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아지 함부로 사지 말라는 말에는 동의하면서
뻔히 이런 세상인거 알면서 같은 과정을 겪어야 하는
새로운 사람을 왜 자꾸 만들려는거지
사회 유지가 안되니까 결국 본인을 위한 일이면서
뭘 미안해 할 필요가 없고
아이를 위한 삶인것 마냥 말하는거지
다 자기합리화지
본인 자식인데 얼마나 많은 감정들을 삭이고 있을지
헤아려 줄 생각을 왜 안하지
타인의 생각에 깊이 들어가기 귀찮으니까
그래놓고 본인의 의무를 다했으니
대단한 취급을 받길 원한다는게
인간의 정의 그 자체 같다
이기심이 나쁜게 아니니까
인간이 당연하게 갖고 있는 본성이니까
나도 나의 이기적인 방식으로
사회 유지 따위 나 몰라라 하겠다
뻔히 이런 세상인거 알면서 같은 과정을 겪어야 하는
새로운 사람을 왜 자꾸 만들려는거지
사회 유지가 안되니까 결국 본인을 위한 일이면서
뭘 미안해 할 필요가 없고
아이를 위한 삶인것 마냥 말하는거지
다 자기합리화지
본인 자식인데 얼마나 많은 감정들을 삭이고 있을지
헤아려 줄 생각을 왜 안하지
타인의 생각에 깊이 들어가기 귀찮으니까
그래놓고 본인의 의무를 다했으니
대단한 취급을 받길 원한다는게
인간의 정의 그 자체 같다
이기심이 나쁜게 아니니까
인간이 당연하게 갖고 있는 본성이니까
나도 나의 이기적인 방식으로
사회 유지 따위 나 몰라라 하겠다
근현대 의무론은 칸트로부터 출발하는데, 거기엔 님의 말씀처럼 사회(국가)나 이웃의 강제성이 전제되지 않습니다. 순전히 나의 도덕적 의무로서 사회 구성원의 품위를 유지하자는 거죠. 칸트에게서 격률보다 우선 우선 요청되고 소중한 것은 내 안의 도덕법칙입니다. 그래서 의무는 권리와 마찬가지로 자율성이 보장된 나의 의무이지요.
의무라는 말에 주눅들지 마세요. 의무는 내가 내 자신에게(;대하여) 지키(려)는 최소(대)한의 약속입니다. 일종의 신앙 같은 건데 거기서의 신은 가능한 이성적 존재로서, 또 언제나 도덕적일 수 있는 '나 자신'입니다.
*'우선' 하나를 빼 주세요. 거슬리네요
※칸트 철학= 주체 철학.
베너타처럼ㅡ빈약한 편이지만ㅡ철학적 논증(원리 또는 원인)으로서 반출생을 증명하려면 나의 경험세계나 분노와 원한감정은 잠시 접어 두셔야 합니다. 칸트의 의무론으로서 반출생주의의 정당함을 얼마든지 연역할 수 있어요. 그런데 그런 방법을 선택하면 당장의 한국사회가 가진 부조리와 일상의 폭력들을 제대로 설명할 수 없죠. 사실 한국사회에서 만악의 근원은 법체제 그
자체이며 소위 사회 지도층이란 자들이 악인의 표본입니다. 둘을 동시에 설명하고 해소하려 하면 커다란 논리적 맹점이 발생합니다. 칸트의 순수이성비판처럼 따로 떼어놓고 출발한 뒤에 나중에 다시 만나는 연역방식이 결국은 세상 멍청이들을 굴복시킬 겁니다. 지난하지만 유일한 정석의 설득법입니다.
그런데 이제 끝물인 듯한 반출방에서 칸트의 연역(-적 방법론)으로서 베너타의 주장에 이론적 살을 붙이고 반출러의 과잉 감정들을 옹호한다고 해서 이 사회가 달라질까요? 저는 이 지점에서 몹시 회의적인 시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당장 반출러조차도 기왕의 종교인처럼 어떤 믿음을 확인하려 접속하는 듯해요. 세상 사람들은 나의 믿음에 호응하지 않습니다. 그들의 관심과
호의는 일시적이고 애정은 첫서리처럼 빨리 증발하지요. 자칫 저출생의 모든 오명을 반출생주의자가 독박 쓸 수도 있습니다. 간단히 말해서 대개의 인간은 그리 현명하지도 않고 이성적인 것과는 거리가 멉니다. 현명하고 이성적인 인간 또한 당장의 이익 앞에서는 이성적 판단을 멈추지요. 허니 반출생주의의 역할은 이미 다한(할만큼 한) 것 같습니다. 하지만 반출생은
이미 대세입니다. 전세계적 흐름이지요. 문맹과 반문명 세계일수록 출산율은 상대적으로 증가해 보일 겁니다. 실지로 비이성적 사회일수록 종교와 섹스(출산)가 삶의 목적이 되지요. 해서 선진문명이라 일컫는 서유럽 백인 사회가 아프리카 고립(부족)사회보다 더 빨리 종말을 고할 것은 자명합니다. 하지만 생물학적 유전자와 더불어 문화적 유전자를 공유하는 인간종은 결국
반출생주의의 사려 깊음을 헤아릴 겁니다. 그리스 문명은 쇄락했고 로마제국은 멸망했지만 그들의 정신은 전세계 인민들의 뇌리에 깊이 각인돼 있죠. 바로 인문정신입니다. 이런 역사적 사례처럼 반출생주의는 이제 인간 존재의 근원을 다시 생각케 하는 실마리가 될 겁니다.
