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차피 할 것도 없고 시간도 많은 사람이라 궁금한 걸 질문 안 할 이유가 없기에 또 옴
맨 처음에는 좀 공격적으로 댓글을 달고 그랬는데 그 점은 후회중임. 그래서 이 글도 공격적으로 비춰진다면 어쩔 수 없을 듯.
일단 반출생주의라는 게 내가 생각했던 거랑 다른 사상이라는 것은 알았음.
(뭐 이건 '반출생주의' 라는 용어가 어떤 의미냐 라는 것이니까 더 이상 왈가왈부할 필요는 없을 듯)
근데 '버튼을 누르는 것'이 어째서 '소극적 공리주의'인지 의문이 생김.
일단, 나는 절대로 학살과 자살을 권장하지 않음.
왜냐하면, 학살과 자살을 포함한 대부분의 죽음은 일반적으로 고통을 동반하고, 주의 사람들에게 또한 영향을 끼치기 때문임.
(이 말을 왜 하냐면 소극적 공리주의는 학살과 자살을 권장한다는 말을 들었기 때문임.)
나는 또한 고통이 없는(=자의적으로 선택한) 자살일지라도 "권장"하지 않음.
왜냐하면,
자살한 사람 입장에서는 스스로의 행복을 위해 최선의 선택을 한 것이지만,
그로 인해 주위 사람들의 불행이 생겨나기 때문임.
따라서, 자살을 하든 말든 그건 알아서 할 문제지만, 구태여 권장을 하진 않는다는 거임.
(사실 주위 사람도 그가 최선의 선택을 했다는 것을 알면 슬퍼할 필요가 없긴 하지만, 이건 가치관에 따라 다를 듯. 그리고 상실감으로 인한 슬픔이 드는 건 어쩔 수 없는 본능이라고 생각함.)
내가 버튼을 누르는 것이 옳다고 생각한 이유는, 아무런 불행을 유발하지 않기 때문임. (누르는 이의 희생이 필요하다고 볼 수도 있지만, 그 또한 결국 자신이 원해서 누른 것이라면 본인 스스로는 불행한 것이 아니고, 이제 타인 또한 더이상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누르는 행위로 인해 고통받을 사람은 아무도 없음)
만약 버튼을 눌렀을 때, 어떤 무작위 사람 한명에게 "모기에게 물린 정도의 고통"이 0.0001초간 느껴진 뒤에 모든 사람이 사라진다고 가정하면,
나는 절대로 버튼을 누르는 행위를 "무조건" 옳다고 얘기하지 않을 거임.
왜냐? 그 "모기에게 물리는 듯한 0.0001초 간의 고통"이 "모두가 불행을 더 이상 느끼지 않게 되기 위해" "무조건" 감수해야 할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기 때문임.
불행의 크기가 0이 아닌 이상, 절대 양이나 질에 대해서 비교할 수 없음.
하지만 그런 고통이 없는 이상은, "무조건" 버튼을 눌러야 함이 마땅하다고 생각함.
솔직히 말해서 반출생주의든 공리주의든 뭐든 간에 이걸 옳지 않다고 볼 여지가 전혀 없다고 생각함.
이 버튼을 누르는 것을 부정하고 싶으면, 현대의 윤리관에서 도덕을 "보편적으로 도덕적으로 느껴진다고 보이는 행위가 도덕적이다" 라고 보는 시각 자체를 부정해야 된다고 생각함. (왜냐면, 아무리 봐도 저 버튼을 누르는 것이 기존 윤리관하고 충돌하는 부분이 없어 보이기 때문임.) 하지만 그렇게 되면, "모든 건 다 원자일 뿐이다" 처럼 의미 없는 결론이 나와버리게 됨. 따라서 이러한 반론은 의미가 없고.
반출생주의도 "출산이 과연 도덕적인가?" 라는 질문에 "보편적인 윤리관에 따라 봤을 때, 도덕적이지 않다" 라는 결론이 나온 것처럼 저 버튼을 누른 행위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함.
뭔가 두서없이 쓴 것 같은데, 그래서 궁금한 게 뭔지 정리해보겠음.
