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부분이 동의하는'
대부분이 동의하는 직관에서 대부분이 동의하지 않는 판단을 이끌어내면
반응은 둘 중 하나일거같아.
혁신적이다 or 제정신이냐
그런데 '대부분이 동의하는' 이라는 말을 들여다보면
중요한건 사실여부가 아니라 합의여부인걸로 보여.
전제뿐만 아니라 결론에서도.
혼돈을 줄려는 의도는 없어. 내가 오히려 혼돈 상태에 가깝지. 무지하니까.
'대부분이 동의하는'
대부분이 동의하는 직관에서 대부분이 동의하지 않는 판단을 이끌어내면
반응은 둘 중 하나일거같아.
혁신적이다 or 제정신이냐
그런데 '대부분이 동의하는' 이라는 말을 들여다보면
중요한건 사실여부가 아니라 합의여부인걸로 보여.
전제뿐만 아니라 결론에서도.
혼돈을 줄려는 의도는 없어. 내가 오히려 혼돈 상태에 가깝지. 무지하니까.
윤리학자가 부러 주장의 근거로 언급하는 수준의 직관은, 나는 그 직관에 동의하지 않는다고 생각하고 말하는 사람조차도, 실상 검증해보면 그렇지 않은 것이 일상의 언행으로 드러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즉, 개인의 감정이나 문화 같은 것과 무관하게, 신기하게도 세계 인류가 짠 듯이 공유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사실상의 보편 직관이 있다는 것이다. "대부분이 동의하는 직관에서 대부분이 동의하지 않는 판단을 이끌어 냄" 이는 반출생주의를 잘 표현한 말 같다. 합의 여부가 중요하다는 말은 틀리지 않을 것이다. 반출생주의 역시 결국 강요가 아닌 동의를 통해서, 사회적 합의를 통해 이루어야만 한다. 비록 그것이 실현을 어렵게 할지라도.
위에서 실현은 대승적 차원의 것을 말하는 것이고, 반출생주의자 개인이 아이를 낳지 않는 것만으로도 기대 가능한 윤리 수행에 해당되며 실천윤리로서 성립한다. 반면 친죽음주의는 개인 차원의 실천부터가 반출생주의와 비교가 안 되게 어렵고, 제시되는 직관도 덜 강력하여 실천윤리로서는 취약한 부분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