반출생주의 갤러리에서 처음 댓글을 다는 데, 처음부터 너무 무겁나요? 노래 한 곡 듣겠습니다. 함께 듣죠. ❤+dust in the wind, kansas
https://youtube.com/watch?v=zVokojoF_lY&si=mBJ4_To2vHPF_Hc2
♥+bitter sweet symphony, david garrett
https://youtube.com/watch?v=F9g1xOJBKBw&si=8zCvfsX7XlukAmpk
인간 존재의 근원: 있는 것은 있다. 있는 것만이 진리다. 있음으로부터 시작한다<=존재론.
※※도리어 칸트식으로 비판(이론)적 연역을 확장해 갈수록 극단적인 반출생주의가 도출될 수밖에 없다. 삶(타자의 세계가 반드시 개입되는 삶!)은 궁극적으로 비극이며 슬픔인 것이 자명하기에 비존재가 궁극의 피안이겠다. 존재론에서도 '아예 없음'만이 무한(끝없음)을 설명할 수 있다. 곧 반-존재론만이 존재론의 본질을 드러내고 반철학만이 철학의 본디 목적을 상기시
-킨다.
*쇄락했고=> '쇠락'했고.
"이미 태어난 나는 어쩌란 말야!" 비극의 탄환이 심장에 박힌 채 죽을 때까지 평생 가는 거죠. 방법이 없습니다. 니체의 운명이란 겁니다. 이 한 번 뿐인 비극적인 삶을 어떻게 살다 죽을지는 여러 님의 선택입니다. 일상으로서 자율성도 보장되고 총체적 자유의지도 가능합니다. 한 번 뿐인 삶인데 나는 왜 이처럼 비루하게 살다가 억울하게 죽는 거야? 라고
고민하기 시작하면 끝도 없습니다. 한데 나는 언제든 다른 마음가짐을 가지고서 오직 나의 품격(인격)을 위해 살 수도 있다. 둘 다 자율성에 의한 판단이며 자유의지의 발로입니다. 선택은 언제나 님 자신의 몫입니다. 이 비극의 현장은 이제 막이 내립니다. 연기하느라 모두 수고하셨습니다. 두 번 다시 무대에 서지 맙시다. 두 번 다시 태어나지 말아야 합니다.
죽기 전까지 그러나 나를 포함한 세상 모든 것을 끝까지 믿고 사랑해 주십시오. 오직 나의 품격(존엄)을 위해서. ♥+
https://youtube.com/watch?v=yPdUVGhmXWA&si=wX9OviH7QUH_G7Qp
이기적으로 살되 결단코 인정과 법의 그물에 걸리지 마십시오. 어렵고 또 어려운 삶입니다.
♥+separate ways
https://youtube.com/watch?v=VzEYQLANWgo&si=BlserrzfE2f5YI7s
산다는 건 정말로 외롭고 고통스러운 겁니다. 삶의 희열은 부디 혼자 간직하소서.
https://youtube.com/watch?v=6gcPdeL4Dnc&si=Hj7d9HvW7i-PNfHS
반출생주의는 이념의 문제가 아니라 오히려 개성의 문제인 듯해요. 그래서 그 시작은 작지만 그 끝은 기어어 인류사를 삼키고도 남죠. 이제 시작입니다. 님들이 최초의 인간인 거죠. 조바심내지 말고 나는 나의 비극을 대물림하지 않으면 됩니다. 자살은 또 다른 문제이니까, 가급적 지양합시다. 사는 데까지 살아 봐요 우리. 다행히 이 세상엔 반출생주의자라는 우리도
있으니까요. ♥+잘게요.
https://youtube.com/watch?v=2T9rhW11ZKk&si=xZQvkh7uUP0pbmUQ
모두들 산다고, 사느라고 정말로 고생이 많습니다. 수고하셨습니다.