1. 버튼을 누르는 것이 왜 '소극적 공리주의'인지? 나에 대해서 오해를 해서 그렇게 표현한 건지?
2. 아~무리 백날 생각해봐도 버튼을 누르는 것에는 결점이 없다고 생각하는데 "반출생주의에서는 옳지 않다" 또는 "의무주의에서는 옳지 않다" 같은 형식적인 이유말고 진짜 저게 옳지 않다고 보는 개인적인(?) 이유가 뭔지 궁금함. (물론 개인적인 이유가 "나는 의무주의를 지지하므로 옳지않다고 생각한다"일 수는 있다고 생각함.)
참고로, "보편적인 윤리관" 에서 죽음은 나쁘다고 생각한다. 이런 의견은 잘못된 말이라고 생각함. 그건 그저 죽음에 대한 일반인들의 "선입견"에 불과함. 반출생주의에 거부감이 드는 이유도 "출산"이 행복하고 고귀한 일이라는 "선입견"에 부딪히기 때문임. 따라서 믿도 끝도 없이 "죽음은 일단 좋지 않다"고 보는 주장은 틀렸음.
출산이 "선입견"에도 불구하고 사실 태아에게 있어서는 좋지 않는 일이 되는 것처럼, 죽음도 "선입견"에 불구하고 죽은자에게는 결국 좋은일이 되는 거임.
그건 맞긴 함. 하지만 이 모든 건 모두가 암묵적으로 동의하는 현대의 윤리관 위에서 내려지는 결론임
그니까 "고통이 없는 것이 좋다" 라고 했을 때 죽음이 나쁜 이유는 보통 고통스럽기 때문인데, 버튼은 고통스러울 여지가 0임.
너가 쾌락, 행복, 선을 늘리는 것보다 고통, 불행, 악을 줄이는 것을 다뤘기 때문에 소극적 공리주의라고 한거겠지. 소극적 공리주의가 학살과 자살을 종용한다는건 오해야. 대게의 이즘은 시대 윤리의 틀안에서만 성립해. 소극적 공리주의는 학살이나 자살을 화두로 던졌을때 헛점을 드러내는것일 뿐이지 그것들을 권장하는건 아니지 싶어.
그리고 너는 버튼을 누르는 것에 결점이 없다고 했지. 본문을 보면 죽는 순간 고통이 없으므로 결점이 없다고 얘기하는것 같아. 하지만 인간은 일상을 살지. 일상 속에서 의식적 사고와 행위를 해. 그리고 그 의식을 붙잡고 살건 놓치고 살건 죽음을 피하려고 해. 고통은 죽는 순간만의 문제가 아니라 일상과의 모든 연결속에서 고려되야 한다는 얘기야. 사실 나도 잘 모르지만 떠오르는대로 적어봤어. 시간 때우는데 도움이 되면 좋겠네.
소극적 공리주의의 올바른 수행 방법 중 하나가 자살과 학살임을 부정하기 어렵다는 비판에 대해서, 그것은 "순진한" 해석일 뿐이라는 소극적 공리주의의 반론으로 보인다.
윤리관은 인접한 윤리관으로 연계되기 쉽기 때문에, 반출생주의자도 소극적 공리주의나 친죽음주의 등으로 해석될 수 있는 가능성에 대해서 어느 정도 해명이 요구되고, 소극적 공리주의나 친죽음주의 역시 제기되는 자살 등의 문제에 대해서 나름의 해명이 필요할 것.
고락의 결과만을 중요한 것으로 생각하는 것은 공리주의적이라고 할 수 있다. 고통이나 공포가 전무한, 순수한 이른 죽음 강제는 그 자체로는 문제가 없다고 생각하는 이유는 고락의 결과에만 집중하기 때문일 것이다. 따라서 이는 공리주의적이다. 그런데, 만약 더 큰 고통을 막기 위해 더 작은 고통을 감수해선 안 된다고 생각한다면, 결과적 효용 외에 그러한 의무를 주장하며 따르는 것으로 보고 의무주의적이라고 볼 수도 있고, 공리주의에서의 극단적 규칙 변형으로 볼 수도 있을 것이다.
