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어나지 않는 것과 이미 태어난 자를 죽이는 건 별개의 문제라고 보는 건 알고 있음.
하지만 이미 태어난 자가 '본인도 모르게' 세상에서 사라진다면
이는 절대 폭력이 될 수 없음.
이유는, '본인도 모르게' 사라지게 된 사람은
본인이 사라지게 된 것에 대한 '불행'을 전혀 느끼지 못하기 때문임.
따라서 반출생주의가 옳다고 생각하고, 이에 동의한다면
버튼을 무조건 눌러야 함. (다만 누르는 사람이 불행을 느낄 수는 있음. 이게 걸린다면 지나가던 개가 실수로 밟았다고 생각하셈)
이를 만약 투표를 통해 결정한다면 그게 출생보다 더한 폭력임. (버튼의 존재를 알리는 것 자체가 '자신도 모르게' '무존재'로 돌아갈 수 있는 기회를 박탈하는 폭력적인 행위임.)
하지만 이미 태어난 자가 '본인도 모르게' 세상에서 사라진다면
이는 절대 폭력이 될 수 없음.
이유는, '본인도 모르게' 사라지게 된 사람은
본인이 사라지게 된 것에 대한 '불행'을 전혀 느끼지 못하기 때문임.
따라서 반출생주의가 옳다고 생각하고, 이에 동의한다면
버튼을 무조건 눌러야 함. (다만 누르는 사람이 불행을 느낄 수는 있음. 이게 걸린다면 지나가던 개가 실수로 밟았다고 생각하셈)
이를 만약 투표를 통해 결정한다면 그게 출생보다 더한 폭력임. (버튼의 존재를 알리는 것 자체가 '자신도 모르게' '무존재'로 돌아갈 수 있는 기회를 박탈하는 폭력적인 행위임.)
반출생주의는 안티휴먼이 아니다 누군가에게 살고자하는 의지가 존재한다면 본인이 알든 모르든 그 의지를 타의적으로 말살하는건 폭력이맞다. 철학은 계몽을 위한것이지 타인을 마음대로 조종하기 위해 내세우는 명분같은게 아니란말이다
고통과 불행을 수반하지 않는데 어떻게 폭력임? 반출생주의의 근본이 여기에 있는데?
고통과 불행을 수반하지 않으면서 앞으로의 모든 고통과 불행 또한 앗아가는 행위를 반출생주의 관점에서 폭력이라고 보는 건 말이 안 됨.
현실에서의 일반적인 죽음은 대부분 해악이 될 수 있는데, 만약 저 가상의 버튼이 눌렸는지도 모르게 찰나의 순간에 사라지게 된다면 절대로 해악이 될 수 없음.
사회적 통념으로 볼때 너가 말하는건 살인이다 그게 어떻게 폭력이 아니라고하는지.. 비출생주의의 근본은 사람을 죽이는게 아니라 출산을 반대하는거다. 왜? 라는 대답에 비존재의 이점을 설명할 뿐이지 사람들에게 비존재가 되어야한다고 강요하는 종교가 아니다. 너가 이야기하는건 자본주의에서 돈을위해 살인을 해도 괜찮다는 말과 같다
돈을 위해 살인하는 건 고통과 불행이 수반되는 일이고, 사회적 통념에서의 살인과 저 버튼을 눌러서 모두가 동시에 사라지는 건 절대로 동일선상에 놓일 수가 없을 뿐더러, 사회적 통념 운운한 김에 얘기하자면 반출생주의 자체가 아기를 낳아서 행복하게 길러야한다는 사회적 통념에 반하는 일임. 모든 사람이 아기를 낳지 않게 되면 사회는 붕괴하고 남은 사람들은
죽을 때까지 노동에 시달리다 죽어야 함.
내 질문의 의도를 이해 못한 것 같은데 다시 질문할게. 고통과 불행을 수반하지 않으면서 앞으로의 모든 고통과 불행 또한 앗아가는 행위를 어떻게 반출생주의를 지지하는 관점에서 폭력이라고 볼 수 있는 거임?
