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반출생주의는


사람(또는 유정적 존재)을 존재케 하는 것이 도덕적으로 잘못된 행위라는


<주장, 견해, 이론>이다.


반출생주의(anti-natalism)에서 -주의(-ism)는


사회, 정치적 목적 따위를 위해 조직적이고 지속적으로 행하는 운동, 즉, 캠페인 따위를 의미하는 게 아니라,


그냥, <체계화된 이론, 학설>을 의미하는 거다.


베너타의 반출생주의 논증을 이해하면 출산이 타인에게 지대한 해악을 끼치는 행위임을 깨닫게 된다.


지금처럼 무분별하게 출산이 이뤄지고 있고 그러한 잘못된 행위를 반대하기는커녕 열심히 부추기고 있는 사회에서는


반출생주의를 가급적 많은 사람들에게 알리는 게 중요하다.









2. 반출생주의가 공리(보편적인 윤리관)로부터 도출되는 당연한 명제라는 말이 무슨 뜻인가?


그것은


<태어나지 않음으로 인해 좋음이 부재하는 사태는 태어나서 좋음이 존재하는 사태보다 나쁘지 않다> (도덕적 원리 1)


<태어나지 않음으로 인해 나쁨이 부재하는 사태는 태어나서 나쁨이 존재하는 사태보다 좋다> (도덕적 원리 2)


따라서 태어나지 않는 게 태어나는 것보다 항상 더 낫다는 것이다.


따라서 공리주의적 관점에서, 한 사람이 태어난 사태와 태어나지 않은 사태를 비교한다고 할 때,


한 사람이 자식을 낳고 이런저런 좋음들을 얻는다고 쳐도


(애초에 안 태어난 경우와 비교해) 그 한 사람의 삶의 전체적인 효용은 언제나 마이너스다.


따라서 어떤 삶이든 간에 삶의 효용은 무조건 마이너스로 계산되기 때문에


철저하게 공리주의적으로만 사고한다고 쳐도,


논리적으로,


인류가 어쨌든 간에 멸종되는 게 바람직하다는 결론이 나온다.


가령 지금 당장 인류가 일거에 출산을 하지 않아서 멸종된다고 할 때


당장에 발생하는 마이너스 효용이 엄청나게 크다고 해도


인류가 존속하는 경우, 각 세대 마다


항상 마이너스 효용만 더해지기 때문에


언젠가는 존속 세대들의 누적된 마이너스 효용이


멸종 세대의 그 큰 마이너스 효용을 능가하게 된다.


따라서 철저하게 공리주의적으로만 따져 봐도 인류는 멸종되는 게 바람직하다.


기존의 사람들을 위해 자손을 낳는 일을 되풀이하면서 효용 극대화를 추구한다는 발상은,


카드 돌려막기, 다단계, 피라미드, 폰지사기다.









3. 소수의 희생은 그로 인해 다수가 행복해지면 허용될 수 있다?


이러한 주장을 하는 자를 당장 잡아다가 해부를 해서 장기를 적출해


여러 사람들에게 그 장기를 이식해 다수를 살린다면


그는 그러한 장기 적출에 대해 도덕적으로 항변하지 않을 건가?


다른 사람들의 삶을 덜 나쁘게 만들기 위해


사람을 존재케함으로써 해악을 끼치는 것은


그 사람을 타인들의 목적을 위한 한낱 수단으로 취급하는 것이다.


브레이크가 고장난 전차를 막기 위해 옆에 서 있던 뚱뚱한 사람을 밀어 넣는 게 도덕적으로 허용이 되지 않듯이


다른 사람들의 삶을 더 좋게(또는 덜 나쁘게) 만들 목적으로 타인을 한낱 수단으로 삼아 태어나게 만들어서는 안 된다.

(한낱 수단으로 취급한다는 것에 대한 자세한 설명은 (이민열, 김도균, <헌법논증이론>, 한국방송통신대학교출판문화원 2021, 382-390면.)을 참고하라)



태어나지 않은 인간(잠재적 인간)은 태어나지 않을 도덕적 권리를 갖고 있으며,


우리는 그 인간을 태어나게 하지 않을 도덕적 의무를 갖고 있다.


얼핏 보면 이러한 말이 이상하게 보일 수 있으나,


심사숙고해보면, 우리는 그러한 도덕적 권리를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인간은 태어남으로써 커다란 피해를 입는다.


그리고 우리는 정당한 이유 없이 타인에게 큰 피해를 입혀서는 안 된다는 근본적인 도덕적 원칙을 갖고 있다.


만약 이를 인정하지 않고,


지금 존재하지도 않는, (잠재적) 사람에게는 '태어나지 않을 도덕적 권리' 따위가 있을 수 없다고 주장한다면,


우리는 오직 불에 타는 고통만 겪다가 죽는 인간을 만들어내는 기계를 작동시키는 게 도덕적 잘못이라고 할 수 없다.


