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나 렘키는 <도파민네이션>이라는 그의 책에서


"쾌락과 고통은 쌍둥이"라는 표현 하에


인간이 쾌락과 고통을 느끼는 메커니즘을


하나의 저울에서 왼쪽으로 기울어지면 쾌락이고 오른쪽으로 기울어지면 고통이라고 비유한다.


그리고 그 저울은 계속해서 평형을 유지하려고 하기 떄문에 쾌락이나 고통, 어느 한 쪽으로 오래 기울어져 있을 때마다


다시 수평으로 돌아가려는 강력한 자기 조정 메커니즘이 작동된다고 한다.


그럼 이러한 뇌과학적, 신경과학적 사실은


베너타의 반출생주의의 전제들과 충돌하는가?


전혀 그렇지 않다.


베너타는 고통 그 자체는 나쁘고, 쾌락 그 자체는 좋다는,


윤리학의 가장 근본적인 전제라 할 수 있는 그 명제를 받아들였을 뿐이다.


물론 <도파민네이션>의 저자도 당연히 그 전제를 받아들이고 있다.


그 책에 있는 그 저울의 비유는,


생리적 평형을 유지하려는 항상성 때문에 쾌락 또는 고통을 계속해서 경험하기 어렵다는 걸 보여줄 뿐이다.


예를 들어, 한 동물원에서 먼저 달콤한 바나나를 주면 다음에는 신 사과를 주고,


먼저 신 사과를 주면 다음에는 달콤한 바나나를 주는 배급 규칙에 따라 원숭이들에게 과일을 나눠준다고 할 때,


<바나나를 받는다고 마냥 좋은 게 아니다. 다음에는 맛없는 사과를 받을 테니까>라고 말한다고 해서


바나나 그 자체가 맛대가리가 없다는 말을 하는 건 아니다.


마찬가지로 <도파민네이션> 같은 뇌과학 교양서에서 인간이 쾌락 경험을 하는 게 마냥 좋은 게 아니라고 할 때에도


쾌락 경험 그 자체가 나쁘다는 말을 하는 게 아니다.


논리적으로 따져보면, <쾌락 경험 그 자체는 좋다>는 명제를 오히려 전제로 삼고 있기 때문에


그러한 좋은 것(쾌락 경험)이 장기적으로 보면 줄어들기 때문에 쾌락적 활동, 중독적 활동에 빠져 있지 말라는 말을 할 수 있는 것이다.


즉, 과학자, 철학자, 제정신이 박힌 사람 그 누구를 막론하고


<쾌락 그 자체는 좋고, 고통 그 자체는 나쁘다>는 명제는 받아들인다.



베너타의 반출생주의는 다음과 같다.


1. 인간은 태어나서 쾌락도 느끼고 고통도 느낀다.


2. 안 태어나면 쾌락도 없고 고통도 없다.


3. 안 태어나서 쾌락이 없는 것은 나쁜 일이 아니다.


4. 안 태어나서 고통이 없는 것은 좋은 일이다.


5. 안 태어나면 나쁜 일은 하나도 없고 좋은 일만 있다.


6. 따라서 안 태어나는 게 태어나는 것보다 언제나 더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