왜 이른 죽음 강요가 옳지 않은가. 합의가 없다면 의무주의적으로 옳지 않고, 의무를 넘어선 영역이기 때문이다. 이것은 메타적으로 접근하면 네 말대로 "나는 의무주의가 옳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그렇다"라고 할 수 있다. 규범윤리에 대해서 메타적으로 접근해서, 꼭 그것이 옳다는 보장이 있느냐고, 가치 상대주의, 가치 허무주의적인 방식으로 가치를 부정한다면, 모든 윤리적 주장은 상대적이거나 무의미하고, 네 주장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의무주의와 공리주의가 공존하는 것은, 서로의 가치가 대립하여 평행선을 그리기 때문이며, 네가 확고하게 이른 죽음 강제를 옳다고 믿는 친죽음주의자 또는 소극적 공리주의자라면, 서로 설득할 방법은 없다. 본디 가치 논쟁은 직관 논쟁이라서, 서로가 지지하는 직관이 완전히 상이하다면 그 부분은 영원히 해결할 수 없게 된다.
소극적 공리주의자는 아닌 친죽음주의자라면, 해당 글을 참고 바란다.
https://m.dcinside.com/board/nobirth/175
위 링크의 글을 읽고도, 죽음이 갖는 박탈주의적 위험을 가뿐히 무시하겠다면, 그것이 네 신념이니 더 이상 어쩔 도리는 없을 것이다. 의견차와 별개로, 선의로 더 옳은 길을 찾기 위해 궁리하는 모습은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 논제 제시에 부담을 가질 필요는 없어 보인다.
ㅇㅋ 이제 좀 이해의 윤곽이 잡히는 것 같음. 일단 내가 님이 의무주의니 뭐니 하는 말이 이해가 안 됐던 게 내가 허무주의적인 사고방식을 가져서 그런 것 같기도 함. (왜냐면 나는 버튼을 누르는 자의 의도에 대해선 전혀 고려하지 않음. (고려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함)) 이제 님의 입장은 어떤가를 생각해보면, 여기서 "의도를 고려하지 않는다" 라는 것 자체가 결국 "모든 것은 원자 활동이다" 로 귀결될 수밖에 없으니 (좀 비약이 심하긴 한데 뉘앙스만 이해해줬으면 함.)
강한 결정론자(양립불가론자)는 공리주의가 끌리기 쉬울 것이다.
사람들의 계몽을 목적으로 하는 (결국 실익을 따지게 되는) 반출생주의 (애초에 "반출생주의"라는 것 자체가 "출생을 콕 찝어서" 얘기하는만큼, "출산도 사실 비도덕적이다" 라는 사실을 "실제로" 널리 알리기 위한 주의라는 것으로 보임)를 지지하는 입장에서는 이런 방식 (버튼을 눌러서 모든 것을 해결하는 방식)을 별로 환영하지 않는 것 같은데,
내 생각이 맞음? 그니까 결국 반출생주의 라는 건 철학자의 머릿속 사고실험에서나 존재하는 허무주의 같은 것이 아니고 "실제로 출산의 비도덕성을 알리고 출산을 줄여나가기 위한 운동" 에 가까운 것 같은데 내가 이해한 게 맞음?
실천윤리(응용윤리)를 추구함은 맞는다.
https://m.dcinside.com/board/nobirth/429
ㅇㅋ 이제 거의 이해가 된 것 같음. 그럼 진짜 마지막으로 질문함. "출산이 비도덕적이다" 이건 사실 기존의 윤리관을 벗어난 뭔가 새로운 명제가 아님. 오히려 기존의 윤리관을 충실히 따랐을 때 나온 결론임. 하지만, 님의 말대로라면 "버튼을 눌리는 것이 옳다" 이 명제는 기존의 (의무주의적) 윤리관과 충돌한다는 거지? 그렇다면, 만약 나같은 사람들이 많아져서 "버튼이 눌리는 것이 옳다" 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아지면 이 명제가 옳게 될 수도 있는 거임?
