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도덕 허무주의자, 쾌락주의자, 이기주의 및 자기중심주의자
이 경우에는 반출생주의를 이길 수 있음.
논리를 반박해서 이기는건 아니고 전제가 달라서 됨.
난 이런 경우를 존중해야한다고 생각함.
딱히 위선적이지도 모순적이지도 않음. 깔끔함.
2. 유신론자, 신비주의자, 종교 및 사후세계에 대한 믿음.
마찬가지로 반출생주의를 이길 수 있음.
물론 전제가 다르니 역시 두 주장은 평행선을 그림.
난 강한 결정론자이며 동시에 유물론자 및 강경한 무신론자이긴한데,
마찬가지로 존중해야한다고 생각함.
3. 공리주의자.
이 경우는 반출생주의를 논리로 이길 수 있음.
대신 공리주의 자체의 많은 논란과 문제점이 생김.
난 공리주의와 의무론을 고려했을때 반출생주의가 더 깔끔해서 반출생주의자임.
4. 마지막 세대에 가중될 고통.
실제 실현가능성과 별개로, 그래서, 한번에 모두가 출산을 그만둘 것인가? 점진적으로 멸종할 것인가? 아니면 하던대로 세상이 흘러갈 것인가?
종합적으로 고려했을때, 실제 실천을 고려했을때, 반출생주의자인 내가 내리는 결론은 개개인의 선에서 출산을 하지 않는다 정도인거 같음.
공리주의자가 반출생 어떻게이길수있는지 자세한설명좀 부탁
공리주의는 무한 쾌락 증대가 최우선 가치라서, 더 미래의 결과를 위해서 중간의 고통이나 희생과 상관 없이 일단 멸종은 막고 봐야 함
그래 그렇게 말하는게 낫다 같은 곳 보고 달리는 사람끼리 서로 상처주는 말 하지말자
존중은 이타주의인데, 이기주의를 존중하는 방법은 똑같이 이기주의적으로 상대하는 거임. 허무주의 존중하는 방법은 네 생각은 공허하고 무의미하다고 말해주는 거임 쾌락주의자는 사실상 공리주의자니 패스
다 상대적인 걸로 이해하자는 상대주의처럼 보이기도 하는데 이것도 똑같이 상대주의적으로 대하면 골 때림
본문 내용은 반출생주의가 특정 철학의 전제상의 차이 때문에 보편적으로 적용될 수 없는 이유를 설명하는 것임. 반출생주의의 전제는 딱히 보편적으로 인정될 수 있는 전제가 아님. 상대 철학이 어떠하다는 이유로 상대랑 똑같은 스탠스를 이용해서 상대 철학을 고꾸라트리려는 방식은 결국 자신의 철학이 더 타당하다는 근거가 되지 못함. 당장 고통의 부재가 좋다는 말도 가치관 차이고 나는 반대함. 그리고 고통의 부재가 가치중립적이면 반출생주의는 사상적 기반을 크게 잃어버린다는 점에서, 반출생주의는 전제에 상당히 의존적인데 이 전제가 다른 철학을 따르는 사람에게 반출생주의는 어떠한 어필도 할 수 없음.
그러니까 그렇게 전제를 부정하기 시작하면 지금 니가 말하는 생각도 전제를 부정하면 끝이고 수렁으로 빠지게 된다는 거임 비유하자면 메타인식이 끝판왕인 줄 착각하는 사람들 많은데 메타인식에 대한 메타인식을 피할 수 없다는 거임 상대주의 써먹으면서 그게 절대적인 것처럼 선취한다고
가치의 전제가 되는 공리, 직관를 그렇게 쉽게 부정하는 사람은 자기 생각도 똑같이 쉽게 부정당해도 할 말 없고 그냥 대화가 무의미함 물론 이런 말도 가치고 논리 과학 신봉도 다 가치인 건 맞음 근데 의미를 부여잡으려면 그렇게 간단한 방식으로 부정하면 안 됨 그건 그냥 반대를 위한 반대임
니가 고통 부재+쾌락 부재가 고통 존재+쾌락 존재 시나리오보다 낫다는 직관에 반대한다면 이 직관에 반하는 사례를 나열하면서 그것이 더 보편에 가깝다는 걸 밝히고 그에 맞는 그럴 듯한 직관을 대신 제시해야 함 아무튼 그건 아닐 수 있으니까 아니다 이건 무의미한 소리밖에 안 됨 니가 일상 생활에서 정말 위 직관에 전혀 기대지 않는다고 생각함?
