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통은 그 자체로는, 즉, 내재적으로는 나쁜 것이다.


다만 고통은 <도구적 가치>를 가질 수 있을 뿐이다. 


예를 들어 통증은 우리의 주의를 끌어서 병이 더 심각해지는 것을 미연에 방지하도록 유도할 수 있다. 


또한 운동이나 공부를 비롯한 노력과 인내에 따르는 고통은 그 이후 거대한 좋음으로 이어질 수 있다.


문제는 그런 식으로 '수단'으로 좋다는 점이 고통의 내재적 나쁨을 조금이라도 덜 나쁘게 만들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한 사람이 운동에 따르는 온갖 불쾌함과 귀찮음과 고통을 참으며 살을 빼서 건강 및 정신에 큰 이득을 얻었다고 해보자.


그가 얻은 신체적, 정신적 이득, 인생의 교훈, 기타 삶의 온갖 가치들이 그대로 유지된다고 가정하면, 그가 겪은 고통이 적어지면 적어질수록 그의 상황은 나아진다. 


이 점을 부정하는 것은 너무나 터무니없다.   


즉, 고통이 때때로 가져다 주는 인생의 여러 이득을 그러한 고통 없이 얻을 수 있다면, 어떠한 부작용 없이 그럴 수 있다면, 인간의 삶은 훨씬 더 좋을 것이다.


다시 말해, 우리는 논리적으로, 보편적으로, 합리적으로, 도덕철학적으로 <고통이 그 자체로는 나쁘다>는 사실을 부정할 수가 없다.


이는 한낱 개개인의 가치관에 달린 문제가 아니다.


베너타의 반출생주의는


내재적 나쁨이 태어나지 않음으로 인해 없게 되는 사태는 그게 있는 사태보다 더 나은 한편


내재적 좋음이 태어나지 않음으로 인해 없게 되는 사태는 그게 있는 사태보다 더 나쁘지 않기 때문에


태어나지 않는 게 태어나는 것보다 언제나 더 낫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