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산하지 않아서 태어나지 못한 정체성이 결정되지도 않은 그 사람은 고통의 회피란 이득을 누린적조차도 없는데 왜 비출산이 더 낫다는건지 이해하기 어렵다.
비출산의 이득을 누린 사람은 출산으로 이득을 누린 사람과 정확히 동일한 의미에서 이미 태어났던 사람들 뿐이다.

추가적인 고통을 생산하지 않았다고 논박한다면 비출산으로 인해 이미 태어난 사람이 견뎌야 할 고통으로 받아치면 그만이다.
그리고 출산이 가져다 줄 효용도 분명 있다.
설령 태어난 그 사람에겐 태어난게 이득은 아닐지라도.

만약 사람을 수단으로 대하는게 문제라고 논박한다면 우린 그 어떤 행위도 할 수 없게 된다. 우린 매 순간 타인을 수단으로 대우하는데 말이다.

그리고 아무리 좋게 생각해도 출산이 태어난 사람에게 해를 입힌단 관념도 인정하기 어렵다.
칼로 찔러 살해하는 것, 도둑질을 하는 것, 간접흡연을 하는 것, 환경오염.
자비롭게 봐서 책임소재가 불분명해지는 해악들로 아무리 끌어내려보아도 출산같은 해악은 찾아보기 어렵다.
어떻게 태어나게 했단 이유만으로, 단지 이러한 세계에 처하게 했단 이유만으로 그게 해를 입혔다고 생각할 수 있는지 모르겠다.

내가 보기에 반출생주의자들은 출생주의를 왜곡하는 것 같다.
삶의 고통에 대한 모든 책임을 부모에게 전가시키는 방식으로 왜곡한다.
설령 태어났더라도 겪지 않았던, 그리고 아마 겪지도 않을 무수한 고통들은 언급조차 하지 않는다.
또한, 태어나지 않아서 실재하지 않으므로 권리의 보유자가 될 수 없는 것이 부모의 탓인 것처럼, 그래서 부모들이 마치 출산의 특수성을 악용하는 것처럼 유리하게 왜곡시킨다.

그리고 쾌락의 부재가 박탈이 아닐땐 나쁘지 않다는 평가 또한 받아들이기 어렵다.
많은 사람들은 좋은 음식을 먹거나 좋은 경치를 보면 혼자 보기엔 아깝다고, 그래서 이러한 쾌락을 누릴 추가적인 사람이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이러한 사람들은 정말로 박탈을 수반하지 않더라도 쾌락의 부재가 나쁘다고 평가하는 것 같다.

나는 아이를 위해 아이를 낳을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리고 정확히 동일한 의미에서 아이를 위해 아이를 위해 낳지 않을 수 있다고도 생각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