뭐 크게 할 말은 없구요
예전부터 반출생주의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찾아봤고, 일단 반대하는 입장인데
정말 다양한 철학을 찾아보면서 느낀건 결국 이념이나 가치관이란건 자기 끌리는대로 믿는거라서
반출생주의도 논리적으로 타당하다고 생각합니다 전제에만 동의한다면 (난 전제에 동의하지 않아서 반대함)
그런 의미에서 념글이나 최근글 읽어보니 되게 건전하게 추구하는 사람들도 있어보이고 좋네요
그래도 여러분, 이것만 기억합시다
아무리 반출생주의가 타당하다고 한들, 어디까지나 반출생주의입니다
도덕적 목적을 위해 추구해야 할 가치관이지, 분노와 증오와 질투 같은 감정으로 대할 철학은 아님
앞으로 태어날 생명들이 태어나지 않는 것이 옳다는 철학이지, 내가 태어나지 않았어야 할 이유를 찾는 철학은 아님
태어난 이상 열심히 살아야해요. 잘 살아봅시다. 다들 파이팅
반출생주의는 태어난 삶을 부정하는 것이 아닌데요?
밑에 집단자살이 어쩌구 하는 애들도 보이길래.. 반출생주의가 변명이나 도피로 선택되기 쉬워서 그냥 사족 붙인거임
전제에 동의하지 않는다고 그렇게 쉽게 말을 꺼내는 것부터가 아카데믹 레벨로 안 읽어 봤을 가능성이 매우 높고 반출생주의나 전제에 대해서 오개념이 있을 가능성이 높음.
한 번쯤 위처럼 전제부터 부정하고 본 사람들 논문과 그에 대한 반박 논문을 읽어보길 권함
아니 그전에 실용윤리 개념부터 알고 들어가는 게 좋겠네 이거 읽어봐 이건 실천윤리라고 되어 있는데 같은 말이야
https://m.dcinside.com/board/nobirth/429
내가 반출생주의의 전제에 동의하지 않는 근본적인 이유는 마치 쾌락과 고통을 0과 1의 대립자로 구분하고 가치판단의 기준으로 삼았다는 것부터 있음. 인간은 수학적 사고실험의 모델이 아닌 실재하는 존재고, 복잡한 호르몬 체계에 지배받는 연속적 존재임. 애초에 전제는 굉장히 이상적인 상황을 가정하고 있기 때문에 실재하는 인간에게 적용되기 어려움. 당장 보편적인 심리학적 특징 중 하나인 항상성 유지 때문에라도, 인간은 쾌락을 강하게 느끼면 그만큼 불안감이 따라오고, 고통을 강하게 느끼면 이에 대한 보상으로 쾌감이 따라옴. 쾌락과 고통을 '경험과 기억'으로 한정지어도 여전히 문제가 많음. 경험과 기억은 왜곡됨. 따라서 대립자로 만드는 것부터가 불가능함.
존재와 비존재에 대한 담론 이전에, 애초에 쾌락과 고통을 대립자로 정하고, 존재와 비존재 사이의 무수한 쾌락과 고통의 종류를 그저 양적으로 비교한다는 점에서 지나치게 이상적이며, 현실을 제대로 반영하지도 못함. '그 외에 달리 출생에 대한 철학적 탐구가 뭐가 있단 거냐?'라는 변론은 아무런 가치가 없음. 현실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며, 제대로 적용될 수 없는 철학적 탐구는 달리 수단이 없어도 안 해도 됨. 반출생을 목적하기 때문에 반출생을 탐구하는 것이지, 출생에 대한 객관적이며 중립적인 탐구가 아니라는거임.
