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죽는다는 것은 기본 상식이다. 물론 엄밀하게 따지면 이는 귀납추론이고, 미래에는 달라질 가능성도 있지만, 그럼에도 내일의 일출을 믿는 것과 마찬가지로 당연시되는 지식이며, 과학의 영역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사람이 태어나면 죽을 것이라는 것도 상식에 속한다고 할 수 있고, 이 때문에 죽을 사람을 낳는 선택을 행한 부모는 살인자나 마찬가지라는 철학적 비유도 존재한다.

그렇다면 이것이 왜 비유에 그칠 수밖에 없는 것일까?

분명 미필적 고의 역시 살인범으로 인정될 수 있다. 하물며 사실상 반드시 죽을 것을 알고도, 영생 기대 없이 낳았음에도 어떻게 살인자가 아닐 수 있을까?

누구나 살면서 한 번쯤, 분명 배워서 알고 있던 지식인데 갑자기 떠오르지 않거나, 문장으로는 아는데 도통 응용이 되지 않는 경험을 하고 답답하거나 신기하게 생각한 적이 있을 것이다.

즉 머리로는 죽을 것을 안다고 하더라도, 인생에서 발생 가능한 모든 위험 요소를 매일 같이 뉴스로 보고 듣더라도, 그것이 갖는 의미를 제대로 체감하거나 인식하지 못하고 일상에서 응용하지 못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여기에는 스스로의 죽음조차 무의식적으로 멀리 두고 생각하지 않으려는 낙관 기제, 일단 출산부터 부추기고 보는 사회 분위기 등도 작용할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자유의지 책임론에 의거해 어쩌면 출산에 대한 책임을 물을 수는 있고, 생각 없고 경솔했다고 책망할 수는 있을지 몰라도, 살인자라고 비난하는 것은 철저하게 철학적 비유에 한하는 것이다.

1. 직접적인 살해 의도를 갖고 마찰력이 작은 첨단을 가진 도구를 타인의 육체에 침투시켜 장기부전과 과다출혈을 유도하고 끝내 죽게 함.

2. 살해 의도가 없고 안전불감증인 상태로 높고 가파른 절벽에 타인을 데려갔다가 그 타인이 발을 헛디뎌 추락하고 그 에너지로 목뼈가 부러져 죽게끔 결과적으로 유도함.

출산에 대해 미화된 대중적 인식을 제하더라도, 우리가 무죄추정을 따른다면, 출산은 1.은 일단 아니며 2.에 좀 더 가까운 정도로 봐야 할 것이다. 결국 이미 태어난 자에게 이른 죽음을 직접적으로 강요하는 것과, 그보다는 간접적으로 어떤 자를 태어나게 하여 결과적으로 죽음에 노출시키는 것을 완전히 동격으로 취급하기는 어렵다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가능하다면, 반출생주의자는 인식상의 실수로 출산이라는 안전 사고를 일으킬 수 있는 자에게 일종의 안전 사고 예방 캠패인을 행한다는 마음가짐으로 접근해야 하며, 설혹 이미 실수하여 안전 사고를 범한 자라 할지라도 과하게 악마화해서는 안 된다. 무지가 죄는 아닌 것처럼, 인식상의 무지 역시 그 자체로는 죄가 아니라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