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데 세상엔, 작은 쾌락을 더하는게 큰 고통을 줄이는 것보다 좋은 행위라고 얘기하는 사람도 있더라구.
난 아직 모르겠어.
뭐가 맞는걸까.
댓글 25
그건 우리가 아니라 태어날 사람이 선택할 일인데, 태어나지 않은 사람의 의견을 물어볼수는 없으니깐
익명(38.91)2023-03-16 19:11:00
일반 도덕론의 당위성 관점을 존재에게 적용한다면, 우리는 고통받는 사람을 더 이상 존재하지 않게 할 책임을 가지게 됨.
이는 이미 행복한 사람을 이 세상에 존재하게 할 책임과 비교 불가능할 정도로 강한 당위임
인류는 독단적으로 태어나는 것이 좋다 라는
결론을 유지지켜 왔지만
그건 본능에 의한 편향일뿐.
그 누구라도 고통 가능성이 있는
antinatalism(siangpure1)2023-03-16 20:04:00
이상 안 낳는 것이 최선임
antinatalism(siangpure1)2023-03-16 20:05:00
바른거임
익명(175.120)2023-03-16 21:31:00
답글
아르투어 쇼펜하우어: 독일의 철학자.
반출생주의로 해석되는 언급 부분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결코 채워지지 않는 본능적 욕망으로 인해 고통이 생겨나고, 존재는 고통으로 가득하다.
세상은 쾌락보다 고통이 더 많고, 쾌락이 고통을 배상할 수도 없다.
익명(175.120)2023-03-16 22:53:00
답글
그러므로 종합적으로 봤을 때 인생은 시작하지 않는 것이 합리적이며,
맹목적인 삶에의 의지에 굴복하여 아이를 만드는 것은 무의미하고 불필요하며 부도덕하다.
따라서 삶은 비존재의 축복받은 고요를 방해하는, 이로울 것이 없는 사건으로 여길 수 있다.
유일한 행운은 태어나지 않는 것이다.
익명(175.120)2023-03-16 22:54:00
답글
베너타는 다음과 같이 결론내린다.
사람은 존재하게 됨으로써 존재하지 않았다면 입지 않았을 다대한 해를 입는다.
아예 존재하지 않았다면 좋음을 박탈당할 수 없다. 심지어 일말의 좋음조차도 궁극적으로는 죽음으로 인해 박탈당할 수밖에 없다.
존재하게 되는 것은 순이익 대신 순손해를 낳는다. 따라서 존재하게 되는 것은 항상 심각한 해악이며, 출산은 항상 잘못이다
익명(175.120)2023-03-16 22:56:00
답글
물론 낙천주의자들은 삶에서 좋음과 나쁨의 비중을 비교해 좋음이 나쁨을 능가하는 한 존재시킬 가치가 있다고 주장할 수도 있다.
이런 반론에 대해 베너타는 삶에서 좋음과 나쁨은 순서, 강도, 길이에 따라 다르기에 저런 식의 단순 계산은 어렵다고 지적한다.
익명(175.120)2023-03-16 22:57:00
답글
또한 삶에서 나쁨이 어떤 임계점을 넘어서게 되면 좋음의 양이 얼마가 되든 나쁨을 능가할 수 없으며, 가령 아무리 많은 돈과 명예를 가졌더라도 그것이 말기 암이나 심각한 전신 화상 등의 고통을 만회할 수는 없다고 말한다.
익명(175.120)2023-03-16 22:58:00
답글
평소에 메모해둔거라 베너타랑 쇼펜하우어가 뒤죽박죽 섞여있는 상태인데다가 일일이 분류나 정리를 하기는 귀찮으니까 그 부분은 양해좀
익명(175.120)2023-03-16 23:02:00
애초에 작은 쾌락을 더하는 게 큰 고통을 줄이는 것 보다 더 낫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의 근거가 뭔지가 나는 궁금해.
어떤 근거로 그 말이 합당하다는 것을 증명할 수 있는 걸까. 그리고 심지어 누군가에게는 그 작은 쾌락을 갖는 것 조차도 불가능할 수도 있어.
익명(175.120)2023-03-16 23:04:00
답글
그런 말을 하는 사람들은,
전쟁으로 인해 사방이 시체투성이가 되어서
피에 젖은 땅에 피어난 한송이 꽃을
절망에 빠진 흐린 눈으로 힘없이 바라볼 수 있는 것 조차도 "작은 쾌락"이라고 주장할 셈인지 궁금하긴 하다.