그리고 나는 버튼을 누름으로써 "고통과 불행을 단 0.00001%도 수반하지 않고 존재가 되는 것은 폭력적이지 않고 반출생주의 관점에서는 옳은 행위"라고 말하는 거지 지나가던 평범한 사람에게 "비존재가 되어라"라고 강요한 적이 없는데 왜 내 말을 왜곡하는 건지 이해가 안 되네.
중간에 오타. 존재 -> 비존재
요점은 개인의 선택에 맡겨야한다는거지. 반출생주의자라면 타의로 세상에 나오게된걸 탄식하는 입장인데 나의 의지로 누군가를 사라지게 한다는건 모순이라고 생각한다. 그게 이로운거라고 생각한다면 더 이상 대화는 서로에게 무의미할거같네
너가 버튼을 누름으로써 누군가는 스스로 의지와 무관하게 사리지기 때문이지.. 그게 강요가 아니라고 본다면 나로선 더 설명할 방법이없다
아니 버튼을 누르는 주체의 이기심(모든 선택은 개인의 이기심에 의한 것이라는 관점으로 봤을 때.)에 꽂히지 말고, 내가 말했잖아. 정 그러면 길 지나가던 개가 눌렀다고 생각하라고. 존재로서 불행한 이유는 생존본능으로 인해 계속 존재를 유지하려는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고통과 불행이 수반되기 때문인데, 이건 자의로 존재했든 타의로 존재했든 상관이 없는 문제임.
존재하는 것의 옳고 그름을 따지는데 자의와 타의가 끼어들 여지는 전혀 없음. 저 버튼을 누르는 행위도 마찬가지임. 내가 말하고 싶은 건 반출생주의를 옹호하면서 저 버튼을 누르는 걸 폭력이라고 부르는 건 말이 안 된다는 거임. 이걸 폭력이라고 부르고 싶으면 버튼을 누르는데 있어서 불행과 고통이 수반되지 않는데 도대체 어떤 이유로
반출생주의를 옹호하는 입장에서 저걸 폭력이라고 부를 수 있는 건지 제발 설명 좀 해주셈. 한 두세번 똑같은 말 했는데 아직도 질문에는 답 안 했음
그러면 이해하기 쉽게 질문을 바꿔볼게. 아무도 모르지만, 사실 10분 뒤에 이 우주 안의 모든 물질이 삭제될 예정임. 삭제되는 건 0초만에 일어나고 아무런 전조도 없음. 그럼 이 일은 폭력적인 일임?
만약 이 질문에 '예'라고 답한다면 난 더이상 얘기할 가치를 못 느낄 것 같음. 그런데 만약 '아니오'라고 답한다면, 다시 원래 버튼으로 돌아왔을 때, 저 버튼의 존재를 아무에게도 알리지 않고 누르는 사람은 이기적인 사람이 아니고, 오히려 혼자서 모든 고뇌와 고통을 짊어진 성인이라고 봐야 마땅하지.. 이걸 폭력이라고 부른다면 말이 안 되는 거야 (오타 수정
아마 알 거라고 생각되지만, 'anti'natalism라서 '反'출생주의다. 엄밀한 의미에서 非가 붙으면 출산 반대가 아니게 된다.