좀 더 첨언하자면, 근본적인 의미에서 그 인생을 책임질 수 없는 아이를 낳는 것은 정당한가?라는 논지는 굉장히 의미있다고 생각함. 난 고통과 쾌락에 대한 전제만 부정할 뿐임. 더 첨언하자면, 애초에 반출생주의에서 아이를 낳는 것이 정당한지 아닌지를 고통과 쾌락을 토대로 설계하는 것부터가 잘못이고, 순수하게 권리와 책임에 대해서만 따지는게 더 올바르다고 봄
반출생주의가 쾌락과 고통에 기반하여 정당성을 논하게 된다면, 쾌락이 더 많을 경우에는 어떤 방법으로라도 낳아도 된다는 논리로밖에 더 이어지지 않음 (반출생주의는 고전적이며 본질적인 출생에 대한 가치를 부정한다는 입장에서, 수많은 생명 윤리에 대한 본질적인 명제를 차용하기 힘들어짐. 가령 인공 배양은 잘못되었다던가)
일단 이상론이다 뭐 이런 식로 논점 흐리고 회피하면 안 돼. 현실주의도 현실주의라는 이상론이야. 그리고 그런 회피 방식으로는 그 회피 방식 자체도 회피 가능해. 니 잣대는 너무 이상적이고 너무 니 입맛대로 짜맞추기를 강요해. 베나타가 말한 프로크루스테스적으로. 보편직관을 기반으로 하는 반출생주의 이상으로.
대체 불확실하지 않은 개념이 뭔데? 그런 식으로 논점 흐리지 못할 주제가 대체 어딨는데? 철학은 그런 식으로 하는 게 아냐. 개념의 불확실성을 알면서 일단 폴더에 접어 넣고, 그 폴더들을 최대한 정리하는 게 철학이야. 특히 실용윤리는 더 그렇고.
베나타는 공리주의처럼 고통과 쾌락을 정량적으로 계산해보자는 게 아니야. 독이 들어간 우물물을 거르고 어쩌고 이 정도 양은 괜찮네 마네 그럴 거 없이, 애초에 마실 필요 자체가 없게 하라는 거야. 그리고 지금 니가 지적하려는 모든 불완전성, 부족, 결함 이런 것도 결국 그런 독이지. 너는 그런 결함도 사실 결함이란 보장 없다고 논점을 없애려 드는 거고.
물론 베나타식의 고통 쾌락 비대칭 모델이 꼭 필요하짘 않을 수 있어. 이런 고통 쾌락을 언급하는 것 자체가, 그리고 '심각한' 고통 모델이 결국 소극공리주의로 이어지는 통로를 제공하는 것 아니냐고 하는 사람도 있어. 어쩌면 그냥 동의 부재 문제로도 충분할 수도 있겠지. 근데 개념 자체를 트집잡는 건 자신을 포함한 모든 것을 공격하는 마검이라는 거야.
회의적인 말장난으로 문제가 끝나? 베나타는 쾌락이 고통을 완벽하게 상쇄하지 못한다고 말하고, 우리가 쾌락과 고통을 대하는 태도가 상이하다고 말하고, 그러니까 쾌락과 고통을 같이 존재시켜 강요하느니 그러지 않는 게 일관된 태도라는 거야. 그게 인간에게 가장 완벽한 안전 대책이라고. 왜 안 줘도 될 병부터 주고 약 주는 척하면서 생색내냐고.
아래 답글 보니까 내가 링크 단 실용윤리 글을 아예 안 읽은 것 같네. 무한 쾌락 배양 얘기나오는 거 보니 공리주의로 단단히 착각하고 있는 것 같고. 그렇게 고통 개념 트집 잡으면서 왜 무한 쾌락이란 게 인간에게 불가능하고 그런 존재는 이미 인간이 아닌 건 왜 몰라? 욕구감정을 기계적으로 조절하는 가상현실이 더 가망 있겠다. 왜 인간이 번식에 집착하는데?