"수가 많다고 해서 옳은 것이 되는 건 아니다" 라고 말할 수는 없는 게, "사람을 때려도 된다" 이런 명제는 주장하는 사람이 늘어나도 영원히 옳지 않은 명제인 것처럼 보이지만, 저 버튼을 누르는 건 아무론 고통을 유발하지 않기 때문에 "버튼이 눌리는 것은 옳다" 이 명제는 주장하는 사람이 늘어날 수록 옳은 명제가 되는 것처럼 보임.
아 근데 결과적으로 남의 생명을 그 사람의 의도와는 다르게 강제로 앗아가게 된다는 점에서 님이 말한 의무주의에 결국 어긋나네. ㅇㅋ 이건 답변 안해도 될 것같음. 궁금한 건 다 해결된 것 같다.
의도와는 다르게 -> 의사와 무관하게
아.. 근데 한마디만 더 물어보겠음. 그렇다면, 모두가 이 명제에 동의하면 결국 의무주의적으로도 옳은 명제가 되는 거임?
여기서 내가 하고 싶은 말은, "칼에 찔리는 고통을 느껴야 한다" 라는 명제 또한 모두가 동의하면 옳은 명제가 되겠지, 하지만 이건 현실에서 절대로 모두가 동의할 수가 없음. 아무리 설득해도, 인간의 본능상 칼에 찔리는 고통은 너무 극심하기 때문에 회피할 수밖에 없음. 하지만, "버튼이 눌리는 것은 옳다" 라는 명제는 모두가 동의할만 한 명제라고 봄. 실제로 나도 그렇고, 애초에 버튼글을 최초에 올린 건 내가 아니기 때문에 나 말고도 이 명제에 동의하는 사람이 맞음.
반출생주의는 도덕적으로 안전한 경로만을 따른 도착점이다. 애초에 태어나지 않으면 무언가 "박탈"될 일 자체가 없으므로, 완벽하게 안전해 보인다. 그런데 이미 태어난 자의 이른 죽음 강제라는 지점은, 정말 아무 것도 "박탈"되지 않는 것인지, 도덕적으로 안전한 지점인지 상대적으로 불확실하다. 따라서 의사를 존중하는 최소한의 합의 절차를 밟는 것이 안전하다. 비록 그것이 나름의 고통을 유발할지라도, 우리가 이미 태어나서 계약주의적 정의를 따르며 일상을 살아가는 한, 허용되는 고통이고, 그것이 도덕적으로 안전하다. 만약 무화 버튼 누르기가 일상에서의 차량 이용처럼 계약주의적 동의, 묵시적 동의를 얻는 수준에 이른다면, 비로소 무화 버튼 누르기가 정당화될 것이다.
그니까 나는 결국 "버튼이 눌리는 것이 옳다" 라는 명제에 동의하지 않을 만한 이유가 없다고 생각하고, 이는 곧 이 명제가 "모두가 동의할 수 있는" 명제라는 결과를 도출해낸다고 생각함. (왜냐하면 동의하든 안 하든, 상관이 없기 때문이다. 버튼이 눌러진다는 사실조차 모르는데 후회할 사람이 있을까? ) 따라서, 이 명제는 모두가 동의하는(동의하지 않을 이유가 없으니, 결과적으로는 동의한 것으로 간주해도 될 것 같음) 명제라고 생각하는데, 이러면 의무주의와도 충돌하지 않게 되는 게 아닌지?
내 말이 옳다고 보는 이유는, "출산이 비도덕적이다" 이 명제도 사실 일반인들은 거부하지만 사실은 그들 스스로도 현대적 윤리관을 받아들이고 있는 이상 이 명제에 동의하게 되는 거임. (즉, 내가 실제로 명제를 보고 동의하지 않는다고 말하는 것과는 다르게, 사실은 동의를 하고 있다는 거지. ) 그런 것처럼 "버튼이 눌리는 것이 옳다" 라는 것도 언뜻 보기에는 거부감이 드는 명제이지만 내가 말한 일련의 논리들에 의해 따라서 모두가 사실은 "버튼이 눌리는 것이 옳다"에 동의하고 있다고 간주하는 것은 옳음.