담뱃갑 너는 정말로 고통-쾌락 비대칭성에 대해서 진지하게 검토를 하고 그게 니가 일상에서 따르는 준칙과 상반된다고 판단 내린 게 맞음? 저 비대칭성 기저에 깔려 있는, 일상에서 추출된 비대칭성들을 전부 억지스럽지 않고 말이 되게 대체 가능하거나 사람들의 명백한 착각일 뿐이라고 증명하고 나서 부정하는 거임? 그러면 니가 재재재재반박 논문을 쓰면 되겠네
가치에 대해서 다룰 때는 객관적 사실만 따지는 논리 구조 검사와 다르게, 이걸 반대하고 일상에 적용하면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생각을 충분히 하고 나서 말을 꺼내야 의미를 가지는 거임. 옳을 수도 있고 틀릴 수도 있다 그딴 말 모르는 사람 아무도 없음.
담뱃값님, 제가 말한 전제가 다르다는 말이 반출생주의의 전제가 보편적으로 인정될 수 있는 전제가 아니란 말은 아닙니다.. 그리고 103님의 말에 대해서는, 제가 존중이란 말을 상대주의적으로 해석됨에 할말은 없지만.. 제가 말한건 상대주의 보다는 결정론자의 무력함에서 한 말입니다..
전제를 부정한다고 해서 담론이 무의미해지지 않음. 객관적 사실로 관찰할 수 있는 '철학적 결론 끝의 실천'이 어떤 효용을 가지고 있는지를 비교함에 따라 상황에 따른 올바른 사상적 기반을 결정할 수 있음 무엇보다, 전제를 부정하기 시작하면 담론을 이어나갈 수 없다? 그렇다면 전제가 참일 경우 성립되는 모든 종류의 대립하는 철학들 역시 너는 긍정해 마땅함. 반출생주의 외의 모든 철학은 그렇지 않다는 말임? 우린 담론 속에서 전제가 부정될 경우를 언제나 예의주시해야만 함
글쓴이의 주제글(문제 제기)부터 여러분의 반박, 재반박까지 정말로 생각하는 힘이(철학의 기초가) 탄탄합니다. 굉장히 수준 높습니다. 내가 낮에 어떤 님의 주제글과 댓글에 쓰고자 했던 글 내용의 상당 부분이 이 주제글과 댓글에 들어 있습니다. 아직도 몸이 정상은 아니지만, 허락하신다면 막걸리 한잔(해장 겸 진통제) 하면서 내 나름의 비판적 의견을 개진해
보고자 합니다.
담뱃값님 뭔소리입니까
아빠 나 왜 낳았어?
전부 반출생을 반박 못하는데?
일단 몇 자 끄적여 놓고 술담배를 사올게요. 위의 댓글들에 이어서 대댓글을 다는 게 문맥상 매끄러울 텐데, 여러분 낱낱의 댓글이 장문이고 무엇보다 워낙에 정교하고 치열한 논쟁글이라서 칸을 멀리 띄워 여기서 제 의견을 전하는 게 예의 같습니다.
먼저 철학은 담론일 뿐이며 철학의 과정은 담론으로서 표출된다는 말에 일부 동의하지만, 전적으로 동의하기 어렵습니다. 우리사회의 담론화 작업이 사회과학적으로 유의미한가도 의문이고, 사회과학 자체를 객관적 지표로 삼을 수 있는가 하는 것도 의문입니다. 철학사적으로는 니체나 비트겐슈타인의 아포리즘이나 논고가 반철학이라고 불리기는 하나 그 역시 철학사의 한 갈래
이며 도리어 곁가지가 아닌 굵은 줄기에 해당하지요(사견입니다만 많은 전공자가 내 말에 동의할 거라 확신합니다). 잘 아시다시피 위 두 사람의 경우, 담론과는 거리가 먼 철학(또는
반철학)적 작업을 일생토록 하였지요. 위 두 사람 뿐이겠습니까. 베너타가 인용하는 루크레티우스도 싯구의 형태로 자신의ㅡ에피쿠로스주의적ㅡ쾌락설을 주창하지요. 거듭 아시다시피 아포리즘이라는 격언구는 담론의 장애물이지 결코 담론의 조건이 아닙니다. 더불어 그들 잠언가는 타인과의 소통을 전제로 말하고 있는 게 아니지요.
플라톤이 자신의 이념적 야심을 대화록이라는 형식으로서 잘 포장하였듯, 반대로 그들 잠언가는 일방적 훈계라는 초폭력적 언어 행위로서 타인의 각성을 희망했지요. 철학사가 이처럼 복잡다단하고 모순을 가득 내포하고 있습니다. 인간사 어디 철학 뿐이겠습니까만은.
일단 여기까지 하고 술담배를 좀 사오겠습니다. 내 오십평생의 경험상 생각함에 있어서(사색의 시간에서) 가장 큰 장애물은 육체적 고통입니다. 정신의 고통마저 즐기려는 이 위대한 목적의 장애가 실은 형이하적인 신체의 문제였다니.
*생각함'의 시간에 있어서'로 바룹니다.
쇼펜하우어는 건강을 행복의 1순위로 꼽았죠 건강하십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