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내일의 불확실한 조건들에 기대어 오늘을 살아간다.


이 말을 하는 이유는 지금 이 세상에 순수히 우리의 의지로써 정해지는 일은 없다는 것을 말하자 하는 것이다.


물론 이는 우리의 의지의 범주를 어디까지로 정하느냐에 따라 각각 달라질 수 있는 의견이나 나는 육체가 존재하는 한 진정한 의미의 자유의지는 없다고 생각한다.


이를 증명하는 것은 간단하다.


우리의 몸은 시시 때때로 많은 것을 요구한다.


일정시간 움직이지 않으면 움직이고 싶어하고, 먹지 않으면 배고픔을 호소하고, 잠을 자지 않으면 잠을 자도록 유도한다.


우리가 늘 상 하는 행동에 있어 나의 몸을 나의 일부로써 인정하지 않는다면 나의 필요에 의한 모든 행위들은 나의 의사가 아닌 내 의지를 조종하여 내 몸이 필요한 무언가를 충족시키기 위하여 행한 것에 불과해진다.


나는 철학적인 생각을 자주 하는 편이나 이를 직접 공부한 적은 없어 이게 철학적으로 어떤 부류에 속하는 지는 모르겠다.


그러나 이를 법리적으로 비유하기로 하여 나의 본능과 나의 의지를 각각 다른 당사자 그리고 나의 몸을 물건으로써 본다면 다음과 같은 해석이 가능할 것이다.


1. 내 몸에 대하여 본능을 점유주 그리고 나의 의지를 점유보조자로써 본다.


2. 본능은 몸이라는 재산에 대하여 그 효용의 보존 혹은 개량하고자 하는 의지가 있으나 홀로 이를 행할 능력이 부족하여 태어남을 통하여 나의 의지와 점유보조관계를 맺었다.


3. 점유보조자는 가사상, 영업상 타인의 지시를 받아 물건을 사실상 지배하는 자로 점유권은 인정되지 않으나 점유주를 위한 자력구제권은 인정되는 물권법 상 일정한 법적지위에 해당한다.

따라서 생명유지, 생명의 기본적인 욕구 등 큰 맥락을 관장하는 본능과 이에 대한 실무적인 이행을 하는 의지의 관계에 있어 비유가 적절하다 판단한다.


4. 여기서 중요한 점은 점유보조자에게 점유권이 인정되지 않는다는 점인데 특정한 상황 (생명의 위급함, 성욕, 극한의 허기 등)에서 의지보다 본능이 우선 시 된다는 점을 미루어보아 의지는 몸에 있어 사실상의 지배를 하나 이에 대한 본권은 행사하지 못하는 모습을 보인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여기서 제목인 나의 목숨은 내 소유가 아니다 라는 결론이 나온다.


먼저 소유권에 대한 간단한 설명을 하자면 소유권이란 법률의 범위 내에서 내 물건을 사용, 수익, 처분할 권리를 의미하는데 점유권 < 소유권이라는 것을 얘기하려는 것이 아니라 소유권을 권원으로 하는 사용, 수익, 처분의 권능을 이야기 하고자 하는 것이다.


다만 제목에 나온 대로 목숨에 중점을 둔 얘기를 하자면 죽음 = 몸의 가치의 멸실 가정할 시 목숨에 대한 권한은 물건의 교환가치를 지배하는 권능인 처분권능에 있다 볼 수 있고 이를 예로써 내 의지로 하여 내 목숨을 끊고자 하여도 소유권을 가지고 있는 본능은 처분의 권한을 내 의지에게 수여하지 않았기에 내 의지는 이에 반하여 내 목숨을 처분하지 못한다.


그렇기에 우리의 의지는 자유롭지 못하다 할 수 있다.


즉 태어난 순간부터 우리의 자유는 통제 당하게 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