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제1 : 불행 0 행복 0 에서 불행 a 행복 b가 되는 것은 좋지 않은 일이다.
전제2 : 타인에게 좋지 않은 일을 겪도록 하는 것은, 도덕적이지 않은 일이다.
결론: 출산은 ???에게 "좋지 않는 일"을 하는 행위이므로, 도덕적이지 않다.
과연 저기서 ???가 누구를 의미하는 지에 대해서 반출생주의에서는 이미 누군가 정의를 내렸겠지만,
난 아직 모르니까, 한번 생각해보았음.
일단 2가지 중에 하나임은 분명해보임. "아직 태어나지 않은 비존재" 또는 "이미 태어나버린 태아" (물론 후자에는 모든 인류가 모두 해당될 테지만, 일단 태아를 예시로 설명을 이어가겠음)
이제, ???가 각각 "비존재"와 "태아"를 의미할 때를 살펴, 과연 위의 결론이 타당한지 알아보겠음.
1. 만약 "비존재"를 의미하는 것일 때
Q) 비존재에게 좋지 않은 일을 하는 게 과연 도덕적이지 않은 일인지?
위 질문에 "그렇다" 라고 답하기 위해선, "비존재"와 출산을 통해 "태어난 존재"가 동일한 주체라는 가정이 있어야 함.
하지만, 이 가정은 어불성설임. 영혼과 같은 물리법칙을 초월한 어떤 것을 가정하지 않고서는 위의 가정이 옳다고 말할 수 없음.
따라서 위 질문에 대한 대답은 "그렇지 않다" 이다.
결론적으로, ???가 "비존재"를 의미한다면, 출산은 도덕적이지 않은 행위가 아닌 것이 된다.
2. 만약 "태아"를 의미하는 것일 때
Q) 태아는 행복 a 불행 b의 상태인가?
일단, 태아에게도 의식이 있기 때문에, 행복과 불행을 실시간으로 느끼고 있다. 따라서 이에 대한 대답은 "그렇다"이다.
(수정란에 가까운 상태에서는 행복 0 불행 0의 상태겠지만, 이를 인간으로 간주하지는 않고, 그럴 필요도 없다.)
태아는 이미 행복 a 불행 b의 상태이기 때문에, 전제1 ( 불행 0 행복 0 에서 불행 a 행복 b가 되는 것은 좋지 않은 일이다. )에 해당되지 않게 된다.
따라서, 태아에게 있어 출산은 도덕적이지 않은 행위가 아니다.
따라서, ???가 "비존재"를 의미하든 "태아(=존재)"를 의미하든, 위의 결론은 옳지 않다는 결론이 나온다.
결과적으로, 출산은 도덕적이지 않은 일이 아니다.
Q) 그렇다면 위의 말대로라면 반출생주의가 잘못되었는가?
그건 아니라고 생각한다. 단지, "출산이 도덕적이지 않다" 라는 명제는 기존의 전제로부터 도출될 수가 없다는 사실을 밝혀내었을 뿐임.
애초에 "도덕"의 정의에 대해서도 의견이 분분한 만큼, 많은 사람들이 "출산"에 대해 "뭔가 도덕적이지 않은 것 같다는 느낌"을 가지게 된다면 반출생주의는 자연스레 설득력을 얻을 것이라고 생각함. 그렇게 된다면 어떤 새로운 공리를 만들어내는 것도 가능할 것이라고 생각함.
위처럼 생각해보았는데, 이에 대해 댓글로 의견을 제시해주면 감사하겠음. 애초에 어디서 철학을 배운 것도 아니고 글 쓰는 법을 배운 것도 아니어서 논리에 어긋나는 말이 있을 수도 있는데 그런 것도 지적해주면 ㄳ
수정란에 가까운 상태에서는 행복0 불행0이고 태아일때는 행복a 불행b인 상태라며? 그럼 전제1인 '불행 0 행복 0(수정란) 에서 불행 a 행복 b가 되는 것(태아)은 좋지 않은 일이다.'에 부합하네
ㄴㄴ 수정란은 인격체로 볼 수 없음. 실제로 모든 사람들이 그렇게 생각함. 수정란이 인격체라면 정자, 난자도 인격체고 결국 비존재와 존재의 경계가 허물어지게 됨
그래서 내가 (수정란에 가까운 상태에서는 행복 0 불행 0의 상태겠지만, 이를 인간으로 간주하지는 않고, 그럴 필요도 없다.) 라고 적은 거임. 행복 a 불행 b가 시작되서야 비로소 "존재"라고 가정할 수 있음. 이는 기존의 윤리관과도 충돌하지 않음.