알콜중독자라서 거의 매일 취해 사는데, 위 댓글을 달던 요며칠은 알코홀의 흡입량이 많았습니다. 동어반복이 많고 문장이 일목요연하지 못합니다만, 얼추 제가 하고픈 말은 거의 담겨 있는 듯합니다. 이론적(철학적) 논증으로서 반출생주의를 설명하려면 도리어 존재론의 이해가 폭넓고도 깊게 개진되어야 합니다. 어려운 일입니다. 이 어려운 일은 장차, 평생토록 반출러의
숙제이자 업무입니다. 그러나 그렇게 제대로 공부해 나가는 과정에서야말로 위태로웠던 나의 이념(반출생주의)은 신념과 의지의 영역으로 들어설 수 있습니다. 종교인이 임종시에 예수를 찾고 부처를 구하듯, 반출생주의자는 아예 없음의 무화됨을 기쁘게 받아들이는 거지요. 내가 원해서 태어나지 않았듯, 나도 누군가를 강제로 태어나게 할 수 없습니다. 내게 폭력이고
고통인 것은 그에게도 폭력이고 고통입니다. 반쯤은 나의 정자로 빚어진 내 아들은 나와는 별개인 나의 타자입니다. 인간의 생물학적 속성을 운명처럼 받아들이되, 그 운명을 가장 덜 고통스럽게 해소하는 방법을 찾는 게 바로 인간이 가진 이성의 역할이지요. 반출생주의자의 길로 들어선 이상 쉽지 않은 삶이 펼쳐질 겁니다. 많이 외롭겠구요. 하지만 우리는 그 외로움과
고통을 나로부터, 내 손으로 끝낼 수 있습니다. 힘내십시오. 훗날, 또 뵙겠습니다.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마음에 큰 위안이 되었습니다. - dc App
티비도 끊고 살아서 외롭고 심심턴 차에 접속하였는 데, 님의 답글 알림이 와 있네요. 별 쓰잘데 없는 말에 귀한 인사 말씀을 주시어 제가 되레 감사 드립니다. 고맙습니다. 제가 지금, 많이는 아니고 약간 취했습니다. 노래 한 곡 들을까요?
♥+182님과 함께 듣겠습니다. 드뷔시: 달빛, 랑랑
https://youtube.com/watch?v=W2CTo52TJiQ&si=ps4zKh-dNrh1r5Ev
https://youtube.com/watch?v=fZrm9h3JRGs&si=DR4Pe1hBVOocwEY6
♥+182
https://youtube.com/watch?v=bZCfwR7szNY&si=jsS-33S1WfRI7UEI
♥+182/ bach: cello suite no.1 in G major_prelude, yoyo ma
https://youtube.com/watch?v=1prweT95Mo0&si=BvjOnu82kuBwk18s
형식적 모임 또 연대는 정치적 변질의 위험성이 커 권하고 싶지 않구요. 이런 식으로 내가 외로울 때 찾아오는 커뮤니티는 정말로 도움이 되는 것 같아요. 이 말은 거듭 나의 변명이기도 한데, 182님 및 침묵하는 반(출)갤러님께 감사 드립니다. 이 외로운 날 이곳이 없었다면 나는 정말 취중객사할런지도 모릅니다.
https://youtube.com/watch?
https://youtube.com/watch?v=iJ6ThgYyhSs&si=JqX71AyalgjYqK2o
※칸트의 의무 객관적 구분. 소극적 의무=> 형식적 의무: 인간이 그 본성과 관련하여 자신에게 반하는 행동(행위)를 금지하는 것<=부(무)작위의 의무.
적극적 의무=> 실질의 의무: 자의(내 스스로 말미암아)의 대상을 목적 삼아, 그 의지가 지시하는 것으로서 순전한 자신의 목적과 일체를 완성하는 것<=작위의 의무(=지행합일).
*행동(행위)'을'
"소극적인 부작위의 의무는 인내와 절제 따위 도덕적 건강(행위)에 속하며 자신의 본성을 완전한 모습으로 보존(또 보전)하기 위한 것이다. 적극적 작위의 의무는 인간이라는 존재에게 선험적으로 허락된 것으로서 도덕적 지복에 속하며, 모든 목적들을 위한 능력들을 소유하는 과정의 총체이다.
※칸트의 의무 주관적 구분. 1. 동물적 존재자로서 의무: 자기 자신(고유한 '형상')에 대한 의무는 자살(형상의 말살), 쾌락적인 자기모독(성적 경향성의 부자연스러움까지를 포함한 '형상의 변질'), 부적절한 섭생까지도 회피하는 것; 이는 그 자신(신체=형상)의 보존 뿐만 아니라 종의 보전, 그리고ㅡ인간의ㅡ생물학적(동물적) 속성의 적극적 껴안음이다.
2. 도덕적 존재자로서 의무: 내 의지의 준칙을 인간(보편)의 존엄성과 일치하도록 하며, 이를 위하여 나는 우선 내 양심의 자유에 거리끼는 거짓(말), 비관용(너그럽지 못함), 비굴(함) 따위를 항상ㅡ스스로ㅡ물리치는 것이다. *칸트는 이러한 도덕적 능력이 인간에게 선험적으로 주어져 있다고 확신한다.
; 결론. 자칭 반출생주의자인 님들은 "적극적"이고 또 "지극히 도덕적"인 존재(자)란 것. 기죽지 마세요!
당신이 가장 외로울 때 ♥+신선한_야채♥+가 있습니다!
https://youtube.com/watch?v=l0q7MLPo-u8&si=G08GzAPl3sDbqTmr
잘게요 ♥+182/ 사랑하는 나의 사람아 너는 아니?
https://youtube.com/watch?v=6eLT4_bbgdY&si=dd5__uePWNKbOZ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