단순히 물리적으로 때리는 것만 폭력이 아니라, 강제적인 권력 행사, 즉 강요가 곧 폭력이다. 반출생주의의 근본은 심각하게 고려되어야 할 것으로 여겨지는 고통, 죽음, 죄악, 박탈 등의 "강요"가 잘못이라는 것이다. 만약 스스로 선택해서 태어날 수 있고 나쁜 상태를 경험하기를 원한다면, 그것을 강제로 막을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런 식으로 전체적인 고락 합산만 따지는 것은 공리주의의 영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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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불행해진다는 점이 이해가 안 됨. 일단 위에서 너무 공격적으로 얘기한 것 같은데 그 부분은 사과드리겠음 삶의 행복을 얻을 기회를 박탈당하는 건 맞지만 불행 또한 영원히 느끼지 않게 되는데 어떻게 더 불행해지는 거임? 행복이라는 게 애초에 무존재의 입장에선 "느낄 필요가 없는 것" 이라는 게 반출생주의의 핵심이지 않음? 같은 맥락으로 버튼을 누르는 순간 "느낄 필요가 없는 행복"을 앗아가게 되고 그와 동시에 "불행" 또한 앗아가게 되는데 어떻게 더 불행해지는 건지 이해가 안 됨. 그리고 행복이라는 건 주관의 영역이지 않음? 노예와 자유민이 똑같은 양의 행복과 똑같은 양의 불행을 느꼈으면 결국 두 사람이 느낀 행복/불행의 총합은 같은 거 아님? 아프리카에서 태어나도 행복한 사람이 있고 부잣집에서 태어나도
불행한 사람이 있는데 님은 "그래도 부잣집이 아프리카보단 행복하다" 라고 말하는 거 아님? 이건 잘못된 것 같은데? 가장 좋은 것은 버튼을 누름으로써 행복과 불행 모두를 앗아가는 것임. 내가 버튼을 누르는 것에 대한 인지를 얘기한 것은 해당 버튼을 누르는 사실을 앎에 있어서 누군가 실제로 "슬픔, 분노, 걱정"을 느끼고 "고뇌"를 하게 되기 때문에 인지를 하면 불행해질 수 있다는 의미로 얘기한 거임. 만약 버튼을 누르는 것에 대한 인지를 하지 않으면 그 과정에서 불행이 "전혀" 수반되지 않고 이후에는 행복의 양이 0이고 불행의 양이 0 이기 때문에 태어나기 이전의 무존재가 될 수 있는 거지.
정리하자면, 일단, 노예가 자유민보다 불행하다는 건 절대 동의할 수가 없음. 심지어 본인 스스로가 인지를 못하고 있다면, 절대로 불행한 것이 아님. 불행은, 인지를 통해서 실제로 뇌에서 호르몬이 분비되어 고통이나 슬픔 따위의 감정을 느꼈을 때만 불행이라는 것이 성립함. 출생이 도덕적이지 않은 이유는, 거의 99.9999%의 모든 사람들은 그러한 불행을 경험하게 되기 때문임. 그리고 반출생주의의 관점에서 행복이라는 것은 "굳이" 느낄 필요가 없는 것이기 때문에, 행복의 유무보다는 불행의 유무에 초점을 맞춰야 함. 그런면에서, 행불행의 인지가 없으면 불행 또한 느낄 수 없음. 뇌에서 호르몬이 분비되지 않으니까. 따라서 버튼을 누르게 되면, (심지어 그 사실조차 모른다면) 아무런 불행이 수반되지 않음.
따라서 반출생주의를 주장하는 사람은 저 버튼을 누르는 것이 도덕적인 행동이라고 봐야함. (저걸 실제로 누군가가 눌러야 하는지는 별개의 문제임. 누군가는 보편적으로 도덕적인 행동을 행하면서 "불행"을 느낄 수도 있기 때문임. 하지만, 저 버튼의 존재를 모르는 다른 모든 사람들에게는 해당되지 않음.)
행복과 불행이 뇌의 호르몬이 아닌 타인의 직관에 의해 정해진다는 건 동의할 수가 없음. 만약 고도로 발달한 외계인이 우리를 바라보면 지구에 있는 모든 인류는 상대적으로 불행함. 그러면 우리가 불행한 사람이 되는 건가? 일상적 직관을 가진 주체가 누구냐에 따라서 행복과 불행의 상태가 바뀌는 건 말이 안 된다고 생각함.
행복과 불행은 상대적이기 때문에 본인만이 정의내릴 수 있음. 통속의 뇌도 마찬가지임. 영화 메트릭스에서는 빨간약의 존재와 세상 진실을 알고서 빨간약을 선택하지만, 빨간약과 진실이 감춰져있는 세상에서는 그냥 평범한 일상이 계속될 뿐임. 지금 현실도 마찬가지임. 굳이 존재하지도 않는 빨간약을 상상하며 "사실 나는 엄청 불행한 사람이 아닐까?" 라고 걱정하는 건
아무런 의미가 없는 행동임.
