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상 의문을 품고 산다. 아기를 당연하게 낳던 시절의 사람들은 대체 왜 그런짓을 하지? 오은영 박사조차도 아이를 100퍼센트 행복하게만은 기를 수 없다. 어떤집에 태어나든 그 아이가 어떻게 될지는 도박이다.

행복하게 잘만 살아가면 다행인 일이겠지만 보통은 그렇지 않다.

아니 그럴 수 없다.

대부분 고통속에 권태와 열등감을 느끼며 가끔씩 찾아오고 금방 떠나는 행복을 아쉬워하며 살아간다.

심지어 모든 고통은 태어난 당사자의 몫이고 부모가 대신 고통받아줄 수도 없다.
나는 이 삶이라는 것에 큰 회의감이 든다.

내가 원해서 태어난것이라면 군말 없이 책임감이라도 갖겠다.

그냥 어느날 세상에 강제로 소환되었는데도 나는 내 삶에 강제로 필사적으로 책임감을 가지고 스스로를 먹여살리고 더 나아가서는 주변인을 실망시켜선 안된다. 왜냐하면 주변인을 실망시키는 것 조차도 결국은 그들이 아닌 나 자신이 겪는 고통이기 때문에.
감사일기를 써보고 긍정적으로 살아가보려고 노력해도 그럴 수 없는 이유들이 이런것들 때문이다. 나는 삶이 고통이라는 이러한 진리를 반박할 만한 논증을 들어 본적도 납득할수도 없다.
그래서 즐겁게 사는것이 가능한 이들을 질투한다. 신기하다. 그것이 가능한것 또한 디엔에이 가챠에 잘 걸려서인가? 혹은 살아가면서 나처럼 나는 왜 고통받는가에 대한 근원적 음침한 의문이 들지 않은 능력을 타고난것인가. 어떤 방향이든 부러울 뿐이다. 한번 살고 가는동안 최대한 덜 고통스러운 사람이 승자이니까....
나는 아무래도 그러지 못할것 같아서 그냥 포기하고싶다. 갖지 못하는것을 탐해봐야 아무 소용이 없다는것을 아니까 말이다.
그런데 포기하고싶다고 그냥 쉽게 목을 메버리는것처럼 간단하게 끝낼수 있는 생명이 아니라는것이 화룡점정.

의지와 상관없이 주어지는 삶이라는 것은 정말 잔인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