그것도 쾌락이라고 친다해도 과연 그걸 낳는 게 도덕적일까
익명(175.120)2023-03-16 23:07:00
답글
애초에 그 작은 쾌락이라는 것 조차 본인들 기준에서 정한 뇌피셜일 뿐이지,
낳음당할 아기는 큰 쾌락이든 작은 쾌락이든 쾌락취급도 안 할 수도 있고
치료저항성 우울증에 걸려서 쾌락을 느끼는 일 조차 쉽지 않은 인간으로 자랄 수도 있어.
낳음 가해자들이 무슨 수로 그 출산이 작은 쾌락을 낳는 건지 보장할 수 있는걸까?
그건 아이가 느낄 주관적 판단인데 말이지
익명(175.120)2023-03-16 23:20:00
답글
만약에 위 질문에 대해서
"아, 그건 낳아보면 알겠지~! 사람이 의도대로만 살 수 있나~살면서 한번은 행복하겠지~~!~!~!"
라고 답하는 출산범이 있다면 바로 그게 아이를 도박에 던져넣는 짓과 뭐가 다르냐고 물어보고 싶을 것 같아.
익명(175.120)2023-03-16 23:24:00
아이가 행복할 수 있다는 것은 아이를 만드는 중요한 도덕적 이유가 되지 않는다. 반면 아이가 불행할 수 있다는 것은 아이를 만들지 않는 중요한 도덕적 이유가 된다.
익명(175.120)2023-03-16 23:15:00
답글
만일 쾌락의 부재를 경험할 당사자가 없는데도
쾌락의 부재가 "나쁘다면", 우리는 극도로 적은 행복이 보장되었더라도 무조건 생명을 만들어야 하는 중요한 도덕적 의무를 가진다.
그리고 고통의 부재를 경험할 당사자가 없더라도 고통의 부재가 좋은 게 아니라면,
우리는 아이를 만들지 않아야 할 중요한 도덕적 이유를 댈 수 없다.
익명(175.120)2023-03-16 23:16:00
답글
회고적 이익의 비대칭성:
우리는 우리의 결정으로 사람을 존재시킬 경우 그 사람이 처할 상황 때문에 결정을 후회할 수 있다.
우리가 창조한 사람은 불행할 수 있고, 고통의 존재는 나쁠 것이다.
익명(175.120)2023-03-16 23:17:00
답글
반면 우리는 우리의 결정으로 사람을 존재시키지 않을 경우
그 사람이 처할 상황 때문에 후회하는 일은 절대로 없다.
그 사람은 전혀 존재한 적도 존재할 일도 없기 때문에 행복과 쾌락을 박탈당할 일이 없고,
쾌락의 부재는 나쁘지 않을 것이다.
익명(175.120)2023-03-16 23:18:00
+현재도 지구 각지에는 각종 재난과 기근 등으로 고통받고 죽어가는 수많은 사람들이 있다
일부 실시간 통계 이 세상은 최고 특권층 부모가 낳은 아이들조차도 성폭행당하거나 살해당할 가능성이 엄연히 존재한다.
숙박한 호텔이 테러로 무너지거나 타고 있던 비행기가 추락할 수도 있으며, 심각한 우울증이나 불치병에 걸려서 고통을 참다 못해 죽길 바랄 수도 있다.
익명(175.120)2023-03-16 23:36:00
답글
설령 치명적인 사고를 모두 피하더라도 결국은 늙고, 죽는다. 베너타는 출산 행위에 대해, 자신의 머리를 겨냥할 뿐만 아니라 미래의 자손을 겨냥하고 있는, 총알이 가득 찬 총으로 행하는 러시안 룰렛에 빗댄다
익명(175.120)2023-03-16 23:36:00
답글
과연 <작은 쾌락을 더하는게 큰 고통을 줄이는 것보다 좋은 행위라고 주장하는 그 인간들>이 위와 같은 삶을 살게 된다고 쳤을 때 낳음당함에 동의할 건지 궁금해지네.
심지어 재벌이나 특권층조차도 나쁜일을 겪는데. 흙수저로 낳음당해서 <라면을 먹을 수 있다>라는 작은 쾌락을 느끼며 노예마냥 살아간다면 과연 그게 <좋은 행위>라고 본인들은 받아들일 수 있을까?
익명(175.120)2023-03-16 23:39:00
답글
만약 <본인>들은 사회부조리와 빈부격차와 질병 가난 차별을 겪어내며 생계의 노예로 살아가는 단칸방인생에서 맛보는 라면이라는 작은 행복이 전부인 삶은 좋은 것이다 라고 납득할 수 있다고 쳐도
과연 <본인들의 아이>도 동의할까.
익명(175.120)2023-03-16 23:43:00
답글
선택권이 없는 불쌍한 아이들에게 그것이 행복이라고 강요하며 낳음을 가해하는 건 과연 도덕적일까.
