반출생주의자한테 설명을 요구할게 아닌게 코미디지. 반출생주의 빼놓고 봐도 자살논의는 당연히 존재하는 이들에게만 유의미하고 그건 아이를 낳길 원하는, 낳은 이들이 더욱 논해야할 부분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