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있을 때는 그렇단 말이지.
우울증의 기본적인 원인 자체가 낮은 세로토닌 농도임.
행복하면 세로토닌이 시냅스에 분비되어서 좀 더 오래 지속되어야 하는데 금방 재흡수 분해 해버리니까 신경 세포의 흥분이 오래 지속되지 못해서 행복을 느껴야 할 상황 자체에는 불감해지고 쉽게 우울감을 느낀단 말이지.
이걸 뇌의 화학적 불균형으로 보고 세로토닌 재흡수 억제제를 처방해서 세로토닌 농도를 조금이라도 더 높이려고 애쓰는 거고.
근데 그냥 살아있지 않은 상태면 세로토닌 없다고 결핍을 느낄 일은 없단 말이지. 물리적인 육체가 없으니까.
현대인이 이리도 쉽게 우울해지는 이유가 뭘까? 옛날과 달리 2차, 3차 산업이라는 데에 종사하면서 노동 시간 내내 햇빛 못 보고 생활하는 것도 이유가 될 만 하고, 아니면 진화과정에서 그냥 신경계가 발달할만큼 발달한 모든 생명체가 긍정적인 자극보다는 부정적인 자극이 더 오래 지속되고 효과가 크기 때문일지도 모르지. 생존을 위해서는 그게 필수적이니까.
더럽게 아이러니하지 않나? 살기 위해서 불행해야 하다니.
특수한 경우지만 전두엽에 타고난 문제가 있을 수도 있고, 유전적 소인으로 우울장애 같은 걸 쉽게 가지게 될 수도 있음. 다른 거 다 양보하더라도 이런 사람들은 태어나는 게 정말로 복이 맞나? 타고난 한계쯤 그냥 극복하면 되는 거야?
도파민 조절이니 뭐니 다 좋다 이거야. 보상체계란 것도 제대로 되어먹은 물건은 아니니까 쾌락을 느끼면 느낄수록 불감하게 되는 거겠지.
그래서 더욱 궁금한 건데 이런 빌어먹을 구조의 생명체가 정말로 태어날만 한 건 맞는 거야? 그리고 내가 이렇게 묻는 것은 장애인을 낳을 걸 알면서 낳은 부모를 비난하는 것과 뭐가 다르지? 노산하는 부모를 비난하는 것과는 또 뭐가 다를까? 장애의 정도와 위험이 크든 크지 않든 간에.
우울증의 기본적인 원인 자체가 낮은 세로토닌 농도임.
행복하면 세로토닌이 시냅스에 분비되어서 좀 더 오래 지속되어야 하는데 금방 재흡수 분해 해버리니까 신경 세포의 흥분이 오래 지속되지 못해서 행복을 느껴야 할 상황 자체에는 불감해지고 쉽게 우울감을 느낀단 말이지.
이걸 뇌의 화학적 불균형으로 보고 세로토닌 재흡수 억제제를 처방해서 세로토닌 농도를 조금이라도 더 높이려고 애쓰는 거고.
근데 그냥 살아있지 않은 상태면 세로토닌 없다고 결핍을 느낄 일은 없단 말이지. 물리적인 육체가 없으니까.
현대인이 이리도 쉽게 우울해지는 이유가 뭘까? 옛날과 달리 2차, 3차 산업이라는 데에 종사하면서 노동 시간 내내 햇빛 못 보고 생활하는 것도 이유가 될 만 하고, 아니면 진화과정에서 그냥 신경계가 발달할만큼 발달한 모든 생명체가 긍정적인 자극보다는 부정적인 자극이 더 오래 지속되고 효과가 크기 때문일지도 모르지. 생존을 위해서는 그게 필수적이니까.
더럽게 아이러니하지 않나? 살기 위해서 불행해야 하다니.
특수한 경우지만 전두엽에 타고난 문제가 있을 수도 있고, 유전적 소인으로 우울장애 같은 걸 쉽게 가지게 될 수도 있음. 다른 거 다 양보하더라도 이런 사람들은 태어나는 게 정말로 복이 맞나? 타고난 한계쯤 그냥 극복하면 되는 거야?
도파민 조절이니 뭐니 다 좋다 이거야. 보상체계란 것도 제대로 되어먹은 물건은 아니니까 쾌락을 느끼면 느낄수록 불감하게 되는 거겠지.
그래서 더욱 궁금한 건데 이런 빌어먹을 구조의 생명체가 정말로 태어날만 한 건 맞는 거야? 그리고 내가 이렇게 묻는 것은 장애인을 낳을 걸 알면서 낳은 부모를 비난하는 것과 뭐가 다르지? 노산하는 부모를 비난하는 것과는 또 뭐가 다를까? 장애의 정도와 위험이 크든 크지 않든 간에.
낳음당하는 바람에 도파민의 노예가 되어버린 데수웅
부모도, 부모의 부모들도 도파민의 노예라 내가 태어났을테니 끊임없는 삶의 굴레라는 생지옥을 인류 멸망까지 답습하지 말고 끊어야할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