비동일성 문제도 꼭 한 번 알아봤으면 좋겠다. 한 번만이라도 좋으니까 지금 니가 말하는 건 상대가 이미 고뇌해봤다고 가정해 봐. 미래 세대 입장을 고려해야 한다는 걸 인정하면 미래 세대를 안 낳는 게 최선이라는 걸 인정할 수밖에 없어. 세대이기주의 말고는 미래 세대를 만들 이유가 없다고. 고통도 쾌락일 수 있다는 말장난으로 너한테 고통을 강요하는 건 악이야
그런 논점 일탈로 고통 강요가 무마되는 게 아니라 어떤 식으로든 합의가 필요해. 그게 고통 쾌락 비대칭과 연결되는 거야. 지금 우리 논쟁도 사실 암묵적으로 합의돼서 고통 위험이 정당화되는 거야. 합의가 불가능한 상황인데 저지르려면 긴급구조처럼 조건이 필요해. 합의가 안 되면 고통 위험 강요를 하지 말아야 한다고. 쾌락과 섞였든 말든 위험 강요하지 말라고.
아빠! 나 왜 낳았어?
생명 탄생에는 이유가 존재하지 않음. '왜 낳았는가?'는 역사 속에서 끊임없이 논의된 이야기지만, 종교가 아닌 이상에야 애초에 이유가 없는 논의임. 내 주관적인 의견으로는, 출생에 이유가 있는 것이 더 해로움. 우주 만물의 탄생에는 이유가 없음. 우리가 출생에 이유를 찾는 것은 '이유가 있어야만 한다'는 믿음에 기반할 뿐, 이유가 존재해야할 마땅한 의무는 존재하지 않음.
이유를 찾는게 아니라 답은 이미 있고 추궁을 하는쪽에 더 가까운거임. 너 왜그랬어? 이런 느낌
반출생주의를 잘 못 이해한 것 같은데요? 쾌고의 정량적 판단은 비현실적이고 의미도 없는 게 맞지만 이건 존재 상태에 있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했을 때 이야기죠.
반출생주의에서 정의하는 비존재는 '현세대의 의지로 존재로 이끌어질 여지가 있는 상태' 를 뜻합니다. 님의 주장대로라면 우리가 미래세대에 관한 문제들(환경오염, 자원고갈)에 대해서 무엇을 논할 수 있을까요?
쾌고의 정량적 판단 자체가 쾌고가 분리될 수 있음을 전제로 하는데, 현실은 그렇지 않기에 (심리학적으로도, 뇌과학적으로도) 현실을 반영하지 않는다는 거임. 양적 논의는 이게 해결된 다음에야 다시 논의될 문제고, 애초에 쾌락과 고통을 대립자로 설정하는 것부터가 비현실적임. 미래세대에 대한 문제는 현실을 반영하므로(논리적이며 과학적이며 사실에 기반한 높은 가능성에 대한 논의) 반출생이랑 딱히 관계 없음
반출생주의는 비존재 상태가 존재보다 낫기에 낳아선 안된다는 것. 지극히 단순한 윤리관의 한 가지입니다ㅇㅇ
미래세대에 대한 문제는 현실을 반영한다고 말씀하셨는데 이 논리적 과학적 사실에 기반한 높은 가능성에 현세대가 자원을 낭비한다- 미래세대는 필연적으로 고통받는다- 현세대는 자원을 아껴야한다. 라는 추론은 없는 것인가요?
그래서 아끼잖음... 그게 반출생으로 연결될 이유가 있음? 반출생이 아니어도 자원을 아끼거나 자원 총량을 늘릴 방법은 무궁무진함 자원은 낭비보단 지구온난화가 진짜 문제고 자원 낭비는 현시점에 대단한 위협이 안 됨.