여기서 "수정란이 왜 인격체가 아님? 누가 그렇게 정함?" 이라는 질문을 던지는 순간 "그럼 도덕은 누가 정의함?" 라는 반론이 이어질 수밖에 없고, 이는 지금의 논의 자체가 무산되어 버림. 내가 원하는 건 전제1과 전제2로부터 "출산이 도덕적이지 않다" 라는 결론이 나올 수 없다는 것을 지적하는 것 뿐이지, "전제1"과 "전제2"의 옳고 그름을 따지는 것이 아님.
아니 난 수정란이 인격체라고 한 적 없어
결국 내가 말하고자 하는 건, 세상에 절대적 진리라는 건 없다는 거임. 모든 건 사회적 합의를 통해서 세워진 공리를 토대로 확장시켜나간 것일 뿐이고, 말 그대로 사회적 합의가 달라진다면 그 공리 또한 변할 수 있음. 다만, 반출생주의는 공리에서조차 도출될 수 없다는 것이고, 결국 해결책은 새로운 공리를 세우는 것 뿐임. 바꿔 말하면, 반출생주의를 포장하기 위해서 이런 저런 철학이니 논리니 등을 가져다 쓸 필요는 없고, 그저 "내가 낳은 자식이 살아가면서 과연 태어났음을 절대 후회하지 않을 수 있을까? 만약 후회할 일말의 가능성이 있다는 것을 내가 알고 있는 상태에서, 과연 아기를 낳는 것이 옳은 것일까" 라는 고민을 많은 사람이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거임.
남은 1을 말하는데 너혼자 2절 3절 다해버리네... 거 말하고 싶은게 있으면 그냥 처음부터하셈
수정란이 인격체라고 하는 것이 아니라면, 수정체를 비존재를 간주한다는 것에 동의하는 것이고 이는 내가 적은 첫번째 질문과 그에 대한 대답을 읽어보면 됨.
남은 1을 말하는데 너혼자 2절 3절 다해버리네... 거 말하고 싶은게 있으면 그냥 처음부터하셈 -> 나는 님이 1번 질문을 읽고나서도 이런 질문을 한 것이라고 감히 생각을 못했음. 이런 식으로 비꼬게 되면 나도 똑같이 해드릴 수밖에 없다. 님의 수준을 높게 판단한 나의 잘못인 듯.
비존재와 출산을 통해 태어난 존재는 동일한 존재라는 연속성이 존재한다 할 수 없지만 수정란과 태아는 연속성이 존재한다 할 수 있으니까
???가 "비존재"를 의미한다면, 출산은 도덕적이지 않은 행위가 아닌 것이 된다. 라고 분명하게 적어놨음.
수정란과 태아의 연속성을 주장한다면, 정자와 난자의 연속성조차 주장하는 건지? 기존의 윤리관에선 아무도 수정란과 태아의 연속성을 인정하지 않음.
수정란의 인권을 존중해주고 싶으면 님이 새로운 공리를 세워야 함. 이건 여기서 논의할 영역이 아님. 나는 그저 기존의 윤리관을 이용해서 반출생주의를 정당화할 수 없다는 것을 말하고 있을 뿐임.
정자와 난자 자체는 아무리 시간이 지나도 정자와 난자임. 하지만 수정란은 시간이 지나면 태아가 되고 태아는 어린이가 됨. 그 차이인거지
아까도 말했지만 상대방은 1절 이야기하는 중인데 계속 상대방 의중을 짐작해서 사실 넌 2절 3절 말하고 싶었던거지? 하는건 별로 좋지 못한거 같음
적어도 의식의 연속성이 있어야 동일한 주체라고 판단하는 게 타당함. 인간은 1년만 지나도 몸의 모든 세포가 죽고 새로운 세포로 대체되지만 아무도 죽은 세포들의 모음을 원래의 인간으로 인정해주지 않음. 중요한 건 "내가 나"라고 인식하고 있는 자의식의 존재임
수정란이 시간이 지나서 태아와 어린이가 되는 건 여기서 논의할 영역이 아니라고. 나는 계속해서 일관적인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는데 님은 계속 다른 말을 하고 있음.
