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단 고통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먼저 짚고 넘어가야 할 거 같음.

고통은 자산의 손상을 말하며, 이는 정신적 자산의 손상 또는 육체적 자산의 손상을 말하는 거지.

손상을 입는다는 것은 곧 자산이 있다는 것이고, 이는 유존재가 무존재보다 절대적으로는 더 낫다는 말이기도 함.

하지만 유존재는 고통을 겪음으로써 무존재를 향해 달려가지.

즉, 유존재는 결국엔 무존재가 될 수밖에 없고, 무존재는 무존재를 유지할 수밖에 없음.

즉, 아이 입장에서의 결과는 전자나 후자나 똑같다는 얘기임.
둘 다 무존재로 귀결된다는 얘기.

하지만 출산할 때, 아이가 전자를 원할지, 후자를 원할지 의사를 물어볼 수 없는 만큼, 전적으로 부모 선택에 의해 결정되는데, 후자를 원했던 아이가 있을 수 있는 만큼, 부모 입장에선 신중하게 출산을 해야 한다는 거임.

반면에 전자를 원하는 아이가 있을 수 있는 만큼, 비출산도 신중하게 헤야 한다는 거임.

아이가 왜 자신을 낳았냐고 물어본다면,
적어도, 남들이 낳아서 낳았다 또는 자연의 법칙이다 또는 내 기쁨을 위해서다 또는 봉양을 위해서다 같은 이기적이고 줫같은 발언만큼은 하지 말자.

심도있게, 내가 살아보니 유존재의 삶이 옳다고 느꼈고, 네게도 그런 행복한 삶을 느껴볼 수 있게 하고 싶어서 낳았다고 말해주자.

반면에 무존재의 삶이 옳다고 느끼는 사람이라면 비출산하면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출산은, 무조건 해야하는 것도 아니며, 무조건 안 해야 하는 것도 아닌 것이다.

혹자는 이렇게 물을 수 있다.

고통의 관점만 보고서 비출산하는 거라면, 왜 당신은 지금 당장 자살하지 않는가라고.
당신은 당신을 사랑하지 않는가라고.

다시 한 번 말하지만, 유존재의 삶은 무존재의 삶보다 절대적으로 낫다.

비출산하는 사람들이 자살하지 않는 이유는,
가진 것들을 순식간에 잃는 그 고통을 감내하지 못해서다.
서서히 죽는 것은 감내할 수 있듯이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