그리고 지구온난화든 뭐든 어떠한 종류의 미래사회의 잠재적 위협이라도 '반출생이 아니면 막을 수 없는' 예상되는 위협은 현재 단계에서 존재하지 않음. 제일 큰 위협인 지구온난화 역시 이를 막기 위해선 가파른 인구감소가 요구되는데, 막상 반출생주의의 쾌락 박탈을 막기 위한 핵심 방법이 점진적 인구 감소라는 점에서 채택불가함(즉 지구온난화 대책으로 반출생은 매력적이지 않음)
지구온난화 대책으로 반출생주의를 주장한 게 아닙니다. 고통과 쾌락은 0과 1로 구분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고 주장하셨죠? 현세대의 자원낭비-미래세대의 고통- 현세대는 자원을 아껴야한다 위 추론은 고통은 나쁘고 쾌락은 좋은 것을 전제로 합니다. 나의 의지로 출산- 아이는 존재로서 필연적으로 겪을 수 밖에 없는 고충을 겪음(고통)- 출산은 비윤리적인 행위 이 추론 역시 고통은 나쁜 것, 쾌락은 좋은 것을 전제로 했습니다. 근데 왜 전자는 '논리적이며 과학적이며 사실에 기반한 높은 가능성에 대한 논의' 로 후자는 '객관적이며 중립적인 탐구가 아니다' 로 취급하는지 이해가 안됩니다
오해하고 계신 것 같은데 반출생주의는 어떠한 사회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수단으로서, 사람들이 이를 신봉하는 게 아니라 그냥 '다른 사람을 때리지 말라'<- 이거랑 똑같은 지극히 단순한 도덕관념일 뿐이에요.
자원낭비 - 미래의 고통 - 자원 아껴야 한다 << 애초에 미래의 '고통'부터가 잘못 전제됨. 난 고통이라는 단어는 철저하게 감각으로서, 감각 주체인 인간으로 한정되어 사용되어야만 한다고 봄. 쾌락과 고통을 가치판단 상에서의 '좋음'과 '나쁨'의 동의어로 사용해선 안됨. 그러면 쾌고의 존재와 부재에 대한 가치 판단 자체가 뒤틀림 미래세대에 대한 비유는 이런 측면에서 애초에 반출생주의에 대한 적절한 비유가 아닌 듯? 자연스럽게 일어나는 논리적 연쇄가 동일하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던 것 같은데, 잠재적 위협에 대해 논의하는 것은 논리적으로 추론될 수 있음. 그러나 쾌락과 고통은 과학적으로 분리될 수 없는 개념이므로 대립자로 설정할 수 없기에 이를 전제한 반출생주의는 현실을 반영하지 못하였다는 것임
반출생주의는 존재와 비존재의 가치 비대칭성에 강하게 의존하는데, 이 비대칭성은 쾌락과 고통이 분리된 개념임을 전제함. 근본적인 전제가 현대 뇌과학과 심리학적 사실에 반하므로 반출생주의는 현실을 반영하지 못함.
가령 출산-필연적 고통-비윤리적 행위에서 필연적 고통은 마치 고통 그 자체로 존재하는 것처럼 보이나, 이는 사실이 아님. 그 필연적 고통과 함께 필연적 쾌락(인지하였든 그렇지 않든)은 동시에 발생함.
'쾌고의 존재와 부재에 대한 가치 판단 자체가 뒤틀림' 이 부분이 이해가 안되는 데 쉽게 예로 들어주실만한 거 없나요? 제가 저 사람을 때리면 저 사람은 고통스러워하지 쾌락을 느끼지는 않을 것 같거든요?
음 그러면 쾌락과 고통은 동시에 발산된다는 말씀이신가요? 예를 들어 부모님을 여의거나 복합부위통증 증후근 때문에 죽을만큼 아파도요?
