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생주의자들과의 토론에서 져본 건 며칠전이 처음일듯.
물론 본인은 지능이 보통 사람들보다 약간 낮고 논리가 딸림. 그래서 도움을 청해보려고 한다. 본론으로 들어가서...
출생 전 당사자의 동의여부, 해악금지의 의무나 사전주의 원칙, 비동일성 문제 관련 필살기를
꺼냈으면 이겼을거라 생각하지만 필살기는 일부러 안쓰고
'본인이 삶을 긍정한다면 그 사람 입장에서 태어남은 정말 손해인가?'
이 주제로 댓글싸움을 했다. 물론 상황도 상대 화자가 엄청 유리한 상황인 행복99, 고통1인 말도 안되는 상황을 가정했고,
내용은 대충...
"목마를 때 물을 마시면 행복하고 좋지만 살기 위해 물을 마셔야만 하는
상황을 강제당하는 것이 어떻게 이득이냐, 행복과 쾌락은 언제나 결핍을
동반하는 일시적인 진통제일 뿐이고 결국 죽음으로 박탈당하니 손해이다"
이랬더니 이렇게 반박하대?
"목마를 때 마실 물이 죽기 전까지 항상 넘치는 상황이 왜 손해인가,
죽기 직전까지는 만족스러운 상황이 대부분일테고, 죽기 직전 짧은 순간에 모든 것이 박탈되고 무로 돌아간다고 해서
그동안 겪었던 행복, 삶의 가치들이 무가치하게 되는 건 아니지 않느냐?
본인이 삶을 긍정하고 만족하는데 왜 모든 인간의 삶이 손해라고 단정짓는 건 당신의 주관적인 판단일 뿐이다"
여기서 말문이 막혀서 난 현실적으로 대부분의 사람들은 행복<고통인 삶들을 살고,
인체, 생태계 유기체들의 과학적 시스템의 한계로 인해 행복>고통일 수는 없다고
논거보다는 현실에서 일어났던 사례들을 가져와서 설명함.
그랬더니 그 사람이 귀납적 추론법 쓰지 말고 수학적으로 이론적으로 모두에게 통용되는 논리적인 근거를 가져오라고 G랄함.
여기서쯤 내가 패배한거 같음. 열받고 분하다. 반박논리 부탁한다.
인간은 태어날 아이의 인생이 행복할거란 보장을 못함 모든 조건이 완벽해도 외부 상황을 통제할 수 없음 가령 불치병이나 타의에 인한 사고 같은 것..
수학적 이론처럼 인간사는 100% 절대적인 결과라는게 없음. 인간사에 그런 절대적인 결과를 가져오는 법칙을 요구한 거 부터가 너의 논리를 반박할 수 없었다는 증거임. 따라서 너는 선술한 인간사의 성질에 대해 설명하면서 대체적으로 우리에게 적용되는 결과가 이러하니 우리의 행동의 결과를 일반적인 사람의 범주 내에서 상정하였을 때 대체적인 범위 내에 들 것이니 행복 < 고통이므로 출생은 옳지 못하다라는 점을 꼬집어주면 된다.
죽기 직전까지는 만족스럽다는 것 자체가 오류임. 대다수의 사람이 죽기 전에 시름시름 앓다가 죽음. 심장마비, 뇌경색 같이 급사하는 질환들도 그 이전에 보통 전조 증상도 겪고 죽을 고비 몇 번 넘기는 경우가 다반사고 진짜 건강하게 살다가 자다가 돌아가시거나 사고사로 가는 경우는 소수라는 사실을 모르네.
당장 그냥 숨 한 번 참아보라고 해 봐. 얼마나 고통스러운 지.. 죽는다는 건 그 숨이 끊어진다는 건데 죽기 직전 짧은 순간이라는 말로 퉁칠 수 있는 정도의 가벼운 것인가? 난 그렇지 않다고 봄.
그리고 본인의 삶이 행복해서 이 삶을 애한테도 물려줘야 겠다 라는 생각으로 애를 낳는 사람이 과연 얼마나 될까? 현실은 대다수의 사람들이 그냥 성관계 하다보니까, 뭔가 안 낳으면 내가 남들보다 뒤처지는 것 같아서, 나중에 늙어서 혼자 되는 게 두려워서, 자식 덕 좀 보려고, 귀여워서, 그냥 본능이니까 낳아야할 것 같아서.. 그냥 이런 이유야.
저런 새끼들은 논리로 이길 수 있는 상대가 아님. 그냥 현실이 지들한테 닥치면 그때서야 깨닫게 되겠지. 아 아니다 그런 기대나 희망조차 없다. 걍 ㅈ돼보라지
ㅋㅋㄹㅇ
ㅇㄱㄹㅇ
본인이 삶을 긍정하고 만족하는 게 아니라 부모가 긍정하고 만족하는 거 아닌가? 내가 행복하다고 내 자식도 행복하리란 법이 어디있어. 니 주장에만 적용되는 약점이 아니라 상대에게도 적용되는 약점임. 행복을 거론할 당사자는 이미 태어나지도 않았다.
맨끝에는 귀납 말고 연역으로 붙자고 해서 망한 모양인데, 선험적으로 인간이 행복하다는 걸 입증하지 못하는 이상 끝 아닌가? 태어남의 박탈이 불행이 아님을 서로 동의했다면 거증책임은 상대에게 있어.
행복99 고통1인 상황을 가정해서 말한 것부터거 잘못 아닐까...
모두 답변 감사합니다! 토론에서 이겨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