반출생주의도 그 수가 적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의견(출산 반대)를 관철시키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 정당하다고 생각하는 것처럼, 버튼 누르기도 그 수가 적음에도 불구하고 "버튼이 눌리는 것이 옳다"라는 의견을 관철시키는 것은 정당함.
무화 버튼에 동의하는 게 대부분일 거라고 생각하는 것이 과연 정당한 해석일까? 어차피 버튼 누르면 감각도 의식도 사라지니까 고려할 필요가 없을 거라는 사고는, 죽으면 다 끝이니 징징대는 놈들은 자살하면(자살시키면) 그만이라는 사고처럼 도덕적으로 위험해 보인다. 소극적 공리주의나 친죽음주의를 경계하는 이유다.
반출생주의자는 출산 금지를 시킬 수 있는 막강한 힘을 가지게 되더라도, 절차적 정의를 준수해서, 자발적이고 점진적인 멸종을 추구해야 한다. 단지 갑갑하고 피곤한 정의의 굴레를 벗고자, 효용을 위해 편의적으로 해석하기 시작하면, 출생주의도 자멸을 앞당기는 의미에서 얼마든지 정당화할 수 있고, 그깟 고통 좀 감수하더라도 대의를 위해 학살하는 것 역시 얼마든지 정당화 가능할 것이다.
그니까 현실적인 관점에서 봤을 때 버튼은 대중의 오해를 살만한 여지가 좀 많아서 도덕적으로 위험하다고 보는 거지? 그 점이 출산과 버튼의 차이점 같네. 출산은 하지 말자고 설득했을 때 예상되는 부작용이 없어 보이지만 (꼭 없다는 건 아님) 버튼은 잘못 받아들이면 이 논리가 학살 등을 정당화하는데 오용될 가능성이 높다는 건가. 하지만 충분히 이성적인 사람들만 존재하는 사회에선 이러한 위험이 생기지 않으리라 생각하고, 이 때에는 결국 사람들이 "출산은 비도덕적이다" 라는 명제에도 흔쾌히 동의하고, "버튼이 눌리는 것이 옳다" 라는 명제에도 흔쾌히 동의할 것이라고 믿음. 또한 의무주의에도 어긋나지 않게 된다고 생각한다.
아무리 몽매한 우민이 갖는 맹목적 집착으로 보이더라도, 그냥 무시하고 강행했을 때 좋은 결과가 예상되더라도, 최소한의 절차도 없이 독단적, 엘리트주의적으로 의사를 완전히 무시하고 진행하는 것은 불의라는 것이다.
ㅇㅇ 그건 맞음. 그 부분이 의무주의와 충돌하는 부분이라는 것도 이해함. 다만 나는 이제 의무주의와 충돌하지 위한 조건이 뭘까? 를 생각해봤을때 저 "버튼이 아무도 모르게 눌리는 것은 옳다" 라는 명제를 모두 이해하게 되면, 더 이상 그 버튼을 누르는 건 누군가의 독단이 아닌 모두의 암묵적인 동의가 되므로 더 이상 의무주의와 충돌하지 않게된다는 결론을 얻음.
그런데? 실은 이 명제에 동의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는 것이 내 의견임. 출산 반대는 오히려, 동의하지 않을 이유가 많음. 왜냐하면, 태아에게 있어서는 안 좋은 일이지만, 출산은 부모에게 있어서는 좋은 일이기 때문임. (강제로 임신한 것이 아닌 이상 부모의 선택으로 낳은 것이기 때문에) 따라서 이기적인 사람의 경우에는 "출산이 비도덕적이다" 라는 명제를 이해해도 결국에는 출산을 선택하게 될 수 있음. 하지만 "버튼이 아무도 모르게 눌리는 것이 옳다" 라는 명제는, 만약 이 명제를 이해한 경우에는 다른 선택을 할 이유가 전혀 없다고 봄. 그런 의미에서 오히려
대부분의 사람을 일종의 제한능력자로 취급하고, 존재 중단에 관한 중대한 의사 결정 상황에서 최소한의 여지도 주지 않은 채 배제할 것인가? 그것을 결과주의, 공리주의적으로 정당화할 수는 있어도, 의무주의로 정당화하는 것은 사이비라고 밖에 할 말이 없다.