노예나 통속의 뇌를 보고 불행하다고 느끼는 건 외부에서 바라봤을 때 뿐이며, 외부에서 바라봤을 때도 사실 불행하다고 생각하는 것 자체가 틀린 사고임. 설사 내가 통속의 뇌가 된다고 하더라도, 그 사실을 인지하지 못하면 나는 절대로 그 사실로 인해 불행해질 수 없음. 행복과 불행을 구분 지을 수 있는 것은 자신의 감각뿐임.
예를들어, 어떤 기독교 신자가 자신의 신념에 의해 죽을 듯이 공부해서 서울대 의대를 졸업한 뒤 아프리카 오지로 건너가 잠도 못자고 밥을 굶으면서도 그곳 사람들에게 평생 봉사하며 사는 의사를 생각해보셈.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은 본인은 그런 삶을 살아가고 싶지 않아함. 특히 종교를 믿지 않는 대다수의 사람은 절대 감히 그런 삶을 살 수 없을 것임.
근데 그렇다고 해서 과연 그가 불행한가? 분명 그의 삶은 객관적으로 봤을 때 고된 삶임이 분명함. 하지만 그는 종교를 믿고 있어서 그가 행하는 모든 봉사 활동을 하느님께서 바라보시고 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매일 뇌에서 도파민이 분비됨. 아무도 그를 불행한 사람으로 바라볼 수 없을 거임.
이 의사와 통속의 뇌와 노예는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음. 중요한 건 본인들 스스로는 행복을 느끼고 있다는 거임. 해골물을 마신 원효대사도 이 사실을 깨달았을 거임. 따라서 행복과 불행은 본인의 인지에 달렸으며, 저 버튼을 누르는 것은 아무런 불행의 인지를 유발하지 않으므로, 도덕적으로 옳은 행동임.
투표 역시 폭력일 수 있다는 말은 일리가 있다. 어떤 제도 절차든 누군가에게는 폭력일 수 있다. 그러나 그럼에도 그나마라도 있는 절차적 정의를 포기할 수도 없다. 우리에게는 당사자가 죽는 줄도 모르게, 마취 시키고 죽인다고 해서 살인이 아닌 것은 아니다라는 직관이 있다. 그것이 찰나의 착각처럼 보이더라도, 개인이 갖는 삶의 지속에 대한 선호, 그러한 의지를 일방적으로 묵살하고 대의를 강요하는 것은 불의다.
나 또한 과거에 비슷한 사고 실험을 해보았고, "비겁하게" 타인에게 선택의 책임을 떠넘기고 분산시키는 대신, "용감하게" 책임을 짊어지고 모두를 어떤 고통도 자각도 없이 무화시키는 것이 옳은 것은 아닌가 생각한 적은 있다. 그러나 그것은 결국 소극적 공리주의의 사고방식이며, 더 이상 희생 강요를 비판하기 어려워진다.
바로 위에 고닉 한명한테 댓글 달았는데 읽고나서 답변해줄 수 있음? 나는 여기서 폭력이나 강요, 불의 얘기가 나오는 것 자체가 이해가 안 되는데. 그리고 어제 댓글 달았던 내용인데 버튼 같은 건 없고 10분 뒤에 우주의 모든 것이 찰나의 순간이 삭제된다고 가정해보셈. 이때도 폭력이라는 말이 등장할 수 있음?
소극적 공리주의랑 다르게 저 버튼은 "누르는 자의 희생"을 제외하고선 아무도 그 과정과 결과로부터 "불행"을 겪지 않음. 따라서 폭력이라는 말이 등장할 수 없다고 생각함.
불시에 갑자기 모두가 사라진다면, 그건 고의로 모두가 사라지는 버튼을 누르는 것과는 다른 사안일 뿐이다. 이 때 결과는 같지 않느냐는 식의 사고방식이 바로 공리주의적 사고방식이다. 누군가가 너무나 불행해보인다 하여 자는 중에 완벽하게 마취하고 살인하는 것은 폭력이다. 이 역시 공리주의가 아니고서는 정당화하기 어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