아이가 싫다는데 부모 본인들이
<작은 쾌락은 좋은 일이 맞다>라고 논리와 근거를 상실한 채 그저 정신승리 해버리는 것으로 끝날 문제 인걸까..
익명(175.120)2023-03-16 23:46:00
답글
재벌이나 연예인들조차도 우울증이나 각종 불행으로 인해 자살해버리고 마는 것이 이 세상이고 인생인데, 무슨 권한과 보장이 있어서
근거도 없이 본인들이 낳을 존재가 작은 쾌락에 만족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는걸까.
보면 꼭 저런 마인드인 사람들이 대책없이 주렁주렁 번식하고는 아프리카보다 낫다, 작은것에 감사할 줄 알라고 애들 세뇌시키더라.
그건 우리가 아니라 태어날 사람이 선택할 일인데, 태어나지 않은 사람의 의견을 물어볼수는 없으니깐
일반 도덕론의 당위성 관점을 존재에게 적용한다면, 우리는 고통받는 사람을 더 이상 존재하지 않게 할 책임을 가지게 됨. 이는 이미 행복한 사람을 이 세상에 존재하게 할 책임과 비교 불가능할 정도로 강한 당위임 인류는 독단적으로 태어나는 것이 좋다 라는 결론을 유지지켜 왔지만 그건 본능에 의한 편향일뿐. 그 누구라도 고통 가능성이 있는
이상 안 낳는 것이 최선임
바른거임
아르투어 쇼펜하우어: 독일의 철학자. 반출생주의로 해석되는 언급 부분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결코 채워지지 않는 본능적 욕망으로 인해 고통이 생겨나고, 존재는 고통으로 가득하다. 세상은 쾌락보다 고통이 더 많고, 쾌락이 고통을 배상할 수도 없다.
그러므로 종합적으로 봤을 때 인생은 시작하지 않는 것이 합리적이며, 맹목적인 삶에의 의지에 굴복하여 아이를 만드는 것은 무의미하고 불필요하며 부도덕하다. 따라서 삶은 비존재의 축복받은 고요를 방해하는, 이로울 것이 없는 사건으로 여길 수 있다. 유일한 행운은 태어나지 않는 것이다.
베너타는 다음과 같이 결론내린다. 사람은 존재하게 됨으로써 존재하지 않았다면 입지 않았을 다대한 해를 입는다. 아예 존재하지 않았다면 좋음을 박탈당할 수 없다. 심지어 일말의 좋음조차도 궁극적으로는 죽음으로 인해 박탈당할 수밖에 없다. 존재하게 되는 것은 순이익 대신 순손해를 낳는다. 따라서 존재하게 되는 것은 항상 심각한 해악이며, 출산은 항상 잘못이다
물론 낙천주의자들은 삶에서 좋음과 나쁨의 비중을 비교해 좋음이 나쁨을 능가하는 한 존재시킬 가치가 있다고 주장할 수도 있다. 이런 반론에 대해 베너타는 삶에서 좋음과 나쁨은 순서, 강도, 길이에 따라 다르기에 저런 식의 단순 계산은 어렵다고 지적한다.
또한 삶에서 나쁨이 어떤 임계점을 넘어서게 되면 좋음의 양이 얼마가 되든 나쁨을 능가할 수 없으며, 가령 아무리 많은 돈과 명예를 가졌더라도 그것이 말기 암이나 심각한 전신 화상 등의 고통을 만회할 수는 없다고 말한다.
평소에 메모해둔거라 베너타랑 쇼펜하우어가 뒤죽박죽 섞여있는 상태인데다가 일일이 분류나 정리를 하기는 귀찮으니까 그 부분은 양해좀
애초에 작은 쾌락을 더하는 게 큰 고통을 줄이는 것 보다 더 낫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의 근거가 뭔지가 나는 궁금해. 어떤 근거로 그 말이 합당하다는 것을 증명할 수 있는 걸까. 그리고 심지어 누군가에게는 그 작은 쾌락을 갖는 것 조차도 불가능할 수도 있어.