반출생주의보다 의무주의와 덜 충돌하는 것 같음.
왜냐면, 다른 선택을 한다는 것 자체가 이 명제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것으로 보이기 때문임. 다른 선택이라는 게, "버튼이 눌리는 것은 옳지 않다" 라는 것인데, 이건 "버튼이 눌리는 것이 옳다" 라는 명제를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에 일어난 일임. 따라서 출산은, 명제를 이해하더라도 다른 선택을 내릴 여지가 있지만, (왜냐하면 모든 사람이 도덕적인 것은 아니기 때문) "버튼이 눌리는 것이 옳다" 라는 명제는, 이것을 이해한다는 것은 곧 "버튼이 눌리는 것은 나에게 좋은 일이다" 라는 것을 받아들이는 것이기 때문에, 다르게 행동할 여지가 없음.
3가지 종류로 나눠보자면, "출산은 비도덕적이다" -> 맞지만, 이해함과 이를 실천함은 다른 문제임. "누군가에게 100만원을 준다" -> 틀림. 100만원을 받아도 불행할 일말의 가능성이 존재함. "버튼이 아무도 모르게 눌리는 것이 옳다" -> 맞음. 또한 이를 이해한다면, 곧 이를 실천하는 것에도 동의함을 의미함.
물론, "버튼이 눌리는 것이 옳다" 라는 명제는 의무주의를 고려했을 때, 모두가 이에 동의해야 옳은 명제기 때문에, 그렇다면 결국 순환논리에 빠지게 되는 것처럼 보일 수 있음. 하지만 나는 결국 모두가 이에 동의하게 될 것이라고 믿음. 만약 이를 "더이상 아무도 불행과 행복을 느끼지 않게 된다" 로 치환한다면? "태어나지 않는 것이 좋다" 와 비슷하게 받아들일 수 있지 않을까 싶은데.
사람인 이상 낙관주의나 염세주의 어느 한 쪽 일색일 수는 없으며, 마찬가지로 의무주의나 공리주의 어느 한 쪽만 도덕적 방법론으로 택한다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계약주의 역시 그러하다.) 그리고 네 생각에 너는 의무주의보다는 공리주의 쪽으로 치중된 것으로 보인다. 그럼에도 공리주의에 대해 거부감이 있는 것인지, 그것을 부정하려는 것처럼 느껴진다. 지난 번에 이미 말했지만, 버튼을 직접 누른다 안 누른다와, 버튼이 자동으로 눌린다 안 눌린다(그냥 어느 날 갑자기 사라진다)는 전혀 다른 사안이다. 그것을 자꾸 같은 것으로 치부하려는 것은 공리주의적 접근법이라고밖에 생각되지 않는다.
일단 버튼이 눌리는 것은 "아무도 모를 때"만이 의미가 있음. 이런 나조차도, 10분뒤 세상이 사라진다고 하면, 당장 가족의 얼굴을 조금이라도 더 눈에 담기 위해 노력할 거임. (10분뒤면 어차피 후회도 없게 된다는 것을 알고 있을지언정, 인간의 본능 상 고통스러울 수밖에 없음.) 즉, 이 명제에 동의하더라도, 버튼의 존재를 몰라야한다는 거임.
아, 위의 말은 적다보니 좀 이상한 것 같아서 취소하고 다른 댓글을 적겠음. "지구로부터 100억 광년 떨어져 있는 별이 사라지는 버튼을 누르는 것은 옳다" 이 명제에 대해서는, 우연히 눌리든 누군가 눌리든 의무주의고 공리주의고 끼어들 여지가 없음. 이에 대해선 동의하지?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은, 위에서 말한 모든 것들을 종합했을 때, 별이 사라지는 버튼이나 모두가 사라지는 버튼이나, 그냥 행해져도 "아무런" 부작용을 야기하지 않는다는 거임. 행동의 의도가 중요해지는 것은 그 의도가 알려졌을 때만 의미가 있음.
