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통을 느낄 주체가 없더라도 고통의 부재는 좋은거라는 말을 보면 그렇더라구.
느끼지 못하면 좋고 나쁠게 없는데 왜 좋다고 할까 싶지만
어떤 사람은 타인의 고통을 보는것 만으로도 고통을 느끼겠지.
결국 태어나지 않을 아이가 겪지 않게될 모든 것들을, 지켜보는 주위 사람 역시 느끼지 않게 된다는 얘긴거같아.
그러니 개인이 아닌 사회 규모의 이야기를 하는거 아닌가 싶어.
이타의 첨단 중 하나라고 한건 그래서야.
그런데 동시에 반출생은 이기의 첨단이기도 한거 같아.
분명 한 개인의 일부는 다른 개인의 일부와 같으니까.
모든 생명은 어떤 의미에선 혈연관계라잖아.
타인과 자신의 경계가 흐릿한 사람에겐 고통이 남의 것이 아니라 자기 것이겠지.
그런 면에서 결국은 자신의 고통이 싫은게 아닐까 싶기도 해.
아는게 많이 없어서 글로 적기 힘드네
반출생주의는 이타의 첨단이라는 말은 반출생주의는 의무주의의 극단, 사회정의의 극한이라는 말과도 어느 정도 통할 것 같다.
https://m.dcinside.com/board/nobirth/155
분명
이타심도 결국 이기심의 일종일 수 있다. 어쩌면 그저 도덕적 만족감을 위해 도덕을 수행하는 것일 수 있다. 그럼에도 어떤 별종스런 이기적 행동이 최소한 여타 이기적 행동보다는 더 도덕적으로 보이고, 더 도덕적으로 안전해 보인다면, 그것의 실행을 우선해야 할 것이다.
우리는 태어나는 순간 어떤 식으로든, 직간접으로 가해할 수밖에 없고, 해를 입을 수밖에 없다. 그렇기 때문에, 반사실주의적 직관, 애초에 태어나지 않으면 도덕적 결함이고 피해고 뭐고 발생할 수가 없다는 직관을 따라서, 이미 도덕적 결함을 가진 사람들, 이미 완벽한 피해 구제가 불가능한 사람들의 문제와는 별개로, 반출생주의를 수행해야 하는 것이다.
우리는 안전 사고 예방이라는 개념을 이미 실행하고 있다. 그런데 그것이 아무런 시행 착오 없이 완벽하게 성공한다면, 피해자가 전혀 발생하지 않으므로, 질병을 회복시켜 준 의사처럼 감사받을 일 자체가 전혀 없게 된다. 그러나 설령 피해자가 존재하지 않게 되어 전혀 감사받을 수 없더라도, 그래도 사고 희생자는 없는 게 좋다는 직관이 우리에겐 존재한다. 결국 반출생주의는 최악의 안전불감증을 타파하고, 최악의 안전 사고를 예방해야 한다는 당연한 소리를 하고 있는 셈이라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