내일 당장이라도 a가 사망을 한다면 다들 이건 a가 아니야 그저 죽은 세포들의 모음이야 하겠군요
수정란도 어머니의 배속에서 영양분을 공급받아야 비로소 태아까지 연결이 될 수 있음. 따라서, 수정란은 의식이 연속되지 않을 뿐더러 그것을 차치하더라도 물질적인 연속성조차 불분명함. 이럼에도 불구하고 "수정란은 태아로 이어지지만, 난자와 정자는 그렇지 않다" 라고 주장하는 건 일관성이 없음
a가 사망하면 더이상 살아있는 인격체로서 취급받지 않음. 당연한 것 아님? 시신으로서 대우는 받겠지만 아무도 인격체로 간주하지 않고 인권조차 주어지지 않음
아까도 말했지만 상대방은 1절 이야기하는 중인데 계속 상대방 의중을 짐작해서 사실 넌 2절 3절 말하고 싶었던거지? 하는건 별로 좋지 못한거 같음 -> 나는 내가 2절 3절을 이야기 하고 있는데, 님이 설마 뜬금없이 1절을 얘기할 거라고조차 생각을 못했음. 자꾸 비꼬는데 모든 잘못은 님한테 있다는 걸 인지해줬으면 함. 내가 1절을 얘기하는 건 오히려 님의 의중을 짐작했을 때 가능한 일임. 난 님의 주장에 대해 일관적으로 답변해줬을 뿐인데 이런 식으로 오히려 나를 매도하는 건..이해가 안 됨
님은 피임약조차 살인이라고 생각하시는지? 아무도 수정란의 인권에 대해선 관심 없고, 그럴 필요조차 없음. 수정란을 가지고 하는 과학 실험에 대해서는 실험 윤리에 대해 지적하는 견해도 존재하지만, 그게 수정란을 인격체로서 대우했기 때문에 윤리적 문제를 제기하는 것은 아님.
자꾸 남의말을 자기 좋을대로 해석하시네
애초에 반출생주의에서 말하는 존재가 이러한 인격체를 상정하고 있는 건데, 이에 대해 의문을 품는 것이라면 난 더이상 할 말이 없음. 내가 대체 어떤 식으로 님의 말을 오해했다는 거임? 답변이 충분치 않다면 비꼬지 말고 새로운 질문을 해주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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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어떤 행동이 아직 태어나지 않은 사람들에게 심각한 해악을 끼치더라도 그것은 도덕적 잘못이 아니라는 주장으로 귀결됨 -> 이건 내 글을 잘못 받아들인 것 같음. 글을 다시 읽어보면 알겠지만, 출산이 도덕적으로 잘못이 되려면, 그로 인해 "피해를 보는" 주체가 존재해야한다는 것이 나의 의견임. 님의 말처럼 예를들어 환경오염을 시켜서, 1억년 뒤 후손이 피해를 받는 상황은 당연히 도덕적으로 잘못된 일임. 왜? 1억년 뒤의 후손이 실제로 "내가 환경오염을 일으킨 것"에 대해 피해를 입었기 때문임.
하지만 출산은, 내가 설명했듯이, "출산이라는 행위"가 자식에게는 피해가 될 수 없다는 거임. 님의 말대로, 전인류적인 관점에서 봤을 때, 인류가 너무 많아져서 살기 힘들어질 수 있다는 면에서는 도덕적으로 문제가 될 수 있음. 하지만, 이는 아무도 단정지을 수 없음. 사람이 많다고 해서 꼭 환경문제가 생긴다는 보장이 없고, 오히려 다같이 합심해서 우주로 진출을 하거나, 해결책을 찾을 수 있음. 뭐 어쨌거나, 애초에 반출생주의는 "출산은 태어나는 이에게 도덕적인 잘못을 저지르는 행위"라고 주장하는 건데,
이는 내가 글로써 반박을 했음. 따라서 님의 댓글은 전제2에 대해서 오해를 한 것으로 보임. "타인"의 범주에는 "미래의 인류들"도 당연히 포함된다고는, 대부분의 모든 사람들이 이에 동의하듯이 나도 당연히 동의함.
해당 댓글은 삭제되었습니다.