ㅇㅇ 직관적으로 납득되지 않아도 그러함
그리고 위에도 적었지만 일단 반출생의 근거가 쾌락과 고통인 것부터가 비약적임. 기술적으로 '무한히 쾌락만 느끼는 아이'를 만들 수 있으면 인공배양해서라도 양적 확대를 하는 것이 윤리적으로 타당하다는 의견밖에 더 되나? 삶에 고통이 더 많으므로 반출생해 마땅하다면, 삶에 쾌락이 많을 경우엔 출생해 마땅해짐. 그 경우, 쾌락이 더 많은 삶은 선택이 아니라 의무가 됨. 고통의 삶이 반출생 의무와 연결되는 것과 마찬가지로. 애초에 출생의 기준으로 쾌락과 고통을 선택하는 것부터가 난 잘못되었다고 봄
그냥 도덕적 허무주의 같은데요? '고통스럽다고 생각해도 너는 사실 쾌락을 같이 느끼고 있고 쾌락을 느끼고 있다고 해도 그건 고통을 동반하고 있는 거야' 라면 책임을 물을 수 있는 게 없지 않아요?
그 외에도 딱히 보편적이진 않은 개인적 사견으로는.. 애당초 '필연적인' 것들은 가치판단에서 제외되 마땅하다고 생각함. 가령 인간이 팔을 퍼덕여 하늘을 날 수 없다는 것은 인간 삶의 고통이 아니라 당연한 것이며, 만약 어떤 인간이 이로 인해 고통받는다면 그 사람에게 그것이 당연함을 가르칠 일이지, 그런 사람이 존재한다는 이유로 '필연적인 것에서 고통받는 사람이 있기에 존재는 해악이다'는 결론으로 이어지는 것은 내게 어색한 명제임. 그렇게 가치판단을 할 수는 있겠지만... 그게 더 쉬워 보이지만, 우선 가치판단을 하기 위해선 바뀌지 않는 것들은 논외로 둬야 마땅한 것 아닌가? 필연적 고통이 존재함이 과연 출생의 가치판단 여부에 영향을 끼치는 것이 타당한가? 난 잘 모르겠음. 이건 진짜 개인적인 사견임
ㅇㅇ 난 그래서 도덕적 차원에서 보편적 기준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봄. 윤리적 차원에선 전혀 별개이므로, 사회는 여전히 법을 집행할 수 있음. 도덕적 차원에서 보편적 기준이 존재하지 않음에도 도덕이 존재할 수 있는 이유는 인간의 생물학적 한계에 의해 죄책감을 느끼기 때문임. 이러한 근거에 따라, 난 죄책감을 느끼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책임이 있다고 보지 않음. 책임은 도덕적 판단능력이 존재하는 사람에게만 해당되므로... 그러나, 그들이 도덕적 책임이 있냐 없냐와 무관하게 윤리적으로 책임을 물을 수는 있음.
그걸 빨리 말했으면 시간낭비 안 했을텐데ㅜㅜ 통일된 주제가 아니라 서로 자기 할 말한 하는 무의미한 글만 싸버렸네요 결국
아빠 병신이야?ㅋㅋㅋㅋㅋ 대답이 그게 뭐야 아빠 ㅋㅋㅋ
쾌락과 고통의 비대칭을 완전히 이해못하고있네 쾌락이 더 많아서 낳아도 된다는게 아니라 쾌락이 1억이고 고통이 1이여도 낳으면 안된다고 주장하는게 반출생주의임 즉 내가 너에게 당장 100만원을 지급해서 행복하게할 의무는 없지만 칼로찌르지않을 의무는 있음 - dc App
2. 늘 함께나타난다고 개념적으로 분리가 불가능한것은아님 n극과 s극처럼말이지 - dc App
태어난 이상 고통받을 수밖에 없고, 늙고, 병들고, 결국 죽을 수밖에 없는데, 아무리 즐거움과 쾌락, 좋은 것들이 있다 해도 생로병사는 막을 수 없고 이런 걸로는 상쇄될 수 없기에 차라리 존재하지 않았던 편이 낫다는 거지.
쾌락이 많다고 낳을 의무가 생기는게 아니라 고통 기계는 금지하고 쾌락기계는 선택의 여부이겠죠 - dc App
아니 ㅋㅋㅋ 삶의 쾌락과 고통의 비대칭성 문제가 아니라 당사자의 동의없이 생로병사의 고통과 죽음을 일방적으로 강제하는 것이 문제라구요 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