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리주의는 사회의 효용을 극대화하는 것을 목표로 삼는다.


여기서 문제는 한 행위의 인과적 연쇄는 무한하게 미래로 이어지기 때문에


한 행위의 결과에 대한 전체적인 효용 계산이 극히 어렵다는 것이다.


그럼 공리주의는 아래와 같은 궤변에 속수무책으로 당해야만 하는가?



미래는 무한하기 때문에 언젠가 인류가 멸종해도 다시 인류는 등장할 것이다.

또 다중우주론에 따르면 이 우주에서 인류가 멸종해도 다른 우주에서 인류는 존속할 수 있다.

따라서 한 사람이 아이를 낳지 않는 것은 부질없는 짓이다.



공리주의자들은 행위의 결과를


(1) 실제 결과


(2) 일어날 것이라고 이성적으로 기대할 수 있는 결과


두 종류로 구별하고,


(2) 일어날 것이라고 이성적으로 기대할 수 있는 결과에 근거해서 한 행위를 도덕적으로 평가한다.


또 다른 우주에서 인류가 계속 존속하든 말든, 멸종한 후에 인류가 재등장하든 말든


분명한 점은, 현재 내가 이 세계에서 하는 어떤 행위에 대해


그러한 다른 우주나 그러한 먼 미래에 미칠 영향을 이성적으로 계산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이성적으로 합리적으로 기대할 수 있는 결과인


한 사람의 생로병사의 고통을 100%로 없애는 반출산을 택해야 한다.


만약 그러한 도덕적 반출산 행위로 얻은 이득이


엄청나게 긴 천문학적 시간 관점에서 보면, 너무나 보잘것없어서 또는 미래에 거대한 비극과 인과적으로 연결될 수 있어서


의미가 없다고 주장한다면,


이는 도덕적 허무주의를 주장하는 것이며,


당장 그러한 주장을 하는 자를 잡아다가 재미로 고문을 하더라도 그는 도덕적으로 항변할 수가 없다.


우주가 무한히 큰데 네가 겪는 그 고통은 얼마나 보잘것없는 것이겠는가?


또 그러한 고문 행위가 아주 아주 먼 미래에 어떤 거대한 좋은 사건과 인과적으로 연결 안 될 거라는 보장은 또 어디 있겠는가?


즉, 그러한 궤변은 세상에 도덕이 없다고 주장하는 것에 불과한 것이다.


다음으로,


반출생주의를 깨달을 정도로 지각 있는 사람들은 오히려 아이를 낳아서


사회 내의 무식한 친출생주의적 사람들의 상대적 비율을 줄여서


사회를 반출생주의적으로 (또는 덜 친출생주의적으로) 만드는 데 기여해야 한다는


궤변에 대해서도 위와 마찬가지로 대응할 수 있다.


한 아이를 낳느냐 마느냐의 선택에 직면한 공리주의자가


내가 낳은 아이가 나와 마찬가지로 반출생주의를 깨닫는 지각 있는 성인으로 자라,


그러한 대의를 공유하는 충분한 수의 동지들과 함께 사회를 반출생주의적(또는 덜 친출생주의적)으로 바꾼다고


이성적으로 기대할 수는 없다.


그는 한 사람의 생로병사의 고통을 없애는 것이 확실한 반출산을 택해야 한다.







PS


물론 의무론을 따르면 위와 같은 고민을 할 필요가 없다.

공리주의가 가진 다른 수많은 난점들도 의무론에는 없다. 따라서 의무론이 옳은 도덕이론이지만,

여기서는 의무론이 왜 옳은지에 대해 설명하기보다는 공리주의 자체만으로도 저런 궤변을 물리칠 수 있음을 보여주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