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부모 책임은 없다. 정자, 난자, 수정란이 자기 의지로 태어난 거다?


도덕은, 도덕적으로 행위할 수 있는 능력, 즉, 옳고 그름을 이해하고 옳은 행위를 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행위자들에 대하여 실천의 지침을 주는 것이다.


정자, 난자, 수정란에게는 옳고 그름을 이해하는 능력, 도덕적 실천의 능력이 없으며,


따라서 도덕적 책임을 질 수 있는 행위자가 아니다.


반면


일반적으로 부모는 이성적 주체로서


성관계와 출산 사이의 인과관계를 이해할 능력이 있으며, 출산 행위의 결과를 알 수 있는 능력이 있으며,


출산을 통해 타인에게 지대한 해악을 끼치는 것을 비교적 작은 노력으로 회피할 수 있는 실천의 능력이 있으므로,


출산을 하지 않을 도덕적 책임을 갖고 있다.


정자, 난자, 수정란이 지들 힘으로 움직인 것이기 때문에 부모에게 책임이 없다는 소리는,


독사를 남의 집에다 풀어서 독사가 타인을 물어 죽이게 한 사람이


<내가 그 사람을 문 게 아니라, 독사가 그 사람을 물었으니 나는 책임이 없다>라고 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굳이 독사를 남의 집에다 일부러 풀어서


성이 잔뜩 난 독사가 타인을 물어뜯기까지의 인과 연쇄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 범인이 살인자인 것과 마찬가지로


정자와 난자가 만나 수정이 되고, 사람이 태어나기까지의 인과 연쇄에 고의로 결정적인 역할을 한 부모가 그 탄생에 책임이 있는 것이다.




2. 자연주의적 오류


자연주의적 오류는, 사실 명제들에


부당한 규범 명제를 더해서


엉뚱한 규범적 결론을 내리는 것을 가리키는 말이다.


가령, 동물의 왕국에서


사자가 가젤을 잡아먹는 걸 보고는,


<힘 센 놈이 약한 놈을 강탈하고, 착취하고, 괴롭히는 게 도덕적으로 옳다!>라고 결론 내리는 게 자연주의적 오류다.


사자가 가젤을 잡아먹는다는 '사실'이 있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따위 규범적 결론을 내릴 필요는 없다.


그렇게 엉터리로 규범적 결론을 내리는 과정은 다음과 같다.


1. 사자가 가젤을 잡아먹는다.


2. 인간은 사자의 행동을 본받아야 한다.


3. 사자처럼 인간은 자신보다 약한 대상을 괴롭히고, 착취하고, 죽여야 한다.


위와 같이 <인간은 사자의 행동을 본받아야 한다>라는 엉터리 규범 명제가 끼어든 것이다.



반면


고통이 불쾌하다는 사실에서


그것이 나쁘다고 가치 평가를 내리는 과정은,



1. 고통은 불쾌한 경험이다.


2. 다른 사정이 없을 때, 인간이 불쾌한 경험을 피하는 것은 바람직하다.


3. 따라서 고통은 나쁜 것이다.



이 과정에서 쓰인 가치론적 명제는


다른 사정이 없을 때, 즉, 부작용이나 도구적 가치가 관련되지 않을 때,


<인간이 불쾌한 경험을 피하는 것은 바람직하다>는 것이다.


이것은 사자와 가젤의 예의 엉터리 규범 명제가 아니라,


너무나 당연하고 올바른 가치론적 명제다.


만약 누군가가 그러한 직관 자체를 정당화하는 또 다른 명제는 무엇이냐고 캐묻는다면,


수학의 공리 자체는 다른 명제로부터 연역되는 게 아니듯이,


그러한 직관 자체가 다른 어떤 명제로부터 연역되는 것은 아니지만,


그러한 직관과 다른 숙고된 도덕적 판단들과 원칙들을 가지고


정합적으로 구성한 도덕 체계가 성공적이기 때문에


도덕 체계라는 신념들의 그물망(web) 속에 그 직관이 깊숙히 자리잡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반면 <인간은 사자의 행동을 본받아야 한다>라는 명제를 가지고서는


어떠한 합당한 도덕 이론도 세울 수 없다.



인간의 모든 지식 체계는


어떤 확실한 명제로부터 다른 모든 명제가 연역되는 식으로 만들어지는 게 아니다.


사람들이 가장 확실하다고 생각하는 수학이나 과학도 마찬가지다.


콰인(W. V. Quine)이 말했듯이, 인간의 모든 지식 체계는,


잠정적 참(추후 다른 증거들과 상충하는 일이 벌어지면 언제든 폐기될 수 있는 명제들)의 지위를 지닌 신념들이 서로를 지지하는 그물망(web)이다.


콰인의 용어로 말하자면,


<쾌락은 가치론적으로 좋고, 고통은 가치론적으로 나쁘다>는 명제는


우리의 가치론적 신념들의 그물망의 가장 중심적인(central) 명제이기 때문에


만약 그것을 부정한다면, 그것이 지지하는 수없이 많은 다른 도덕적 판단들과 원칙들 또한 폐기해야 한다.


그래서 누군가가


<고통은 가치론적으로 나쁘지 않다>라는 소리를 했을 때,


네 말이 정말 맞는다면, 우리가 확실하다고 생각하는 수없이 많은 다른 도덕적 판단들


(ex. 타인에게 재미로 고통을 가하는 것은 잘못이다 등등등)이 수정되어야 하는데


그래도 네 주장을 고수할 수 있겠냐고 반문하는 것이다.





3. 피장파장의 오류


<피장파장의 오류>는 이런 것이다.


경찰이 와서,


<선생님 음주운전 하셨습니다>라고 했을 때,


<경찰관님, 당신은 살면서 잘못 하나 안 했습니까?>라고 따지는 것이다.


여기서는 처음의 문제


<당신이 음주운전을 하였다> 라는 쟁점에서 벗어나 딴소리를 하고 있는 거다.


그런데


<고통은 가치론적으로 나쁘지 않다>라고 주장하는 사람한테


<그렇다면, 너에게 고통을 가해도 너는 그게 나쁜 게 아니라고 해야겠네?>라고 따지는 것은,


<고통이 가치론적으로 나쁘지 않다>라는


그 사람의 주장을 받아들이면 어떤 불합리한 결론으로 귀결되는지를 보여주는 것이며,


쟁점 그 자체와 직접적으로 관련 있는 내용인 것이지,


<피장파장의 오류>가 아니다.


<피장파장의 오류>는 나의 어떤 잘못을 지적 받았을 때,


너도 이러저러한 잘못이 있지 않냐고 딴소리를 하는 거고,


지금은, <고통은 가치론적으로 나쁘지 않다>는 소리를 하는 사람한테,


<고통이 가치론적으로 나쁘지 않다는 명제를 받아들이면 이러저러한 이유로 올바른 도덕 체계를 세울 수가 없어>


<따라서 네 생각은 틀렸어. 고통은 가치론적으로 나빠> 라는 취지로 직접적으로 반박을 하고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