예를 들어 연예인이 선한 마음으로 기부를 해서 칭찬을 받았는데, 그가 "사실은, 가난한 사람들이 돈을 얻으면, 돈의 맛을 알게 되어 돈이라면 뭐든지 하는 나쁜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마음에 기부를 했습니다" 라고 말하기 전까지는, 아무도 그의 기부를 욕할 수 없고, 이런 가능성에 대해 논하는 것도 아무런 의미가 없음. 문제가 되는 것은, 연예인이 저 말을 입밖으로 꺼냈을 뿐이고, 의무주의고 공리주의가 끼어들 수 있는 것은 이때 뿐임.
다시 버튼으로 돌아와서, 버튼을 누르는 그 사람이 "사람들 다 꼴뵈기 싫으니까 없애버려야지" 라는 의도로 눌렀을 수도 있고, 아니면 윤리관에 입각하여 "고통을 0으로 만드는 방법이니 행해야겠다" 라는 의도로 눌렀을 수도 있음. 하지만 그 의도가 중요해지는 것은, 그 의도가 밝혀졌을 때 뿐임. 버튼이 눌린 순간 그 의도를 밝힐 주체도 없고, 밝혀진다 하더라도 그것을 알게 될 주체도 더이상 없음. 따라서, 내가 봤을 때는 저 버튼의 경우에는, 결국 결과만을 보고 판단할 수밖에 없다는 거임. 그런 의미에서, 앞서 말했듯이 "아무도 모르게 버튼이 눌린다"는 "연예인이 기부를 했다" 와 같이 누구나 기대할만한 결과이고, 그것이 행해지는 건 옳다라는 입장이 나옴
일단 별로 든 비유도 그냥 취소할게. 쓰고 보니 어차피 주제에서 좀 벗어난 비유같네.
다만 별 예시를 통해 전하고 싶었던 건 "버튼을 누르는 것"도, 사실 나쁜 마음을 먹고 별을 없애는 게 아무런 상관이 없는 것처럼, "버튼을 누른 의도" 또한 마찬가지라는 거임. 그에 대해선 위의 댓글에서 설명했고.
이미 태어난 자의 수명 박탈, 행복 박탈은 반출생주의의 영역을 벗어난 것으로 보인다. 우리가 동의 없는 안락사, 마취 살인의 의무를 갖는다고 보기는 어렵다.
본문과 같은 상상은 과연 최초일까. 이미 상상해보고 나름의 판단을 가진 사람이 있진 않을까. 그 중 한명이라도 자신의 선택에 반하는 죽음은 싫다는 내적 선언을 하진 않았을까. 단지 내가 듣지 않은 것뿐인 것은 아닐까. 이와같은 도덕적 머뭇거림을 돌파할 길을 제시한다면 동의할 준비가 되어 있어요.
사실 댓글에서 모두의 동의와 같은 얘기를 한 이유는, 의무주의와 충돌하지 않을 수 있다고 생각했기에 그렇다면 그 이유가 무엇인지를 생각하다가 나온 결론이고, "아직 태어나지 않은" 비존재에게 있어 "태어나게 한다" 라는 선택지는 "고통은 0인 것이 옳다" 라는 논리에 의해 주어지지 않는 것처럼, "버튼을 누르는 것"은 마찬가지로 "누르지 않는다" 라는 선택지는 줄 필요조차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냥 무조건 눌리는 것이 모두에게 좋은 일이기 때문에, 눌르는 것이 옳다라는 입장임. 만약 누군가에게 좋지 않을 일말의 가능성이 존재하였다면, 이런 얘기를 꺼내지도 않았을 겁니다. "불행 a 행복b 모다는 불행 0 행복 0이 무조건 좋다" 라는 논리로부터 도출된 결과임.
불행 0 이 아닌것 같아요. 이미 의식을 가지게 된 존재가 의식을 잃게 되는 것은 불행 아닌가요?
행복 b가 행복 0이 된 것을 불행으로 간주할 수는 없습니다. 중요한 건 불행a가 불행 0이 된 것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