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 태어났다면.
그런데 반출생주의 관련 글을 읽다보면
좋은 삶을 살 가능성이 일반적으로 높지 않다고 보기 때문에 태어나지 않는것을 우위에 두는 이들과
좋은 삶을 사는것 자체보다도 태어나지 않는 것을 우위에 두는 이들로 나뉘는 것처럼 보여.
전자는 상식적으로 이해가 가.
그런데 후자는 어째서 그런거야?
누구나 고통을 겪을 거야. 평생 행복만을 경험할 이는 없겠지.
그리고 행복으로 고통을 상쇄하지 못한다는 말도 받아들여봤어.
근데 그런 설명만으론 왠지 부족하더라구. 그래서 물어봄.
좋은 삶을 사는것 보다도 태어나지 않는 것을 우위에 두는 경우는 어째서야?
단순히 잘못 읽은걸까?
태어나지 않으면 '좋은 삶'자체가 필요없으니까
아무리 좋은 삶이라고 해도 늘 변수는 있기 마련이고 천만보 양보해서 좋은 삶이 유지된다고 해도... 안락사가 보편화되지 않는 이상 결국 늙으면 고통스럽게 죽을 수 밖에 없음... 그러니까 아무리 커다란 행복도 결국 극한의 고통 속에 죽음으로써 모두 박탈당한다는 거...
행복도 존재하기 때문에 필요한것이지 목마를때 물 한잔 마시면 정말 행복하지 하지만 그만큼 물 한잔의 행복을 위해 우리는 갈증이라는 본능적인 생존시스템을 유지해야만 해 좋은 집 좋은 직장을 갖기 위해 우린 인생을 갈아넣어야 하고... 과연 행복이 말 그대로 행복일까? 좋은 삶이 말 그대로 좋은 삶?일까?
이상적인 삶, 모든 부정적 요소가 없는 삶만이 존재한다면, 반출생주의는 필요 없을 것이다. 만약 이미 태어나서 무사무탈하게 사는 자가 보너스 개념으로 건강 수명을 더 부여받는다면, 그것은 상관 없을 것이다. 그러나 결국 말미의 추락, 박탈이라는 끝이 있다는 것이 애초에 태어나지 않는 것이 낫게 한다. 당장 노쇠하여 심신이 무너지고, 죽기 직전이 되었을 때 지나간 행복이 무슨 소용인가. 행복하면 할수록 더 죽기 싫고, 억지로 죽게 되는 것이다. 치매 올 나이까지 늙기 직전 잠자다 평온히 죽는다면 좀 나을까. 근데 그러거나 말거나, 삶을 시작시킬 근거는 되지 않는다. 100% 안전한 길 대신 그보다 덜 안전한 길을 택할 근거가 되지는 않는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