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사람들이 다른 사람들에게 자신의 행동을 강요하면서 흔히 "너를 위해서"라고 한다.
자신이 원하는 것을 나에게 강요함에 있어 그 원인을 나를 위한 마음이라 명분 삼으니 내가 "나를 위한다면 그러하지 않아도 좋다"라 완곡히 거절하여도 그들은 굳건하다.
"그래도 해"
그들의 말과 표정, 행동은 날 위한 것이라 포장하지만 그 내막은 철저한 이기심에 점철되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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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어려서부터 학교에서 가르치는 애국열사, 순국선열의 애국심과 자애로운 부모의 헌신, 가르치는 선생의 은혜를 들으며 도대체 왜? 라는 의문을 자주 던져왔다.
초등학교 3학년 이전에는 너무 어려서 그랬는지 생각이 길게 이어지지 않았지만 머리가 조금 자라고 나서는 의문이 꼬리를 무는 것은 순간이었다.
왜 우연히 태어났을 뿐인 나라에 애국심을 가져야 하고, 왜 자신들의 의지로 나를 낳은 부모에게 효도를 해야 하며, 왜 봉급을 받는 선생님들에게 은혜로움을 느껴야 할까?
그렇다.
모든 것들에는 견련성(Give and Take)이 있다.
한국의 민법은 사적자치의 원리를 법리로 규율하고 있으며 사적자치로써 주로 사용되는 수단은 계약이기 때문에 민법의 기본적 원리는 계약자유의 원칙으로도 불린다.
그렇기 때문에 법에서 말하는 편무계약(한쪽만이 의무를 지는 계약)에서도 이 견련성은 사라지지 않는다.
물질적으로 오간 급부에서 한쪽만이 이익을 보았을지언정 그 안의 인간관계를 깊게 들여다보면 급부를 받은 쪽 뿐만이 아닌 지급한 쪽에서도 심리적인 이익을 얻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애초에 그러한 목적을 위하여 증여계약을 맺은 것일 수도 있고.
즉, 이 세상에 한쪽만이 무언가를 얻는 경우는 없다.
가는 급부가 있으면 그 반대급부도 있다.
다시 돌아와서 왜 나는 사람들의 자기만족에 의한 행동의 결과물에 대하여 감사함을 느껴야하는 걸까?
왜?
내가 생각하기에 그것은 타당한 의문임이 틀림없었다.
그들의 내심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내가 직, 간접적인 이익을 보았기 때문에?
아니면 나 또한 그들과 마찬가지로 남들에게 직, 간접적인 이익을 보게하는 행동을 하는 사람으로 만들기 위하여?
아니면 둘다?
그도 아니면 내가 모르는 이유가 있나?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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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은 끝없이 이어진다.
그로부터 십 수년이 흐른 어느 날이 지금이지만 나는 지금까지도 그 생각에 대한 결론은 내리지 못한 상태이다.
왜냐? 아직도 내가 모르는 어떠한 유형이 있을 지 모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극히 드믄 예외를 제하고 나면 어느 정도(어쩌면 거의 전부) 성립할 수 있는 인간의 행동 원리는 있었다.
인간은 자신의 이기심을 위하여 행동한다.
전란에 휩싸인 나라를 위하여 의병으로 일어서는 것도,
자신의 아이를 구하기 위해 목숨을 버리는 것도,
자신의 행동에 책임을 지기 위하여 고행을 반복하는 것도,
모두 자신의 이기심이 그 근본적인 원인이다.
온 세상 모든 곳에 이기심이 만연해있다.
세상 사람들이 숭고히 여기는 부모의 마음마저도...
다시 처음의 예시로 돌아가서,
이러한 행동의 근본적인 원인은 도대체 무엇인가.
남의 의사와는 관계없이 본인이 좋을 것이다라는 막연한 생각에 의존하여 상대방의 진의와는 다르게 행동하게 만들고 혹은 그에게 무가치하게 느껴지는 것을 해놓고 그에 따른 반대급부를 원하는 것은 도대체 어디에서 기인하는 것인가.
그렇다 이는 이기심이다.
자신의 의사를 관철하기 위한 수단으로써 남을 위하는 행동을 한 것이지 그 내심의 본의는 본인의 사익추구를 위한 이기심임이 분명했다.
나를 위해서?
도저히 웃기지도 않는 거짓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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