일단 자야돼서, 내일 자세히 읽을 예정이지만 대충이나마 읽고 든 제 생각을 써보겠음. 결국 베너타는 "태아"와 "비존재"가 동일한 주체로서 비교될 수 없다는 주장에 대해 이는 비동일성 문제이며, 이에 대해 논하는 것은 아무런 실리를 얻을 수 없으니, 그냥 무시하는 것이 현실의 문제(출산)을 해결하는 데에는 더 도움이 된다는 입장인 것 같은데, 사실 이런 입장이라면 뭐 더이상 제가 할 말이 없긴 하네요. 결국 제가 마지막에 말한 듯이 사람들로 하여금 "출산이 뭔가 도덕적이지 않은 것 같다는 느낌"을 가지게 만들 수밖에 없는 게 아닌 건지?
자네 글의 가정부터가 잘못됐다. 자네는 반출생주의자들이 "출산은 아직 태어나지 않은 비존재에게 좋지 않은 일을 하는 행위"라고 생각한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출산은 비존재 자체에게 고통을 가하는 게 아니라 비존재를 존재로 변화시킴으로써 고통을 받게 하는 것이다.
당연히 비존재는 고통을 받을 수 없다. 비존재가 존재가 되는 순간 고통이 시작되는 것이다. 촉촉한 엄마 양수 속에서 보호를 받던 태아가 건조한 바깥 세상으로 나오자마자 입과 코가 건조해지면서 고통을 느끼게 된다. 그래서 아기들이 태어나자마자 고통스럽게 우는 것이다.
그러므로 ???에 해당하는 부류로 "비존재"와 "태아"만 존재한다는 자네의 주장은 잘못됐다. 예전에는 비존재였으나 지금은 존재인 대상에 대해서는 고려하지 않았다.
자네는 "출산은 비존재에게 좋지 않은 일을 하는 게 아니"며, "출산은 태아에게 좋지 않은 일을 하는 게 아니"라고 주장한다. 자네의 두 주장이 맞다고 쳐도, 제3의 경우인 예전에는 비존재였으나 지금은 존재인 대상에게는 여전히 출산이 좋지 않은 일이다.
결국 베너타는 "태아"와 "비존재"가 동일한 주체로서 비교될 수 없다는 주장에 대해 이는 비동일성 문제이며, 이에 대해 논하는 것은 아무런 실리를 얻을 수 없으니, 그냥 무시하는 것이 현실의 문제(출산)을 해결하는 데에는 더 도움이 된다는 입장인 것 같은데, 사실 이런 입장이라면 뭐 더이상 제가 할 말이 없긴 하네요. 결국 제가 마지막에 말한 듯이 사람들로 하여금 "출산이 뭔가 도덕적이지 않은 것 같다는 느낌"을 가지게 만들 수밖에 없는 게 아닌 건지? 위에 제가 단 댓글인데,
예전에는 비존재였으나 지금은 존재인 대상 -> 결국 베너타도 이에 대해서 소위 "말장난"으로 취급하고 넘어가는 길을 택한 것 같은데 실리를 따지자면 그 편이 낫다는 것에는 저도 동의합니다. 만약 이것이 이를 무시하는 것이 기존의 윤리관과 충돌하지 않는다면, 제가 틀렸다고 볼 수 있겠네요.
출산으로 피해 보는 건 비존재가 아니라 비존재에서 존재로 전환된 대상이다.
결론을 내리자면, 결국 "비존재"와 "태아"를 같게 보는 것은 사실 모든 사람들이 기본적으로 옳다고 생각하는 부분이고, 이에 대해 의문을 품는 것이 비동일성 문제이지만, 사실 이는 실리를 얻을 여지가 없는 말장난에 가깝고 결국 "무엇이 도덕적인가"를 따지는 것은 대다수의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하는지에 달려있는데, 비동일성 문제에 대해 대다수의 사람들은 "생각할 필요가 딱히 없다"고 느끼기 때문에, "비존재와 태아를 같은 주체로 보는 것"도 타당하다고 볼 수 있고, 따라서 결국 "출산을 비도덕적이다" 라는 결론이 나오네요ㅣ
그리고 태아의 경우에는 의식 수준이 태어난 존재에 비해서는 떨어진다. 그 결과 태아가 느낄 수 있는 고통의 양도 성인이 느낄 수 있는 양보다는 적을 것이다. 다시 말해 그 태아가 태어나서 성인이 될 때까지의 과정에서, 즉 청소년기 때와, 성인이 된 뒤에 받을 고통의 총량은 태아 시절 산모의 뱃속에서 보호를 받을 때 받는 고통의 총량보다 클 수밖에 없다.