그 기계를 작동시키지 않으면 그 누구도 태어나지 않기 때문에


'태어나지 않을 도덕적 권리'가 없다면,


그 기계를 작동시키는 것 자체(그러한 사람을 존재케 하는 것 자체)를 잘못이라고 할 수 없는 것이다.


따라서 (잠재적) 인간에게

태어나지 않을 도덕적 권리가 있을 수 있음을

그리고

우리에게 인간을 존재케 하지 않을 도덕적 의무가 있을 수 있음을

인정해야 한다.

이제 일반적인 인간의 삶을 생각해보면,

인간은 생로병사의 과정에서 모욕 당하고, 사고를 당하고, 좌절을 겪고, 수치심을 느끼고, 불편함을 느끼고, 외로움을 느끼고, 상실감을 느끼고

슬픔을 느끼고, 괴로움을 느끼고, 숱하게 고통을 받는다.

그리고 인간은 노화를 겪고, 병에 걸리거나 사고를 당하거나 자살을 해서 100% 죽는다.

그러한 다대한 해악을 겪을 위험을

매우 높은 확률(어떤 것은 100%)로 타인에게 부과하는 것을,

타인의 동의도 구하지 않은 상황에서,


그에게 (태어나지 않은 경우와 비교해) 어떠한 좋은 일도 생기지 않는 상황에서,


단지 다른 사람들에게 이득이 생긴다고 해서


정당화할 순 없다.









4. 공리주의자도 아이를 낳지 않아야 한다.


일반적인 사회에서, 아이를 낳느냐 마느냐의 선택에 직면한 공리주의자가


그 아이를 낳았을 때 생기는 마이너스 효용, 즉, 요로결석, 관절염, 왕따, 모욕, 수치심, 상실감, 우울증, 좌절, 치매, 뇌졸중, 마비, 배신, 기망, 박탈 등등을 겪을 위험 그리고 100%로 당하는 죽음의 그 어마어마한 마이너스 효용과,


그 아이가 태어남으로써 다른 사람들에게 생길 플러스 효용을 저울질해봤을 때, 도대체 어떻게 후자의 손을 들어줄 수 있는가?


아니, 과연 그 아이가 태어남으로써 적어도 타인들에게만큼은 플러스 효용이 생긴다는 것부터를 합리적으로 추정할 수 있을까?


그 아이는 환경 오염에 일조할 것이고, 부모에게 막대한 양육의 부담을 안길 것이며,


형제와는 다툴 것이며, 타인들에게는 왕따나 악플, 데이트 폭행, 교통사고의 가해자가 될 수 있다.


부모 및 주변 사람들의 기쁨과 기타 이득이 그러한 마이너스 효용을 능가한다고 과감히 가정한다고 쳐도,


그것이 그가 태어남으로써 생기는 그 자신의 생로병사의 막대한 마이너스 효용에 비할 바가 된다고 감히 주장할 수는 없다.


한 아이를 낳느냐 마느냐의 선택에 직면한 공리주의자가


농업, 교통, 병원, 치안, 소방 등의 사회 기반 시설을 유지하기 위한 최소한의 노동 인구를 유지한다는 목적에 의해


한 아이를 낳는 것을 정당화하는 경우도


현실적으로는 성립하기 매우 어려울 것이다.


그 한 명이 태어나고, 태어나지 않고가 그러한 인프라 유지에 유의미한 영향을 미친다고 합리적으로 추정하기는 매우 어렵기 때문이다.


다만,


<신실한 공리주의자들로 이루어진 사회> 또는 그러한 <신실한 공리주의자들이 다수를 차지하는 사회>에서.


철저한 계획 하에 이루어지는


<단계적 멸종>이라는 무슨 sf영화적 상상 속에서나 한번 생각해 봄직한 것이다.


다만 그러한 만화적 상상 속에서도 그 공리주의자는 다음 두 가지 난해한 문제들을 풀어야 하는데,


첫째, 일거에 모두가 반출산을 하는 것보다


단계적 반출산을 하는 경우에 어찌됐든 결과적으로 태어난 사람들의 수가 더 많을 텐데,


왜 전자의 마이너스 효용의 총합보다 후자의 마이너스 효용의 총합이 더 적다고 합리적으로 추정할 수 있는지 해명해야 한다.


둘째, 그 공리주의자는 한 사람의 신체를 비자발적으로 해부해서 장기를 적출해 다섯명을 살리는 행위나 브레이크가 고장난 전차를 멈추기 위해 그냥 옆에 서 있던 뚱뚱한 남자를 밀어서 그 몸으로 전차를 막는 일은 허용하지 않으면서도,


한편으로 이미 존재하는 사람들을 위해 태어나는 아이를 수단으로 삼는 행위는 허용하는 것일 텐데


둘 다 효용극대화를 위해 타인을 한낱 수단으로 취급하는 행위인데, 왜 전자는 허용하지 않으면서 후자는 허용하는지에 대해 일관성 있게 해명해야 할 것이다.


물론 의무론에 그러한 난점은 없다.


그리고 현재 공리주의자는 아이를 낳지 않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