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어나지 않는것이 낫다 책 앞부분만 읽었음
데이비드베너타왈: *1고통의 부재는 좋지만 *2쾌락의 부재는 나쁘지 않다. 여기서 *2의 근거는 애초에 그 쾌락을 느낄수 있는 존재가 존재하지 않았더라면 쾌락의 박탈이라는 것에 가치판단을 하는 것이 무의미하기 때문
*1 에 대한 내 생각: 고통을 느낄수 있는 존재가 존재하지 않았더라면, 고통의 부재는 좋지도 않고 나쁘지도 않음. 따라서 쾌락과 고통의 부재에의한 비대칭성은 성립하지 않으며 비존재는 존재에 비해 어떤 우위점이나 열위점도 갖지 않음.
표로 나타내면 다음과 같음
시나리오 a(x가 존재함) 시나리오b(x가 존재하지 않음)
고통 고통의 존재->나쁨 고통의 부재-> 좋지도 않고 나쁘지도 않음
쾌락 쾌락의 존재->좋음 쾌락의 부재-> 나쁘지 않음(좋지도 않음)
혹자는 이렇게 반박할지도 모르겠음. "*1은 존재하게 될지도 모르는 사람의 잠재적인 이익에 준거해 내려진 판단임" 그런데 같은 논리를 *2에 적용시켜보면 쾌락의 부재는 나쁘다는 결론이 도출됨. 이 경우 역시 비대칭성을 파괴함.
반박 환영
애초에 존재하지 않으면 고통도 쾌락도 논쟁하는게 의미없단 소리라서 출생주의에 동의한다는 논리가 너무 빈약하지 않음?
출생주의를 옹호하는건 아님
x가 존재하는 경우에 대해 고통의 존재에 대하여 나쁘지 않다 하였는데 일반적인 경우라하면 고통의 존재에 대하여 나쁘다 생각하지 않을까?
그렇게 된다면 결국 다시 비대칭성으로 회귀하게 되지 않을까?
쏘리 모바일로보면 텍스트깨져서 오해할수도 있음.
원래는 고통의 존재는 나쁘다임
아 깨진거임? ㅇㅋㅇㅋ 폰으로 본거라 설명좀
x가 존재하는 경우에 대해 고통의 존재는 나쁘고 x가 존재하지 않는 시나리오에서는 고통의 부재가 좋지도 않고 나쁘지도 않음. 그리고 x가 존재하는 경우에 대해 쾌락의 존재는 좋고 x가 존재하지 않는 시나리오에서는 쾌락의 부재가 좋지도 않고 나쁘지도 않음
컴으로 오니까 잘 보이네 설명 ㄳㄳ 함 읽어봄
1.에 대한 너의 생각 부분에서 쾌락과 고통에 의한 비대칭성은 성립하지 않는다 하였는데 이는 쾌락과 고통의 존재 유무 자체가 비존재에게는 효용이 없기 때문이라고 생각한거가 맞음?
나는 너처럼 책 앞부분조차 읽은게 아니라 비대칭성에 대한 내용이 어떤지 모르겠지만 내가 보기에 비대칭성 논변은 현재의 존재가 존재하기 이전의 시점으로 자신의 의사를 소급하여 판단하고 그에 따라 쾌락과 고통에 대한 내용을 정리한 것 같은데 너처럼 완전히 비존재를 예비적 존재가 아닌 절대적 비존재로써 접근하고 해석하면 쾌락과 고통의 존재에 대하여 이는 비존재에게 무용한 것이고 존재의 쾌락과 고통에 대해 어떠한 가변성이 발생하더라도 비존재는 그에 대해 우, 열을 가지지 않는다 생각할만함. 즉 비존재라는 것을 어떠한 관점에서 해석했느냐의 차이인듯(자러 가야해서 대답이 일단 먼저 써놓고 감)
ㅇㅇ 맞음 반출생갤러라면 존재하지도 않는 아이의 행복을 위해서 아이를 가질수 있다고 주장하는 것이 직관적으로 이상하다고 느낄거임. 마찬가지로 내 입장에서는 존재하지도않는 아이의 고통을 피하기 위해서 아이를 갖지 말아야한다는 주장역시 설득력이 없다고 생각됨.