그런 말을 하는 사람들은, 전쟁으로 인해 사방이 시체투성이가 되어서 피에 젖은 땅에 피어난 한송이 꽃을 절망에 빠진 흐린 눈으로 힘없이 바라볼 수 있는 것 조차도 "작은 쾌락"이라고 주장할 셈인지 궁금하긴 하다. 그것도 쾌락이라고 친다해도 과연 그걸 낳는 게 도덕적일까
애초에 그 작은 쾌락이라는 것 조차 본인들 기준에서 정한 뇌피셜일 뿐이지, 낳음당할 아기는 큰 쾌락이든 작은 쾌락이든 쾌락취급도 안 할 수도 있고 치료저항성 우울증에 걸려서 쾌락을 느끼는 일 조차 쉽지 않은 인간으로 자랄 수도 있어. 낳음 가해자들이 무슨 수로 그 출산이 작은 쾌락을 낳는 건지 보장할 수 있는걸까? 그건 아이가 느낄 주관적 판단인데 말이지
만약에 위 질문에 대해서 "아, 그건 낳아보면 알겠지~! 사람이 의도대로만 살 수 있나~살면서 한번은 행복하겠지~~!~!~!" 라고 답하는 출산범이 있다면 바로 그게 아이를 도박에 던져넣는 짓과 뭐가 다르냐고 물어보고 싶을 것 같아.
아이가 행복할 수 있다는 것은 아이를 만드는 중요한 도덕적 이유가 되지 않는다. 반면 아이가 불행할 수 있다는 것은 아이를 만들지 않는 중요한 도덕적 이유가 된다.
만일 쾌락의 부재를 경험할 당사자가 없는데도 쾌락의 부재가 "나쁘다면", 우리는 극도로 적은 행복이 보장되었더라도 무조건 생명을 만들어야 하는 중요한 도덕적 의무를 가진다. 그리고 고통의 부재를 경험할 당사자가 없더라도 고통의 부재가 좋은 게 아니라면, 우리는 아이를 만들지 않아야 할 중요한 도덕적 이유를 댈 수 없다.
회고적 이익의 비대칭성: 우리는 우리의 결정으로 사람을 존재시킬 경우 그 사람이 처할 상황 때문에 결정을 후회할 수 있다. 우리가 창조한 사람은 불행할 수 있고, 고통의 존재는 나쁠 것이다.
반면 우리는 우리의 결정으로 사람을 존재시키지 않을 경우 그 사람이 처할 상황 때문에 후회하는 일은 절대로 없다. 그 사람은 전혀 존재한 적도 존재할 일도 없기 때문에 행복과 쾌락을 박탈당할 일이 없고, 쾌락의 부재는 나쁘지 않을 것이다.
+현재도 지구 각지에는 각종 재난과 기근 등으로 고통받고 죽어가는 수많은 사람들이 있다 일부 실시간 통계 이 세상은 최고 특권층 부모가 낳은 아이들조차도 성폭행당하거나 살해당할 가능성이 엄연히 존재한다. 숙박한 호텔이 테러로 무너지거나 타고 있던 비행기가 추락할 수도 있으며, 심각한 우울증이나 불치병에 걸려서 고통을 참다 못해 죽길 바랄 수도 있다.
설령 치명적인 사고를 모두 피하더라도 결국은 늙고, 죽는다. 베너타는 출산 행위에 대해, 자신의 머리를 겨냥할 뿐만 아니라 미래의 자손을 겨냥하고 있는, 총알이 가득 찬 총으로 행하는 러시안 룰렛에 빗댄다
과연 <작은 쾌락을 더하는게 큰 고통을 줄이는 것보다 좋은 행위라고 주장하는 그 인간들>이 위와 같은 삶을 살게 된다고 쳤을 때 낳음당함에 동의할 건지 궁금해지네. 심지어 재벌이나 특권층조차도 나쁜일을 겪는데. 흙수저로 낳음당해서 <라면을 먹을 수 있다>라는 작은 쾌락을 느끼며 노예마냥 살아간다면 과연 그게 <좋은 행위>라고 본인들은 받아들일 수 있을까?
만약 <본인>들은 사회부조리와 빈부격차와 질병 가난 차별을 겪어내며 생계의 노예로 살아가는 단칸방인생에서 맛보는 라면이라는 작은 행복이 전부인 삶은 좋은 것이다 라고 납득할 수 있다고 쳐도 과연 <본인들의 아이>도 동의할까.
선택권이 없는 불쌍한 아이들에게 그것이 행복이라고 강요하며 낳음을 가해하는 건 과연 도덕적일까. 아이가 싫다는데 부모 본인들이 <작은 쾌락은 좋은 일이 맞다>라고 논리와 근거를 상실한 채 그저 정신승리 해버리는 것으로 끝날 문제 인걸까..
재벌이나 연예인들조차도 우울증이나 각종 불행으로 인해 자살해버리고 마는 것이 이 세상이고 인생인데, 무슨 권한과 보장이 있어서 근거도 없이 본인들이 낳을 존재가 작은 쾌락에 만족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는걸까. 보면 꼭 저런 마인드인 사람들이 대책없이 주렁주렁 번식하고는 아프리카보다 낫다, 작은것에 감사할 줄 알라고 애들 세뇌시키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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