그러므로 아이를 낳는 행위는 태아를 인간 개체로 만듦으로써 더 많은 고통을 받게 하는 행위가 된다.
그렇다면 반출생주의에게 남은 문제는 "출산이 비도덕적이다" 라는 명제를 "대다수의 사람들이 동의하지 않는다" 라는 점이겠네요. 사실 그들이 동의하지 않는 것은 모순적일지라도 말이죠.
나는 비존재와 태아를 같게 보지 않아. 내가 주장하는 건 "출산이 비존재에게 피해를 준다"가 아니라 "출산이 비존재를 존재로 전환시킴으로써 존재에게 피해를 주며, 출산이 태아를 신생아로 전환시킴으로써 피해를 준다"야.
"출산이 비도덕적이다"라는 명제를 깨달은 사람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는 게 긍정적이지. 불과 10년 전만 해도 한국에 이런 커뮤니티가 없었지. 옛날에는 반출생주의적 신념을 약간 갖고 있었더라도 찻잔 속의 태풍에 그쳤고, "내가 잠깐 딴생각했나보다"라고 느끼고 출산을 했을 수 있는데, 이제는 반출생주의자들끼리 서로의 의견을 주고받고 단합함으로써
자신의 반출생주의 사상을 더욱 강화하게 됐지. 그리고 애를 낳는 순간 반출생주의 동료를 배신하는 게 되기 때문에 애를 낳는 것에 대해 죄책감을 느끼게 하는 효과도 있지
저도 반출생주의 모든 논리에 수긍하는 건 아니지만 (그렇다면 이런 글도 올리지 않았겠죠) 출산이 비도덕적인 일이라는데는 동의합니다. 다만, 저는 이기적인 사람이기 때문에, 솔직히 그냥 때가 되면 제가 원하는 대로 할 예정이긴 하지만, 적어도 이런 갤러리가 있기에 이런 사상과 따르는 사람들의 존재를 알 수 있었고, 이에 느끼게 된 일말의 양심적 가책이
추후에 자식을 낳지 말아야겠다고 결심할 수도 있을 것 같네요. 그런 의미에어 반출생주의가 널리 퍼져 사람들이 다양한 선택의 기회를 얻었으면 좋겠다고도 생각합니다.
반출생주의를 바꿔 말하면, 누군가를 태어나게 하기 위해서는 갖추어야 할 최소한의 도덕적 기준이 있는데, 그것을 아무도 충족시키지 못한다는 것이다. 그 기준을 적당히 낮추면, 우생학이 될 것이다. 이미 존재하는 개인에게 개인이 가해하는 것은 나쁘다는 것과는 좀 다른 얘기다.
만약 우리의 선택 여하에 태어날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는 잠재적 존재는 어디까지나 가정적일 뿐 태어나기 직전까지는 실존하지 않으므로 중요하지 않다는, 즉 도덕적 지위를 갖지 못한다고 말하고 싶은 것이라면, 그런 식으로는 이미 태어나 있는 세대가 가장 중요하므로, 세대 이기주의 하에서 미래 세대 앞으로 초토화된 자연과 막대한 부채를 떠넘겨도, 아직 인격체가 아닌 것으로 간주되는 초기 태아를 조작해서 이상적인 현 세대의 노예로 태어나게 헤도 상관이 없을 것이다.
위와 같은 세대적 불의, 세대 윤리 파괴에 동조하는 윤리학자는 찾기 어렵다. 예컨대 공리주의는 본문에서 제시한 개인에 대한 가해, 개인의 상황 악화를 금지하는 도덕 직관 자체를 거부한다. 즉 본문이 제시하는, 개인에게 가해일 때만 부도덕하다는 전제 직관, 사적 원리personal principle는, 세대 윤리에서 전제로 삼는 직관이 아니거나, 삶의 시작점에 대해 논하는 등 수정된다는 것이다.
따라서 반출생주의는 사실 사적 원리(용어를 알았든 몰랐든 간에)에 기반하지 않는다는, 본문이 검사해서 내린 결론 자체는 타당하다고 할 수 있겠다.