그리고 너말대로 현재 존재하는 존재가 존재하기 이전의 시점으로 자신의 의사를 소급하여 판단하였을때 쾌락의 부재는 나쁘다는 결론으로 이어질수 있지 않음?
먼저 비존재가 왜 절대적 비존재가 아닌 예비적 존재라는 것인지에 대해 설명하고 싶음 반출생에서 말하는 비존재란 존재하지 않음과 동시에 존재의 출산 행위에 의하여 언제든지 존재화 될 수 있는 상태임. 이 자리에는 없다하더라도 얼마든지 차후에 내 옆자리에 사람이든 동물이든지의 형태로 존재할 수 있게 된다는 것으로 존재의 입장에서 비존재의 입장을 고려할 여지가 없는 것이 아니고 미래에 존재할 가능성만으로도 절대적인 비존재는 개념상으로만 존재하는 것임. 즉 비존재에게 쾌락과 고통이 의미가 없은 맞으나 존재의 입장에서 비존재의 상태였을 때와의 비교를 논해야 함인 것이므로 비존재에게 쾌락과 고통이 효용이 없다는 이유로 비대칭성 논변이 파괴된다는 것은 틀린 주장이라 할 수 있음.
소급하여 판단하는 것에 대한 부분은 이따 점심시간에
다음으로 소급의사판단에 의한 결과는 비존재를 어떤 시각으로 바라보느냐에 따라 갈린다 할 수 있음. 보통 나는 이 부분에서 출생, 반출생주의자들의 의견이 충돌한다 보는데 반출생주의적 소급의사판단은 나 자신이 주체가 되어 소급하여 판단하는 것이 아닌 객관적인 시점에서 지구에서 어디에 스폰 될지 모르는 완전가변적 시점에서 해야한다는 것임. 즉 비존재인 상태(0)와 존재화된 상태(+-0)가 있다면 확정적으로 0인 상태가 +가 될지 -가 될지 모르는 상태에 놓인 것보다 낫다는 것이고 특히 비대칭성 논변에선 +가 될 가능성보다 -가 될 가능성에 대해 더욱 비중있게 바라본 것임.
더하여 너의 소급의사판단의 되물음 역시 나의 주장에 대한 반증이 될 수 있다. 그 판단의 결과로써 쾌락의 부재에 대해 나쁘지 않음이 나올 수도 있는 노릇이니까. 이에 따라 너가 본문에 상술한 혹자의 반박 부분의 내용에 따른 비대칭성 논변 파괴도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아니 다른 거 다 필요없고 ㅋㅋㅋ 그래서 태어난 아이의 고통과 죽음을 창조한 건 누구임? 아이가 잘못되면 누구의 책임?
아무런 철학적 배경지식이 없는 사람이 비문학 읽듯이 읽으니 이런 멍청한 소리를 하는 것.
그럼 넌 반박도 못하면서 뭔 얼마나 대단한 철학적 배경지식을 가지고있다고 ㅋㅋㅋㅋ
사실 철학은 도그마적인 측면이 많아서 세부적으로 파고들면 순환논리가 되어버리는 수가 있음. 논리보다는 확률론에 기반해서, 존재의 경우 생로병사의 고통은 절대적이라고 할 수 있음. 오래전 붓다도 알고있단 거고 그 어느 존재(인간, 동물)도 벗어난바가 없다는 것은 동의 하겠지
반면에 존재시의 쾌락은? 있다고 하더라도 생로병사급의 절대성을 가지는 건 없고, 현대 뇌과학적인 측면에서 보자면 쾌감은 호르몬의 작용이기에 시간이 지나면 사라지거나 내성이 생기는 경우가 많음(마약중독이라는것도 이거때문에 무서운 것이지) 따라서 존재의 고통과 쾌락은 절대성의 측면에서 비대칭적이다 라는 결론이 내려짐
고통의 부재가 안 나쁘면 예방 개념이란 게 필요 없음 일단 고통 쳐느끼고 치료하는 것만 의미 있고 이게 말이 됨? 그리고 동의 부재 문제의 연장선이라는 것도 이해해야 하고 비동일성 문제 해법도 제시해야 함 ㅇㅇ
비존재로 인한 쾌락의 부재가 나쁘다고 주장하는 사람이 있으면 어떻게 반박할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